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계 철거 외벽 공사를 끝내고 비계를 철거하는 장면
홍광석
어떤 면에서 집짓기는 색을 찾는 작업이었다. 지붕에 얹을 기와의 색, 집 전면에 붙이는 돌의 색, 시멘트 사이딩의 페인트 등 여러 번 색을 선택하는데 갈등을 겪어야 했다. 집이란 가족의 공간이면서 사회 구성의 중요한 실체라는 점, 또 한 번 색을 입히면 살아있는 동안에 다시 수종하기란 어렵다는 점 때문에 덜렁 내키는 대로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튀지 않으면서도 따뜻하고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편안한 색을 찾았지만 얼른 보는 순간에 이것이다 하는 색을 찾기는 어려웠다. 결국 소비자는 오직 생산자가 제시하는 견본 혹은 카탈로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기업이 제시하는 견본이나 카탈로그는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측면도 있었다. 그렇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카탈로그는 소비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기업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기업이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한 다품종 소량 생산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소품종 대량 생산을 시도하면서 제품의 디자인과 색상을 자신들의 의도에 맞추어 제작하여 사실은 소비자 개인의 취향을 제약하고 선택의 폭을 제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기업이 제시하는 카탈로그는 선택하는 소비자들에게 나 아닌 대중들의 시선을 더 의식하도록 강요하는 측면도 있었다. 타인의 시각으로 튀지 않는 색, 부담이 가지 않는 색을 고르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른 집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집의 색상에 안도하는 소비자들. 마치 학교에서 오지 선다형 문제에 대한 답을 고르듯 주어진 범위 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
결국 개성 없는 소비자를 양산하는 셈이었다. 기업의 제한된 색상과 무의식적으로 선택을 제한하는 기업의 의도가 맞물린 현실에서 자연과 친화적인 색, 집의 품위를 높여주는 색, 주인의 개성을 반영하는 색을 찾는 것은 하나의 이상이었을 뿐이었다. 나 역시 자본의 편의에 따라 제시한 색 중에서 하나를 찍으면서 '운명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뒷맛이 개운한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