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에서 샤워하고 명상하면 조금은..."

바라나시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위로가 되고 자신감을 준 여행

등록 2012.06.28 11:08수정 2012.06.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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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갠지스 강. ⓒ 최행락


취직이 안 된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특히 내 경우에는 아직 군대를 안 갔다왔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에서 받아주지를 않는다. 그래도 스펙이 나쁘지는 않은지, 전화는 한 번씩 온다.


상대: 안녕하십니까? 이력서 보고 전화드립니다. 입사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나: 아, 네. 그런데 군대를 안 갔다왔는데 괜찮나요?
상대: ('당황'이 전파를 타고 수화기를 통해 전송된다. 3초간 침묵.) 네, 아, 예, 그렇군요.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연락이 없다. 늘 이런 식이다.

그래서 포기했다. 취직을 하는 대신에 여기저기서 짬짬이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물론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었지만, 이 돈으로 뭘 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했다. 패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카메라나 다른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고민끝에 여행을 가 보기로 했다. 군대를 가면 이젠 한동안 여행을 못 할테니,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여행이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지의 선택은, 한국보다 싸고 오래 지낼 수 있는 곳을 중점으로 알아봤더니, 인도가 눈에 들어왔다.

인도는 내가 지금까지 여행해 본 어떤 나라와도 닮은 데가 없었다. 나는 주로 일본이나 미국, 홍콩 등 의사소통이 되거나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나라를 주로 여행했는데, 인도는 그 반대였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가장 쪼들리지 않고 보람차게 여행하고 올 수 있는 나라가 인도일 것 같아서 주저없이 첸나이 행 편도 티켓을 끊었다.

인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생각보다 깨끗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아름다운 인도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지내다가 마지막으로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하도 많이 듣고 사진으로 본 곳이라서, 별로 큰 기대도 관심도 없이 도착했다. 너무 관광객이 많아서 오히려 '꼭 이런 데를 와야했나?' 하는 시건방진 생각까지 하면서. 하지만 바라나시는 내가 가 본 인도의 어떤 곳보다 더 풍부한 문화를 내게 보여줬고, 아름다운 인연을 소개해줬다. 나는 이 짧은 여행기를 통해서 내가 바라나시에서 만난 사람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인도에 전혀 관심이 없을지라도 '인도라는 곳,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하고 생각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던 나라,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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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이가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 ⓒ 최행락


바라나시행 열차에서 만난 일본인 '다이'상과 함께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바라나시를 돌아다녔다. 다이상은 이미 이번 여행 초반에 바라나시에 왔었지만, 바라나시가 너무 좋아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뭐가 그렇게 좋길래 바라나시에 다시 올 정도일까?' 하면서 바라나시에서는 그와 함께 행동하기로 했다.

새벽에 바라나시에 도착했기 때문에 갠지스 강가에 있는 짜이 가게 말고는 전부 문을 닫았다. 다이상과 나는 짜이 가게에서 차나 한 잔씩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짜이는 아무 향신료도 넣지 않고 순수하게 차, 우유, 설탕만 들어있는 것인데, 여기서는 생강, 카다맘, 그리고 클로브를 넣은 짜이를 팔았다. 다시는 안 오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바라나시에 지내는 내내 여기서 생활하다시피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8살의 중학교 과학 선생님인 다이상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너무 답답해서 자기가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를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직접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 일본 사회는 희망을 잃었다고 한다. 열심히 노력해도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아서 자살율도 높고, 한마디로 엉망이라고 한다.

그걸 이미 중학생인 제자들의 눈에서도 읽을 수 있다고. 그들도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뭐가 하고 싶은지에 대한 꿈 보다는 조금이라도 성적을 잘 받아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학교에 가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주는 회사에 취직해야 한다고 듣고 자라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걸 보고 있는 게 너무 답답해서 자신은 일을 그만두고 배낭을 쌌다고 한다. 여행을 통해서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만큼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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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다이 야마자키상. ⓒ 최행락


이 이름도 없는 조그만 짜이가게에는 여행자고 현지인이고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인도에 오자마자 장에 탈이 나서 바라나시 숙소에서 2주일간 침대에만 누워있다가 드디어 햇빛을 보게 되었다는 한국인부터 시작해서,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는 겁 많은 프랑스인, 그리고 시타르에 꽂혀서 하루종일 악기만 연주하는 일본인, 또 하루에 두 시간씩 배드민턴을 치는 현지인들이 다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오히려 뉴욕보다 훨씬 더 '멜팅 팟(melting pot 인종 문화 등 여러 요소가 하나로 융합 동화되는 현상이나 장소)' 같달까? 그게 바로 인도의 힘이라는 거겠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배드민턴을 신나게 치고 나서 따뜻한 짜이를 마시고 있는 산 제이라는 녀석에게 물어봤다. "인생이란 뭐니?", "죽으면 어떻게 되는데?"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걸 깨달았어야 했다. 알고보니 산 제이는 대학에서 불교철학을 공부하는 녀석이었는데, 내가 이 질문을 하자마자 좋다고 덤벼들었다. 정확히 뭐라고 대답했는지는모르겠지만, "부처님을 믿지 않는 너는 멍청하고 껍데기 뿐인 꼭두각시 인형일 뿐이야"라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멍청함이 끝없이 반복되는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서 샤워를 하고, 아침마다 명상을 한 뒤 두 시간 동안 나와 배드민턴을 치면 너의 멍청함이 조금은 치유될지도 몰라"라고 따뜻한 조언을 해 주었다. 너무나 인도스러운 처방이다. 물론 갠지스 강에서 샤워도, 배드민턴도 치지는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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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제이가 짜이 가게에서 배드민턴을 하다 쉬고 있다. ⓒ 최행락


짜이는 싫어해서 레몬티를 마시며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프랑스에서 온 세버린은 떼제베의 승무원이라고 한다. 그녀는 인도에는 두 번째 오는 거라고 하는데, 처음 온 나보다 겁이 많았다. 바라나시의 비좁은 골목길을 다닐 때에는 내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덕분에 그녀의 남자친구로 오해받은 나는 일본에서 온 예쁜 여자아이와 이야기 할 기회도 놓쳤고, 동생에게 사 준다는 반지를 찾아다니느라 하루 반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대체 사진을 찍어달라는 이야기를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지, 게다가 내가 찍어주는 사진은 다 마음에 안 들어해서 몇 번이나 같은 장소에서 찍고 다시 찍기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괘씸죄로 아직까지 내가 찍은 사진을 안 보내주고 있다.

인도 할아버지의 한 마디 "그래 너희들은 돈이 참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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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버린이 장사하는 꼬마 아이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최행락


세버린과의 우울한 오후를 보내고 다시 짜이 가게로 돌아왔다. 가트에 앉아서 지는 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내 옆에 인도인 할아버지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왼손에는 담배를, 오른손에는 연필을 들고 뭔가를 끄적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온화하고 평화로워 보여서 셔터를 갖다 대었다.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이 그렇듯, 그도 카메라에 아무런 반응없이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있는 나를 본 세버린은 "너는 저 할아버지에게 모델료를 줘야 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래, 너희들은 돈이 참 중요하지?" 하고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하고 변명하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 인도에는, 겉으로 봤을 땐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속에는 없는 게 없어"라고 말했다. 이걸 영어로 말했는데, 정확히는 "Outside, we have nothing. Inside, we have everything"이었다. 깔끔하고 시적이랄까? 여운이 오래 남는 걸 보니, 역시 시인이 확실하다.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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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한 마디 "Outside, we have nothing. Inside, we have everything." ⓒ 최행락


그 외에도 이름모를, 다시는 못 만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에는 참 여러가지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록스타같은 헤어스타일의 중학교 교사가 있는가 하면, 한국말을 잘 하는 인도인 철학자도 있고, 평생을 서서 살아가는 수도승인 '스탠딩 바바'도 있다. 우간다에 꽂힌 일본 미소녀도 있고,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같은 시인도 있다. 나는 세상이 이렇게 넓고 복잡한 줄 몰랐다. 그리고 그런 독특하고 기묘한 인연을 조그만 도시에서 한꺼번에 만나게 될 줄도 몰랐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타지마할도 못 보고, 달라이 라마도 못 보고, 남들이 봤을 때는 인도를 제대로 보고 온 게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인도라는 곳은 내가 가 본 어떤 곳보다 너그럽고 따뜻한 곳이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나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은 나라가 인도였다. 생각해보니 바라나시에서 처럼 이렇게 인도 사람들과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다음 날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사람들과 짜이를 마신다는 건 바라나시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여행자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하지만 절대 여행객에 질리지 않아하는 어머니의 강을 끼고 있는 도시답게 그 마음이 누구보다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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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딩 바바는 평생 서서 사는 인도의 수도승이다. ⓒ 최행락


인도에 와 보기 전에는, 인도 물가가 비싸지면 아무도 인도로 여행을 오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바라나시에 와서는 그 생각이 바뀌었다. 돈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인도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는 게 확실히 존재한다.

여행을 하기 전에는 막연히 남들 하는대로 취직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세상에는 할 일이 넘친다는 걸 배웠다. 조금만 더 멀리, 넓게 바라보면 해야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넘치는데, 내가 너무 좁은 세상만 쳐다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상이 허무할 정도로 넓어서 오히려 위로가 되고 자신감을 갖게 했다. 나도 그 넓은 세상 속에서 작은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어 사람들 속에서 내 자리를 찾아 살아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공정여행 공모 응모 기사입니다. 인도 여행은 지난 3월 20일부터 6월 초까지 다녀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공정여행 공모 응모 기사입니다. 인도 여행은 지난 3월 20일부터 6월 초까지 다녀왔습니다.
#바라나시 #인도 #갠지스강 #취직 #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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