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우스갯소리 같지만 6월 말 대학생들이 흔히 털어놓는 고민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여름 방학을 시작하는 6월 말. 하지만 대학생들이 마냥 웃으며 방학을 맞이할 수는 없다. 방학 바로 직전, 1학기 성적 열람이라는 '관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방학을 시작하는 기분은 크게 달라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대보다 낮은 성적 때문에 장학금을 받지 못해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되지 않는 성적이었다. 출석도 빠지지 않고 잘했고, 요구하는 과제도 다했기 때문에 D+이라는 성적은 생각지도 않았다. 김씨는 성적에 대해 문의하기 위해 교수와 연락을 취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수소문해 알아보니, 해당 교수는 출장 중이었다. 김씨는 성적이 나온 뒤 3일 가량 주어진 성적 정정기간 동안 계속해서 연락을 취했지만 결국 연결되지 못했고, D+이라는 성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더 지난 뒤 김씨가 출장에서 돌아온 교수에게 성적에 대해 문의해 들은 답변은 더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성적을 잘못 입력한 것이지만 이미 성적 정정기간이 끝났으니 "다음 학기에 재수강을 하면 A+를 주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김씨는 잘못 입력된 성적 때문에 해당 평균 학점은 물론 장학금 등에 타격을 입은 후였다.
성적 정정기간이란 교수가 성적을 확정하기 전에 학생이 성적에 대해 문의하거나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기간이다. 학교에 따라 성적이 나온 후 3~5일 가량 성적을 정정할 수 있게 한다. 이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오류에 대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이 기간에는 학생이 제기한 이의신청이 타당할 경우 성적을 정정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김씨의 경우처럼 성적 정정기간 동안 교수가 출장 중이거나 아예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특히 교수가 연락두절인 경우 학생들은 성적과 관련해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어 답답해질 수밖에 없다.
전북 소재의 대학교에 다니는 최아무개(23)씨도 성적 정정기간 동안 여러번 교수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성적과 관련해 어떤 문의도 할 수 없었다.
"무작정 성적을 올려달라는 게 아니라, 평가 기준에 대해 궁금해서 전화를 한 것이었는데 교수님은 받지 않으셨다.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고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성적이 확정됐다. 여러번 전화를 했음에도 받지 않은 것은 의도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소개한 김씨나 최씨의 경우처럼, 성적에 대해 확인하고 싶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던 학생들은 성적 정정기간이 "있으나 마나 하다"고 불평했다. 일부 교수들은 성적 발표 전 연락을 하지 말라고 미리 '경고'하기도 한다. 김아무개(23)씨 역시 그런 경고 때문에 성적 정정기간에 교수에게 연락을 취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친구들과 선배들 사이에서 그 교수님은 유명하다. 평소 수업 시간에 성적 정정기간에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하면 오히려 점수를 낮춰버리겠다고 말씀하신다. 성적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어도 성적이 깎일까봐 두려워서 연락을 하지 못했다."
교수가 성적 정정기간에 쏟아지는 많은 학생들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해 처음부터 연락을 하지 말라고 공지를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교수가 주는 대로 성적을 받아야 하는 것이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성적 정정기간만 되면 교수와 학생이 갑-을 관계가 되는 것이 불만이라고 말하는 학생도 더러 있다.
"학습에 피드백이 중요... 교수도 더욱 공정한 평가할 수 있어"
이러한 고민과 불만이 근래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6년 전 학생들은 성적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 학습을 위해 필요하다며 '과제 돌려받기 운동'을 기획하기도 했다.
2006년 연세대학교 문과대 학생회는 '과제물 돌려받기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문과대 학생들은 과제물의 맨 앞장에 '교수님, 과제평가를 돌려받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여 냈다. 스티커를 붙여서 제출하면 교수들은 과제물에 대한 평가를 하고, 그것을 다시 학생들에게 돌려주어 교수와 학생 간의 의사소통을 더 원활히 하는 것이다.
이후 다른 대학에서도 과제물 돌려받기 운동, 빨간펜 운동, 피드백 운동 등을 기획했지만 실제로 대학에서 그것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학생들의 자발적인 움직임 이후 교수들 사이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일부 교수들이 학기 중간과 끝 두 번에 나눠서 점수를 미리 공개했다. 교수들이 성적 정정기간을 따로 두고 그 기간에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번거롭더라도 수업 참여에 대한 즉각적인 평가로 학생들에게 성적을 알려줌으로써 정정기간의 불편함을 해소하려한 것이다.
전북대 박종은 겸임교수도 시험 때마다, 제출된 과제마다 바로 채점해 학생들에게 성적을 공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종은 교수는 2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습이라는 것은 평가도 중요하지만, 피드백도 상당히 중요하다"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결과에 대해 그 때마다 성적을 바로 공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어 "이렇게 하면 학생들도 자신이 했던 학습을 되돌아보고,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교수도 이 과정에서 더욱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진희 한대련 교육실장 역시 "성적 정정기간은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고 정정할 수 있는 기간으로 학생이 성적에 대해 교수에게 문의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교수는 문의에 대해 학생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험이나 과제에 대한 교수의 피드백은 학점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날이 갈수록 취업에 학점 등의 스펙이 더욱 중요해지고 학점에 따라 장학금 받는 것이 좌지우지 되다보니 학생들은 더욱 성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 정정기간은 짧지만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시기이다. 교수와 학생 간의 불통의 시간은 이제 그만 가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소통의 시간이 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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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문의하면 점수 깎는다"... 이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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