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진 에세이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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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수작'을 걸어왔다. 그것도 아주 대놓고. 그렇지 않아도 언제부턴가 눈길이 가던 터였다. 마음도 아주 조금. 그래서 혹시나 하는 기대에 덥석 손을 내밀었더니 이를 하얗게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행복해보였고, 함께 있으면 어쩐지 나도 그녀처럼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그녀, 김여진과의 '연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연애>. 책 제목이다. 왠지 '그녀답다'고 느꼈다. 멋들어진 부제를 붙였을 법도 한데 없다. 책등에 '김여진 에세이'라고 얌전하게 적혀있을 뿐이다. 그럴수록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그녀, 김여진이 말이다.
얼결에 연극 무대에 오른 것이 배우 삶의 출발이었다. 그리고 몇년 뒤, 평생 무대에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할 즈음 소문을 듣고 찾아온 누군가가 영화 시나리오를 건네며 오디션을 보러오라 했다. 당돌하게도 2차 오디션을 거부한 그녀에게 어찌된 일인지 한달 뒤에 합격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튼 그렇게 찍은 첫 영화가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였다. 그녀의 이름은 '순이'였다.
배우 김여진, 소셜테이너가 되다그 뒤로 영화 <박하사탕>(1999)의 '홍자', <취화선>(2002)의 '진홍' 그리고 드라마 <대장금>(2003)의 '장덕', <토지>(2004)의 '강청댁', <이산>(2007)의 '정순왕후' 등 그녀가 살아낸 인물들이 하나둘 늘어갔고, 그녀는 그렇게 점점 '낯익은' 배우가 되어갔다. 아직 '김여진'이라는 이름이 귀에 익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러던 2010년 가을, 서울대학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부당 해고에 맞서 파업을 벌인다는 소식을 접했다. 트위터에서였다. 그리고 몇달 뒤, 무대에 서기 위해 여느 때처럼 국립박물관을 거닐던 어느날, 비로소 한 사람 두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엄마를 부탁해>라는, 그녀가 출연하고 있는 연극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깨끗이 살게 한 엄마, 세상의 모든 엄마들. 심지어 무시하고 하대했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해 겨울엔 손 씻을 공간이 없다며 서울 종로구 환경미화원이 1인시위를 하는 모습이 트위터로 날아들었다. 그걸 보며 그녀는 버릇처럼 상상을 해보았다. "새벽 청소를 마치고도 손을 씻지 못하고 버스에 오르는 그 사람의 마음"을. 그녀는 배우니까.
그리고 2011년 1월, 이번엔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 소식이 들려왔다. 농성 7일째 되던 지독히도 춥던 날. 무슨 마음에서였을까. 홍익대에 가보자 마음을 먹었다. 자신을 못 알아보면 어쩌나하는 걱정과 함께 찾아간 그곳에서 사진 찍자고, 사인해 달라고 하던 아주머니들을 만났고, 고마웠고, 금세 친해졌다. 그래서 같이 밥도 한 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