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철 '봄- 그리고'
정영철
그림 중에서도 사실적 화풍의 풍경화를 보러 화랑에 갈 때면 이제 막 여행을 출발하는 설레임에 젖어든다. 이미 본 적이 있는 곳을 새롭고 뜻깊게 해석한 예술가에게 '한 수' 배우는 즐거움도 보통이 아니지만, 미지의 풍경을 구경하게 되는 경우에는 유난히 기분이 좋아진다. '공짜'로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지난 29일 찾은 정영철 선생의 한국화전은 내게 '공짜 여행'이었다.
한지에 수묵담채로 그려낸 정영철 화백의 <봄-그리고>는 성산 일출봉을 형상화한 듯하다. 물론 다른 곳일 수도 있겠지만 보는 이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직 성산 일출봉에 가보지 못한 사람일수록, 그렇게 느끼게 된다. 섬의 형태, 가로로 이어지는 바다, 그리고 노란 유채꽃이 보는 이의 판단을 그렇게 지배한 결과이다.
특히 녹아 흐르듯 유채가 샛노랗게 흐드러진 화백의 제주도는 단순한 사실화의 경지를 뛰어넘어, 지금껏 보아온 낯익은 성산봉 풍경 그 이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화랑을 찾은 미술 애호가는, 성산 일출봉의 실경을 본 적이 있고 없고를 떠나, 낯선 여행자가 된다. 사진의 발명과 대중화가 회화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는 말도 있지만, 정영철 화백의 <봄-그리고>는 진정한 예술의 세계를 보는 이들에게 깨우쳐준다.
꽃의 흐드러짐을 그린 <남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