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 한 개에 그림 한 점 묶어 단돈 2000원!

[取중眞담] 재래시장 안에 선 예술시장 '광주 대인 예술 야시장'

등록 2012.06.26 18:03수정 2012.06.2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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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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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대인 예술 야시장'의 프로그램인 한 작가의 '한 평 전시실'에 어린이들이 들어가 작품 속 표정을 흉내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주빈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에 밀려 전국의 재래시장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모두 잘 아실 겁니다. 전통시장이기 때문에 재래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당위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당위론적으로 얘기하기 시작하면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은 '뻔'하니까요.

오늘 저는 광주광역시의 재래시장인 대인시장의 사례를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대인시장은 재래시장도 특성화 전략을 도입하면 사람들이 다시 찾는 시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귀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2일과 23일 이틀 동안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 광주 대인시장엔 말 그대로 '난장'이 벌어졌습니다. 난장도 그 어렵다는 '예술난장'이었습니다. 이틀 동안 대인시장은 '대인 예술 야시장'이 된 것이죠.

예술 야시장에는 만물예술마차를 비롯해 등불프로젝트, 게릴라공연, 아트경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습니다. 이중 사람들의 발걸음을 세운 것은 역시 만물예술마차였습니다. 만물마차엔 모두 66개 팀이 참여했는데요, 자신의 작품을 파는 작가, 먹을거리를 파는 한복집 할머니, 중고물품 매매를 중개하는 젊은 작가 등 참여한 이들도 다양했고 파는 품목도 제각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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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종 화백은 농산물 판매상 하문순씨와 함께 만물마차 '참외 물외'를 꾸렸다. 하씨의 참외에 박 화백의 그림 한 점을 묶어 2000원에 파는 마차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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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에서 열리는 예술시장이지만 시장을 찾는 계층은 다양햤다. 젊은 밴드의 공연을 즐기고 있는 청소년들. ⓒ 이주빈


시장에서 농산물을 파는 하문순씨는 박문종 화백과 한 팀을 이뤄 만물마차를 꾸렸습니다. 하씨가 가져온 잘 익은 참외 한 개에 박 화백의 그림 한 점을 묶어서 2000원에 파는 마차입니다. '참외 물외'라고 이름 지은 만물 마차 앞에는 참외처럼 노란 미소를 머금은 이들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복 짓기만 30년을 해온 임영순 할머니도 만물마차를 준비했습니다. 임 할머니는 "작년엔 약간 추울 때 예술시장이 열려 닭만 팔았는데 이번엔 더울 때 장이 섰으니 품목을 바꿨다"고 소개했습니다. 임 할머니가 올해 준비한 먹을거리는 구운 소시지.

임 할머니는 예술 야시장이 "내가 늘 파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파니까 기분전환도 되고 또 이렇게 나와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우리 시장도 알리니까 참 좋다"고 두 해 연속 예술 야시장에 참여하는 소감을 말씀하셨습니다.


시장을 찾는 시민들의 반응도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세 살 먹은 딸과 언니네 가족과 함께 온 김선영(광주 남구 월산동)씨는 인터넷을 검색해 꼼꼼하게 일정까지 챙긴 후 대인 예술 야시장을 찾았다고 합니다. 김씨는 "작년에 처음 예술 야시장이 열렸다는데 잘 몰라서 오지 못했다가 올해 왔는데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하기에 참 좋았다"고 합니다.

아홉 살 아들과 함께 야시장을 찾은 이봉순(광주 광산 유덕동)씨는 "학생들과 참여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공간"이라며 "지금은 일 년에 이틀 예술 야시장을 여는데 매 주말 등 계속 대인 예술 야시장을 열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예술이 시장과 함께 공존하고 성장해가는 유일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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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열린 대인시장 예술 야시장.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예술 야시장을 찾았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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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인이 대인시장 예술 야시장에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 이주빈


'대인 예술 야시장'은 작년에 처음 시작한 광주 대인시장만의 특성화 전략 중 하나입니다. 이 특성화 전략엔 대인시장이 갖고 있는 나름의 독특한 경험이 밑바탕이 되었죠. 4년 전 광주비엔날레 프로그램의 하나로 작가들이 시장 안에서 작업했던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때 참여했던 작가들이 문 닫은 점포를 얻어 아예 시장 안에 눌러앉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작가들은 '시장사람들'이 되어 시장 상인과 친교하며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전국에서 이미 그 명성을 인정받고 있는 유일한 향토잡지 <전라도닷컴>이 아예 시장통 안으로 들어와 새터를 닦았던 것도 그 즈음의 일입니다.

'2012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 정민룡 총감독은 "시장 안에 예술시장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작년에 처음 던져보았고, 올해는 본격적으로 그 질문을 대중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고 기획연출 의도를 말했습니다.

정 총감독은 "작가들이 작업실이 있는 예술공장 바로 옆에 예술 야시장을 만들어 생산기지가 소비기지가 되는, 그래서 예술이 작가와 대중의 소통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그의 말을 빌리자면 "재래시장을 살리는 하나의 방편을 넘어서 예술이 시장과 함께 일상적으로 공존하고 일상적으로 함께 성장해가는 사례는 유일할 것"이라고 하니 대인시장 예술 야시장은 자리매김을 굳게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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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예술 야시장 상징인 부엉이 그림을 그린 신양호 화백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다시 부엉이를 그리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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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와 할아버지가 함께 신양호 화백의 설치작품을 만져보며 즐거운 예술체험을 하고 있다. ⓒ 이주빈


주대희·정하양 작가 등 젊은 작가들의 '한 평 전시회'를 주목하고 있다는 신양호 화백 역시 대인시장에 입주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신 화백은 "우리 지역 젊은 작가들이 자칫 고착화될 수 있는 문화풍토를 잘 이겨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대견스럽다"고 흐뭇해합니다. 신 화백은 "대인시장 예술 야시장이 그림 잘 그리고, 잘 팔리는 작가들이 많아지는 귀한 공간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라고 합니다. 신 화백의 '작은 바람'이 꼭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대인시장 예술 야시장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는 광주문화재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시장 상인 참여율과 방문객 등이 지난해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 관계자는 "남녀노소가 함께할 수 있는 재래시장, 전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야간문화공간으로서 대인예술야시장이 재탄생하는 과정에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전국에 있는 모든 재래시장이 대인시장처럼 예술 야시장으로 특성화할 수는 없겠죠. 또 그렇게 자신만의 독특한 역사와 향기를 무시한 채 '잘 되는 시장 흉내 내기' 해봤자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할 순 없을 테구요.

관건은 우리 시장만이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광주의 대인시장은 '예향 광주'에서 착안해 작가들과 함께 어울려 살며 '예술 야시장'을 자신들만이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발굴하고 키워가고 있습니다. 우리 시장만이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그 무엇, 바로 그것이 특성화 전략 아닐까요.
#재래시장 #전통시장 #대인시장 #예술시장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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