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탑의 모습
정만진
산을 허물어 하룻밤 사이에 큰 못을 메웠다무왕과 선화공주가 용화산 아래를 지나던 중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났다. 곧장 발길을 멈추고 미륵삼존께 예를 올린 왕과 왕후는 그 자리에 절을 짓기로 했다. 왕의 부탁을 받은 지명스님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하룻밤 사이에 그 큰 못을 메운 다음 절을 지었다. 물론 미륵삼존을 본받아 금당 셋과 탑 셋을 올렸다. 절에는 미륵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삼국유사에는 선화공주의 아버지인 신라 진평왕이 기술자를 보내어 미륵사 짓는 일을 도왔다는 대목도 등장한다. 하룻밤 사이에 큰 연못을 메웠다면 절을 짓는 데에도 별로 시간과 공력이 필요 없었을 터, 진평왕이 무엇을 얼마나 도왔다는 것일까. 조금 미심쩍다. 하지만 어차피 신통력을 바탕으로 하는 설화이니 그런 식의 의심은 아무런 쓸모도 없겠다.
스님 한 사람이 산을 허물어 하룻밤 사이에 큰 연못을 메워버렸다는 무왕 때의 기이는 2012년 6월에도 계속된다. 지금 무심코 미륵사터를 찾은 답사자는 600년에서 641년 사이의 그 어느 날에 못지 않은 광경 앞에서 대경실색하게 된다. 나라 안에 남아 있는 석탑 중 가장 크고 오래된 미륵사터 탑이 깜쪽같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본래 9층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사터 석탑, 그래도 지금까지는 한 쪽이 떨어져 나간 상태로나마 6층까지는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미륵사터를 찾아가면 그 웅대하던 석탑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어렵사리 미륵사터를 방문한 답사자들은 '관광해설사의 집'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뾰족한 해결책이 나올 리 없다. '2016년이나 되어야 볼 수 있어요. 그 동안 해체, 보수를 합니다.' 정도의 답변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올해가 중앙 정부 지정 '전북 방문의 해'라는데 이 무슨 '황당'인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컴퓨터를 활용해 1993년에 복원해놓은 동탑이나마 살펴보지만 이건 영 아니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서탑과 희멀건 동탑을 비교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인 까닭이다. 온 나라 방방골골의 허다한 석물공장들에서 날마다 빚어내는 현대판 석탑들 중 가장 큰 것을 가져다 놓은 듯한 느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