▲뉴욕 JFK 공항뉴욕은 비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 잠겨 있다.
최성규
"택시를 회사에서 하루 빌리면 160달러 정도 내거든. 하루에 주간 교대로 12시간씩 일하는데 차고(Garage)에 반납하면서 정비 비용, 기름 값 정산하면 200달러가 넘어."한국의 회사 택시처럼 사납금의 개념이 있는가 했다. 한국은 일정기간 이상 무사고면 개인 택시 자격을 주는데 미국은 독립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물었다. 흑인 특유의 큰 눈망울을 굴리며 잠깐 나를 뒤돌아 본 그는 숫자를 말했다.
"750000달러." 잘못 들었나 싶어 몇 번을 재차 물어 확인했으나 'hundred'와 'thousand'가 한 단어씩 흘러 나왔다. 그리고는 앞 유리창 너머를 가리킨다. 빗줄기와 와이퍼가 어지러이 각축전을 벌이는 앞 유리창으로 보닛 위 검은 색 물체가 보였다. 택시 면허 표식이라는데 차내에 있는 미터기, 운전자 보호 펜스 등 택시와 관련 있는 모든 물품을 포함해서 그만한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택시 자격에 대해 치러야 할 비용이다.
"차 값도 따로 내야 하는데 여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지금도 부담되는 금액이 해마다 오르는 추세라고 한다. 기사 말로는 택시 회사를 배후에서 쥐고 있는 마피아 같은 조직이 장난을 치는 거라는데, 자유를 소중히 여긴다는 뉴욕에서 가진 자의 끝 없는 욕심 또한 끝간데 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목적한 맨해튼의 호텔에 도착하니 택시 기사가 빈 방이 있는지 알아봐 주겠다며 친절을 보인다. 때마침 숙소를 나선 사람들이 택시를 타려 하자 멋적은 웃음과 함께 내게 손을 흔들고 그는 사라져 간다. 그가 개인 택시의 꿈을 이루길 빌어주며 나 또한 몸을 움직였다. 의식주 중 '주'를 해결하기 위해.
뉴욕을 너무 만만히 본 것일까? 비성수기라 생각했는데 만석 중의 만석이다. 한국인 입장에서야 비성수기인 5월이겠지만 이때쯤 미국은 방학시즌이 시작된다는 걸 몰랐다. 가격대가 싼 Dormitory는 이번 주 내내 예약이 꽉 차 있다. 갈데 없으면 텐트에서 자면 된다며 호언장담한 여행길이지만 막상 눈 앞에 이런 상황이 닥치니 막막하다.
여 종업원이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빈방을 알아봐준다. 차이나 타운에 위치한 한 남루한 여관이 정보망에 걸려들었다. 직접 예약은 물론 약도까지 뽑아주는 섬세함.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를 화끈한 옷차림만큼 성격 또한 그러한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결과적으로 택시를 연달아 탈 상황이 되었다. 근처에 있던 Van Taxi 내에서 기사가 식사중이었다. 처음에 "I'm not working"(일 안해)라며 단호하게 대답했던 그는 택시 없는 한적한 도로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내가 답답해 보였는지 경적을 울리며 타라는 신호를 보낸다. 아이티가 고향인 그는 먼저 이민 온 아버지를 따라 28년 전 미국에 왔다. 지금은 부인과 장모, 입양한 아이 하나를 포함해 세 명의 자녀, 이렇게 6명이 한데 살고 있다.
다리 하나만 건너 인근 뉴저지로 가도 부가가치세가 3% 인데 반해 7%씩 물리는 팍팍한 뉴욕을 피해 롱아일랜드에 거주한다. 그러나 택시기사 입장에서 승객이 많은 뉴욕은 활동무대 1순위로 꼽힌다고 한다. 말투에 묵직한 인생의 무게감이 실려 있는 그는 차이나 타운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English is business(영어는 영업이야)."한국에 와보지 않아 그쪽 분위기는 모르겠지만 영향력 있는 언어에 능숙하면 그만큼 성공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 외국인도 가능하냐고? 자기를 보란다. 미국 토박이가 아닌데도 이 정도 영어를 쓰는 게 노력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짐 탓에 잡아탄 택시들이 첫날부터 여럿 생각해 볼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2012. 5. 16 수* 맨하튼 (Manhattan)몸 하나 겨우 누일 만한 침대 하나. 그리고 딱 그 정도 크기의 여분의 공간. 중국인이 운영하는 호스텔에서 하룻밤은 마치 몇날 며칠 있던 것처럼 강한 인상을 남겨 준다. 배정받은 방은 5층이었는데 6층 건물임에도 엘리베이터가 없어 짐을 들고 오르내리느라 엄청난 체력이 요구됐다.
한시 바삐 자전거 구입이 급하다. 캠핑 장비는 이럴 때 쓰라고 갖고 온 게 아닌가. 캐리어 가방과 큰 포장박스에 그득한 여행 준비물들이 자전거에 실리지 못하고 무용지물 신세다. 어제 지나가던 라이더의 추천을 받아 들렀던 'Bicycle habitat'. 매장의 크기나 드나드는 고객의 숫자로 볼 때 맨해튼 내에서 나름 유명한 점포다. 생활 자전거나 로드 바이크(Road bike)는 종류가 다양한데 MTB는 빈약하다.
그러다 보니 내 조건에 부합하는 자전거 찾기가 어렵다. 500달러 이하의 가격에 26인치 바퀴, Large 사이즈의 프레임. 한국에서 가져온 프론트 랙이 부착되려면 브레이크 타입도 림 브레이크 방식이어야 한다. 알루미늄 소재는 마땅한 게 없다며 철 소재 자전거 하나를 매니저가 가져온다. 미국에서 웬만한 종류는 쉽게 구할거라 기대하고 왔는데 여기에서 철TB를 타게 될 줄이야.
혹시나 싶어 주변 가게에도 발품을 팔아 보았다. 오히려 기본 1000달러가 넘을뿐더러 MTB 자체는 취급하지도 않는다. 자전거가 딱히 레저용이라기보다는 생활 속에 밀착되어 있는 이들의 문화를 감안하면 도로가 잘 포장된 도시에서 굳이 험한 지형에 적합한 MTB를 취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구입 가격은 359달러. 프론트 랙(앞 짐받이)과 리어 랙(뒷 짐받이)를 설치하는데 각각 15불의 추가 공정비가 든다고 해서 과감히 사양했다. 한국에서 습득한 자전거 정비 기술 덕택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비용을 아끼는 보람찬 순간. 시트 스테이(Seat stay)에 랙(짐 받이)를 설치할 볼트 구멍이 적절하게 뚫려 있어 기대 이상의 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