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3∼14 전국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전국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앞두고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 소속 학생들이 일제고사 반대를 주장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성호
이러한 견해들의 바탕에는 다음 두 가지의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교육체계의 전반적인 개혁은 한두 해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지속된다는 점을 망각한 것이다. 국공립대학교의 통합안 같은 거대한 시스템의 변화는 정권의 성격을 떠나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다. 현재 대학입시에서 수시제도와 입학사정관제도의 도입만 해도 수년 혹은 십수 년에 걸친 변화의 산물이다. 조금씩 변화해 왔기에 일반 국민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사실 수시 중심의 대학 자율화 틀 속에서 오랜 세월 변화를 거쳐 자리잡은 게 현재의 대입 제도다.
그러므로 올바른 방향의 개혁 시스템이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당연하고, 이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진하면 분명 변화는 온다. 그렇지 않고 사교육을 때려잡는 식으로 매년 규제만 강화해 봤자 한국의 입시문화는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민주당뿐만 아니라 교육계 전반은 물론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로 통합안의 구체적 사항과 비전을 더 다듬어야 한다. 설사 민주당이 국민 인기에 영합하여 낸 정책이라도 이를 더 확장해 정치권 전체의 의제로 만들 필요가 있다.
둘째, 전반적인 패배주의 혹은 비관주의다. 학벌사회와 대학 서열화는 우리 문화 속에 완전히 내재화됐다. 이 탓에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 두렵고 불안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보수쪽의 경쟁제일주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관은 말할 것도 없지만, 위의 첫 부분에서 서술한 것처럼 성적이 신통치 않은 일반 학생들조차도 경쟁논리에 매몰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재 국공립대 통합안에 대한 담론 확산이 절실하다. 이 안이 전부라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학벌주의와 이로 인한 입시교육의 대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다각도의 토론회와 공청회, 심포지움 등 기초 작업이 활발히 진행돼야 한다.
본격적인 토론 확산을 위하여 현재 논의 수준에서 반대 견해들의 맹점을 하나씩 따져 보겠다. 먼저 연세대, 고려대 중심의 사립대학교들이 일류 대학의 반열에 올라 새로운 서열화를 부를 것이란 점이다. 우리 사회의 대학 서열 구조는 워낙 뿌리 깊어 이 견해는 일견 타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국공립대학교 통폐합 같이 큰 논의가 오랜시간 동안 내실있게 준비된다면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작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학생들이 가장 선호한 대학 중 하나가 서울 시립대였다. 시립대가 반값등록금을 실시한다고 하자 일부는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서울시와 시립대가 합심해 실천하자 다수 학생들이 몰린 것이다. 인천시립대의 경우도 그렇다. 현재 인천시립대는 과거 '사립 인천대'로 대학 비리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시립화가 추진되고 성사되면서 비리학교의 멍에를 벗고 새롭게 거듭났다.
물론 지속적인 개혁안의 추진을 위해서는 여야의 타협과 국민적 소통, 설득 등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에 예산 문제에서도 많은 진통이 예상된다. 그러나 시도해보기도 전에 문제점을 나열하면서 안 될 것이라고 걱정만 한다면, 학벌사회의 기득권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국공립대 통폐합이 학교와 학생들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것이라 하고, 인재 양성에서 매우 불리할 것이라는 견해는, 현재의 학벌구조의 폐해가 불가피하다는 견해와 다름없다. 현재 우리는 세계 최고의 경쟁구도 속에 살고 있지만, 과연 우리나라 대학들과 학생들이 세계적 수준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혹자는 우리나라가 현재 이만큼이라도 살게 된 배경이 살인적인 경쟁이 만든 경쟁력과 부지런함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일면 타당한 면이 있으나, 이러한 관점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비용을 간과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경쟁력은 고급과정으로 올수록 점점 더 떨어진다. 획일적인 교육과정 탓에 오히려 숨은 인재가 자기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사람 능력은 매우 다양하고 그 능력이 발휘되는 시기도 각자 다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0대의 학습능력만을 절대시하고 신성시 한다. 대학의 서열화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비정상적인 구조가 개선된다면 오히려 더 많은 인재들이 양성되고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올라갈 것이다.
현재의 국공립 대학 통폐합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 될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거대하고 근본적인 변화의 비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속적, 점진적으로 근본적 변화를 일구어 낸다면 사교육 시장도 달라질 것이다. 사교육 시장도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변화해 나갈 수 있다. 교육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쓸데없이 사교육 시장에 진입하는 대졸자들도 줄어들 것이고 더 생산적인 곳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학벌주의 사회, 대학 서열화의 근원적인 개혁이 사교육 철폐의 가장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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