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도전했던 김부겸 민주통합당 전 의원. 40% 지지율로 대구에서 야당도 가능하다는 길을 보여준 김 전 의원은 대선을 앞두고 복수의 후보캠프에서 '러브 콜'을 받고 있다.
남소연
"대구경북은 새누리당이 가장 강한 지역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야권의 몫을 키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구경북 합쳐 20% 못 미쳤다. 이번 대선에선 5% 더 얻겠다. 박근혜의 아성, 대구. 한번에 함락 못 시킨다. 다만, 논리와 정책으로 대구의 미래를 놓고 설득하겠다. 언제까지 속 없이 남들 박수 친다고 따라 칠 것인가 차분하게 설득할 것이다."양복을 입은 50대 남자가 우산도 없이 손가락만 한 굵기의 빗줄기를 맞고 서 있었다.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고 선 게다. 그는 12년간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의정활동을 폈던 김부겸 전 민주통합당 의원이다. 12년간 의전에 꽤 익숙해졌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검정색 노트북 가방을 메고 택시를 잡는 모습이 한편으론 신선했다. 다시 '정치의 초심'으로 돌아간 건가 갸우뚱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경기도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한 김부겸 전 의원은 지난 4.11 총선에서 대구행을 택했다. 그와 함께 정치 해온 후배들은 뜯어말렸다. 끝내 죽겠다는 것이냐고. 소주 4병을 먹어도 취하지 않는다는 그의 보좌관은 눈물로 페이스북을 장식했다. 김부겸의 결심을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그러나 그는 결행했다. 그리고 낙선했다. 그가 얻은 지지율은 40%다. 놀라운 숫자다. 대구에서 야당도 가능하다는 길을 보여준 셈이다. 김 전 의원은 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의 온갖 후보캠프에서 모두 '러브 콜'을 받았다. 그러나, 거절했다. 왜 거절했을까. 김 전 의원은 3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커피숍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솔직하게 고백했다.
"대구엔 당비 내는 민주당원 숫자가 1000명 수준이다. 대구에서 맹주 노릇하던 이강철 전 수석도 특정 캠프로 들어갔다. 나마저 어떤 후보를 위해 뛰면 본선은 누가 챙기나. 정작 중요한 건 본선 아닌가. 대구에서 본선을 준비해야 한다. 대구에선 민주당이 통합진보당보다 못한 수준이다. 편하게 누구에게 줄 설 상황이 아니다."대구에서 새로 쓰는 야당 역사를 만들어보겠다고 작정한 격이다. '대구의 맹주' 박근혜를 꺾을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당찬 결의도 밝혔다. 박근혜와 맞서는 순간 지역정치에서 살아남는 정치인이 없다는 편견과 공식도 깨겠다고 했다. 그 첫 도전은 12월 대선이다. 목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얻은 지지율보다 5% 높게 잡았다. 야권후보 지지율 25%. 김부겸의 올 대선 대구의 목표다. 그런 결심에 비해 민주통합당과 야권의 현실은 깜깜하다.
그는 "아무리 박근혜를 향해 유신의 딸이라 공격해도 그는 별로 아프게 느끼지 않을 것"이라며 "박근혜의 최대 약점은 소통과 엄격한 리더십"이라고 비판했다. 김 전 의원은 "우리 국민은 MB 때문에 엄격한 리더십에 완전히 질려 있다"며 "박 의원이 벗어나고픈 이미지도 바로 그 점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리 국민이 진정 원하는 리더십은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리더십"이라고 분석했다.
박근혜 의원을 꺾을 야권의 1위 후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안 원장이 민주당에 입당할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안 원장이 대선후보가 된다면 무소속으로는 어렵고 민주당과 함께 간다면 적어도 연립정부 구성에 대한 구체적 상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박근혜를 이기기 위해 표가 모자라니 안 원장이 좀 나서달라는 식은 안 된다"며 "안 원장이 정치세력을 만들려면 민주당과 합의해 당을 새로 만들어도 된다, 연립정부 약속 없이 무조건 안철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그는 고 제정구 전 의원의 말을 빌어 "정치는 결국 걸레가 되는 것"이라며 "자신은 더러워지더라도 세상이 조금씩 닦인다면 좋다, 그 각오를 하고 덤벼야 한다, 우아한 인격 등을 다 던져서라도 구해야 할 가치와 아젠다, 국민이 있다면 역사적 대의에 복무하며 헌신해야 감동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대선후보들에게는 "노무현과 같은 다이내믹스를 만들어야 한다"며 "고만고만한 후보들끼리 경쟁하는 구도로는 결국 2부리그 수준밖에 못 만들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총선패배 후 민주통합당의 빅3(문재인·손학규·김두관) 대선후보의 캠프 합류 제안을 모두 거절한 이유도 밝혔다. 집까지 찾아온 손학규 전 대표에게는 '같은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천형 아닌 천형이 시너지를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상처를 더 낼 것이라고, 문재인 의원에게는 손 전 대표도 거절하면서 문 선배 도울 수는 없지 않느냐고, 김두관 지사를 돕고 있는 이강철 전 수석에게는 '대구는 누가 지키냐'며 거절의 뜻을 각각 밝혔다고 말했다.
오로지 올 대선을 앞두고 대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에게 맞설 지역민심을 25%까지 끌어올리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규정했다. 특정캠프에 합류하는 순간 대구에서 본선을 치를 장수가 없어진다고 본 것이다. 본선을 지휘할 장수가 특정 후보캠프에서 활동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간곡한 뜻이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이 자리에서 지난 총선에서 패한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내뱉었다. 김 전 의원은 "민주당의 모든 정치적 판단이 과도하게 수도권 젊은 층에게 경도돼 있다"며 "우리의 원 에너지는 민중이며 진정한 권력은 풀뿌리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전 의원은 "(민주당이) 국민의 삶에 감동 주는 절박한 정책이나 아젠다를 발굴하지 못한 채 시건방을 떨기 시작했다"며 "쌈빡한 것만 찾는데 그것이 민중의 본질적 삶을 대체한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선후보들이 이 문제에 대한 고민과 답을 내놔야 한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주5일 삼겹살에 소주 먹는 정치인, 그리고 대구의 미래- 총선 이후 주로 무엇을 하며 지냈나. "대구에 갑자기 내려갔기 때문에 지금은 주로 선거 때 신세 진 분들에게 인사드리는 중이다. 예전엔 전화만 했는데 이젠 직접 만나 선거 때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또 내가 대구라는 사회를 잘 모르는 것도 있기 때문에 그런 얘기도 나눈다. 선거 때는 한 5kg 살이 빠졌는데 도로 5kg 쪘다. 아무래도 주 5회 정도 삼겹살에 소주 먹은 탓 아닐까?"
- 3선 의원이지만 낙선한 상황인데, 술값은 누가 내나."형편 괜찮은 사람에겐 얻어먹고 아니면 내가 산다. 삼겹살에 소주가 제일 싸니까."
- 일각에선 생계형 정치인 김부겸의 생계를 걱정하던데."금년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내년엔…. 집사람이 작은 가게를 하기 때문에 밥은 먹을 수 있다. 다만 나는 뭘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다. 어설프게 사업 같은 데 투자하기도 그렇고… 걱정이다. 선거보전비용으로 일단 빚 1억5000만 원은 조기상환했다. 그 외에 따로 빚 진 건 없다. 괜찮다."
-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했지만 대구에선 졌다. 왜 졌다고 생각하나."내가 대구에 갈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딴 건 차치하더라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대구 지역의 문제들에 대해 최소한의 분노나 자구책, 뭐 이런 걸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여전히 오랜 관행적 선거행태가 강했다. 뭔가 변해야 한다는 당위엔 공감했지만, 그래도 연말 대선 박근혜씨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 박근혜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대구시민들에게 강했다는 건가."내가 뭔가 변화를 설득해서 이들이 귀를 기울일 만하면 이런 말이 돌았다. '박근혜가 위험하다.' 사람들이 조금씩 흔들리다가도 박근혜 말만 나오면 도로 파도가 잠잠해졌다. 3개월은 내가 대구 사람들을 설득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대구경제가 전국에서 꼴찌다. 일자리도 없다. 대구에 변화가 필요한데, 여전히 김부겸은 박근혜 당선에 가장 해가 될 사람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가정에게 계신 분들을 설득하는 게 참 힘들었다."
- 대구에서 졌는데 패배로 배운 점은 무엇인가."수도권에서 내리 3선을 하는 동안 나는 지방이 이렇게 피폐해졌는지 몰랐다. 그저 '경제적으로 수도권보다 좀 어렵겠지' 정도였다. 그런데 사회경제는 물론 문화, 의식 등 모든 분야에서 지방이 거덜 나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홍신자니 아무개니 전위예술가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다 떠났다. 예술 해서 먹고살 수 없으니까.
대구엔 그 흔해빠진 피아노학원도 점점 없어지고 있다. 못다 이룬 꿈 자식 통해 보상받으려면 무조건 국영수 위주로 학원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대구에 내려가지 않았다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사실들을 계속 알게 된다. 생각보다 지방은 심각하다. 대구 사람들에게도 가슴 속 멍이 있다. 대구가 그 정도인데 경북은 오죽할까, 더 처절한 삶이 있겠다 싶다."
- 지방균형발전에 대해 퍽 공감하는 것 같은데."노무현과 그 정권이 하려고 했던 지역균형발전이 정말 정치적 슬로건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굳혔다. 한쪽은 경쟁 때문에 마음이 피폐해지고, 또 다른 한쪽은 이미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열패감으로 살 수밖에 없다면 그건 잘못된 나라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화국의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 계급계층으로 나뉘어 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지역까지 아예 규정이 돼버린다면 세상에 그런 비극이 또 어디 있겠나."
- 정치인 김부겸이 규정하는 대구는 어떤 곳인가."대구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자부심이 있다. 첫째, 민족사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무언가 역할을 했다는 강한 자부심이 있다. 또 산업화의 주역이었다는 자존심도 매우 강하다. 현실은 대구를 대표하는 산업이 몰락했지만, 또 지역의 몰락과 궤를 같이 하고 있지만, 그 문제점을 뚫고 나갈 전망을 상실한지 꽤 됐지만, 마음 한 켠 절망감이 있지만, 자존심 때문에 잘 드러내지 않는다. 오기로 버틴다고 할까. 정치적으로는 죽든 살든 한 세력에게 올인 하고 있다. 이런 것들로 대한민국 전체 흐름에서 매우 멀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은 시작된 것 같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과감히 투표로 바꾸자, 이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 박근혜 의원이 대구 지역발전에 어떤 업적이 있나."없다. 박근혜 의원 대 대구시민은 스타와 팬클럽 관계다. 팬클럽이 되면 무슨 일이든 예쁘고 고맙게 보이는 법이다. 대구 사람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고마운 존재고, 그 내외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데 대한 연민이 강하다. 따라서 그 핏줄인 박근혜 의원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게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하는 분위기다. 또 하나는 지역구도 때문에 자신들의 행동이 옳다는 과장된 허상의 확신이랄까 그런 게 굳어져 있다."
- 보수색채가 상당히 강한 지역 같은데, 야당 정치인 김부겸은 과연 살아낼 수 있을까."뭔가 계기가 있으면 변화에 대한 요구가 분출될 거라고 본다. 현실에 대한 분노가 폭발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바로 내가 득표한 40%다. 본인들 입으로도 새누리당 찍어줘봐야 기대할 게 별로 없다는 것 잘 안다고 한다. 그런데 누굴 찍냐, 묻는다. 한때는 자민련도 찍어보고 무소속도 찍어봤지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호남당이다 이런 편향 갖고 있지만, 그보다는 민주당의 정치행태가 자신들과 잘 안 맞다고 생각한다. 좀 무책임해보이고 등등. 내가 결국 이 지역에서 민주당에 대한 인식, 정치풍토 이런 걸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대구사람들도 선뜻 민주당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졌다. 안 진다는 판세분석이 결국 이런 결과를 만든 게 아닐까.
"나는 민주당이 이간다고 생각 안 했다. 계속 경고했다. 최고위원회의 회의록을 참고해보시라. 우리 사회의 정치지형은 51 : 49로 보수 우위의 사회다. 보수 대 진보의 지형은 사실 계급계층적 이해관계와 연결돼 있다. 이걸 흔들 만한 계기가 없으면 안 바뀐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도 노인 폄하발언이 판을 복원시켰다. 그 정도로 보수정치층은 단단하다. 그걸 쉽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민주당) 사람들이 너무 쉽게 생각해 걱정이다.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니까 박 의원은 신장개업을 빨리 서둘렀다. 이명박 세력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이 그 프레임을 놓쳐버렸다. 우린 안일했고 저쪽은 공천과정의 테마까지 있었다. 우린 그저 사회 소수자 정도였지만 그쪽은 아주 구체적으로 이주여성, 탈북자(비례대표 공천-편집자주)라는 테마가 있었다."
- 친노가 수장이었던 민주당의 리더십 문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나."선거는 한 사람과 한 세력의 문제가 아닌데도 야권연대로 1 : 1구도만 짜지면 이길 것이라는 너무 안일한 생각을 한 것이다. 가장 절박한 시대정신을 던지고,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감동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야권연대가 정치권의 정치공학엔 매우 중요했지만 정작 국민들에게는 뭐가 절박했나? 감동도 없었다."
민주당, 언제부터 수도권 엘리트 정당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