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 인터넷 SNS 공간에서 "후끈"

노동시간 사교육 고령화 문제 관통하는 슬로건... 실행력이 변수

등록 2012.06.23 16:47수정 2012.06.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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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내건 슬로건이 시민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이 그것이다.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가 단기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지만 대다수 국민은 행복해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손 고문의 가치와 비전, 정책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노년층들은 노년층대로 앞만 보고 달려 온 '지난 시절'의 자기희생적 삶을 돌이켜 보는 모습이다. 젊은 층들은 그들대로 각박하고 경쟁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기 정체성을 찾고 회복하는 문제와 연결 짓고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대체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자기 삶을 누리는 '저녁 있는 삶의 시대'가 열리기를 한껏 고대하는 눈치다. 야권 대선 후보가 던진 '삶의 질' 슬로건은 여권 일각과 일부 보수언론들의 종북 색깔론 공세 속에서 더욱 신선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손 고문의 '저녁이 있는 삶'이 화두가 되는 것은 사회정치적으로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국민 대다수가 실제 그런 삶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는 것을 정치인들이 정확히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대선후보가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놓고 고민한다는 것은, 그 고민과 반성을 통해 구체적인 정책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국민 삶과 동떨어진 정치적 이슈에 매달리며 여야간 퀘퀘묵은 수법으로 점철된 지난날을 볼 때, 이 슬로건은 대선캠페인 문화자체를 바꿀 전환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주요 인터넷 담론 사이트의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가 하면, 슬로건을 둘러싼 논쟁도 달아오르고 있다. 한 영화 사이트의 개인 낙서판은 '손학규의 대선슬로건이 저녁있는 삶이라고 하는군요'라는 제목을 내놓자 지난 19일 하루만 수천명이 다녀갔다. 이 사이트에서 '골든망고'라는 아이디를 가진 자는 "다른 후보가 되도 이 슬로건을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평가했다. 아이디 '난데없이 낙타를'이라는 사람은 "누구 작품인 지 정확히 알고 싶다"면서 슬로건에 큰 관심을 표했다. '선샤인'은 "초딩 때 이후로 저녁 있는 삶을 즐겨보질 못했다. 중학교 땐 학원 다니랴, 고딩 땐 학교 야자하랴, 대학생 땐 시험 준비하고 군대가선 야근하고..."라면서 "앞으로 나인투파이브해서 여유 있는 삶을 즐길 수있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황제균균'이라는 사람은 "좋은 슬로건이라 올라올 줄 알았다"며 "정책적으로 어떤 후보보다 앞서있다"며 '후한 점수'를 주었다.

좋은 평가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네티즌들은  "강제적으로 법을 만들어 규제하지 않으면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며 정치적 구호에 그칠 가능성도 내다봤다. 한 네티즌은  "쉬는 날을 그렇게 많이 만들면 어떡하냐"라면서 냉소적인 시각을 보였다. 사용자측면에서는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염려 섞인 반응도 나왔다.
 
이와 관련 손 고문 측 인사들은 23일 "손 후보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저녁이 있는 삶'을 중요한 정책 슬로건으로 내놓은 것"이라면서 "우리나라 노동시간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데, 국민들의 행복지수에 대한 실천적 고민이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손 고문은 22일 경기도 한 출판사를 방문, "회사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시퇴근 등 근무시간을 줄이고 휴일근무 없이 수입을 보장하면, 기업으로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일자리도 늘어나게 된다"면서 "저녁이 있는 삶은 퇴근시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미래사회 모델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구체적인 데이터도 제시했다. 연간 2193시간에 달하는 노동시간을 2000시간 이하로 줄이는 것을 1단계 목표로 삼고, 2020년까지 1700시간대로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손 고문은 덧붙였다. 이어 "공기업이나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에서부터 실천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실천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손 고문은 그러나 근로자에 대해서도 "기업에도 근로시간을 단축할 명분을 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근로자들도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노동자들이 자기계발 시간 등을 가져 생산성이 향상됨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파워블로거과 인터넷 토론광장에서도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논쟁은 달아오르고 있다. 다음 블로거인 '바우아빠'는 "한 정치인이 던진 간단해 보이는 이런 소박한 삶이 갑자기 위대해 보였다"고 평가하고 "내가 밤늦게 직장에 남아있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도 학교 끝나고 늦게까지 이곳저곳을 쫒아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저녁이 있는 삶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소박한 소망이 더 이상 소망이 되지 않는 현실이 오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다음 아고라 토론장에서 필명 'Kramer'는 '저녁이 있는 삶과 은행지점장의 유서'란 제목의 글을 통해 "손학규 후보가 시대정신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적 성과급제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직군이 금융계 아닌가 생각하는데 은행 지점장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우리의 잘못된 성과급제, 긴 노동시간, 밤 접대 문화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저녁이 있는 삶'은 페친들 사이에 화제다. 민주통합당의 문용식 인터넷소통위원장은 "'저녁이 있는 삶', 느낌이 어떠세요? 저는 가족끼리 둘러앉아 정겹게 식사하는 일상의 행복과 여유가 느껴져서 좋다"고 호평했다. 문 위원장은 "어떤 이는 한 번에 (의미를) 알기 어려워 좋지 않다고 하는데. 후보와 관계없이 슬로건만 평가한다면 어떤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 위원장의 한 페친은 "적당한 노동시간에...집 주위에 좋은 일자리가 있어 온 가족이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꼭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익명을 요구하는 서울 S대학의 신모교수는 "손 고문이 내놓는 저녁이 있는 삶이란 정책 슬로건은 사실 다른 대권 주자들이 먼저 쓰고 싶을 정도의 매력적인 것"이라면서 "문제는 슬로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행여부"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이 슬로건이 영향력이 있는 것은, 우리사회의 병폐이자 미래과제인 노동시간의 단축, 최저임금 인상문제, 사교육 개선문제, 고령화 사회 대비를 하나로 관통할 수 있는슬로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녁이 있는 삶 #문용식 #손학규 #유민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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