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유럽 청년들의 삶을 그린 이탈리아 소설 <천유로 세대>
예담출판사
안토니오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알레산드로는 경제학을 공부한 후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죽어라 일해봤자 두 사람의 월 수입은 많아야 1000유로(약 147만원)일 때가 많다. 2006년 둘이 함께 쓴 소설 <천유로 세대>가 그저 로셀라, 클라우디오, 알레시오, 마테오라는 허구의 인물들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해 '아르바이트 하이에나'가 된 로셀라, 능력 있는 '계약직'으로 늘 해고 불안에 시달리는 클라우디오, 기자를 꿈꿨지만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우체국 직원이 된 알레시오, 부모님이 준 풍족한 용돈으로 놀고 또 놀기만 하는 만년 대학생 마테오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의 20대와 겹친다.
특히 로셀라가 논문대필, 보모, 옷 가게 점원 등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벌은 돈이 고작 700유로(약 100만원)라며 친구에게 대성통곡하는 내용에선, 순간 멍해졌다. 지난 여름 한 달 내내 밤낮 없이 일한 끝에 받은 인턴 월급이 40만 원임을 확인했던 때처럼 .
"클라, 하루 종일 생각해 봤는데... 이번 달에 내가 얼마나 벌었는지 계산해 보기 시작했어. 근데 봐. 딱 700유로 나오는 거 있지. 이게 뭐야...(책 153쪽)" "솔직히 요즘은 애 보는 일이 부업이 아니라 내 주업이 되는 것 같아 겁이 나. 아직 스물 여섯 살인데, 컴퓨터공학 졸업장까지 가지고 직업으로 베이비시터를 하기엔 좀 이른 것 같잖아(책 155쪽)"
6년이 지난 지금 로셀라는 어떤 모습일까? 신문 국제면이 '유로존 위기'로 가득한 최근 상황을 미루어 짐작컨대, 그녀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대성통곡하고 있을 것만 같다. 며칠 전 읽은 기사에 한 그리스 청년은 "이제 월급 1000유로는 꿈 같은 돈"이라고 했다. 겨우겨우 벌 수는 있었던 1000유로마저 꿈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앞으로 어떤 이름을 붙여줘야 하는가. 아니, 그들의 진짜 이름을 빼앗아가는 이는 누구인가.
앞서 말했듯 유럽 청년들과 대한민국 청년들의 모습은 닮아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후 월스트리트를 점령한 미국의 20대와도 비슷하다. '불안한 청춘', 아니 '불안사회'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자 국제사회는 정치권, 학계, 언론할 것 없이 모두 지금의 난상을 해석하고 설명하기 급급하다. 누구나 한 번쯤 '신자유주의'니 '자본주의' '금융위기' 등등을 들어봤을 법한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어려운 말만 남고 희망은 없다하지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조차 최근 인터뷰에서 "이제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지겹다"고 밝혔다. 연일 매스컴을 보고 듣는 내 귓가에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금융위기'란 단어들이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