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숭겸 추앙하는 곳은 많은데, 김락은 없네

[노래의 고향 8] <도이장가>

등록 2012.08.01 10:41수정 2012.08.1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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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는 다섯 가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지 사항이 있다. 살생, 도둑질, 간음, 거짓말, 음주, 이 다섯 가지다. 팔관회(八關會)는 이 오대계(五大戒)에 사치하지 말라, 높은 곳에 앉지 말라, 오후에는 금식하라는 세 가지 계율을 덧붙인 여덟 가지를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엄격히 지키는 불교 의식이었다.

삼국사기는 팔관회 행사가 551년(진흥왕 12)에 처음 시행된 것으로 전한다. 하지만 진흥왕 이래 우리나라의 팔관회는 호국적 성격이 짙었고, 꼭 부처만 섬긴 것도 아니었다. 천령(天靈), 오악(五惡). 명산(名山), 대천(大川), 용신(龍神)께 두루 나라의 안녕을 빌었다.


 (사진 위 왼쪽) 신숭겸 장군 유적지 전경, (위 오른쪽) 표충단, 순절지 비각, (아래 왼쪽) 표충사, (오른쪽) 상절당
(사진 위 왼쪽) 신숭겸 장군 유적지 전경, (위 오른쪽) 표충단, 순절지 비각, (아래 왼쪽) 표충사, (오른쪽) 상절당정만진

1120년, 즉위 5년차이던 고려 예종은 서경(평양)에서 열린 팔관회에 참석 중이었다. 그런데 두 허수아비[假像]가 말을 타고 돌아다녔다. 왕이 '저것은 무엇인가' 물었다. 신하들이 대답했다.

"태조께서 예전에 팔관회를 여실 때에 김락, 신숭겸 두 공신이 함께 자리하지 못한 것을 애석히 여겨 가상 둘을 만들어 장군의 복장을 입힌 다음 옆에 앉혀 술을 권했는데, 벌컥벌컥 마실 뿐만 아니라 일어나서 춤까지 추었습니다. 그 이후로 팔관회는 두 장군을 줄곧 모시고 있습니다."

말을 들은 왕은 개국공신 김락(金樂)과 신숭겸(申崇謙)의 가상을 바라보며 감동에 겨운 나머지, 두[二] 장(將)군을 추도(悼)하여 노래[歌]를 지어 불렀다. 사람들이 왕의 노래 '悼二將歌(도이장가)'를 받아 적었다.

 신숭겸 장군의 순절 장소를 기려 세워진 비
신숭겸 장군의 순절 장소를 기려 세워진 비정만진
主乙完乎白乎
心聞際天乙及昆
魂是去賜矣中
三烏賜敎職麻又欲

望彌阿里刺
及彼可二功臣良
久乃直隱
跡烏隱現乎賜丁


왕은 물론 우리말로 노래를 지어 불렀다. 우리 문자가 없었으므로 신하들은 한자를 이용하여 왕의 노래를 적었다. 황조가(黃鳥歌)처럼 한문으로 번역하여 적지 않고 이두식(吏讀式) 표기로 기록했다.

유리왕은 우리말로 노래를 했는데 그것을 사람들이 한역시(漢譯詩)로 남기는 바람에 황조가의 본래 노랫말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도이장가는 예종의 노랫말을 우리 소리로 기록하였으므로 거의 원형을 복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한문 해독 전문가라 할지라도 신숭겸의 행적을 기록한 <평산신씨 장절공유사>에 전하는 도이장가의 뜻은 읽어내지 못한다. 한자를 활용했을 뿐 결코 한문이 아닌 까닭이다. '산에 바람소리가 난다'를 'sanebaramsoreegananda'로 적어놓았다고 해서 그것을 영어로 알고 해석하려 들어서야 어찌 뜻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 양주동(梁柱東)의 주해(註解)를 참고하여 도이장가를 대략 우리말로 옮겨가며 읽어본다.

님을 온전히 지키시려는
그 마음 하늘 끝까지 미치셨네
넋은 이미 가셨지만
대왕께서 내리신 벼슬은 대단하도다.

(탈춤을) 바라보니 알겠도다
그 때의 두 공신이시여
이미 오랜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빛나는도다

 파군재, 신숭겸 장군 동상
파군재, 신숭겸 장군 동상정만진

본래 이름이 능산(能山)인 신숭겸은 전라도 곡성 사람이라는 설도 있고 춘천 사람이라는 설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927년에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서 죽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왕의 옷을 대신 입고 견훤군을 유인하는 동안 왕건을 탈출시킨 신숭겸의 절묘(妙)한 지(智)혜를 기려 마을이름이 그렇게 지묘동이 된 곳이다.

지묘동에는 대구광역시 기념물 1호인 '신숭겸 장군 유적'이 있다. 장군이 죽은 자리에 투구를 묻고 네모난 봉분을 쌓아올렸다는 표충단을 비롯, 순절 장소를 기려 표충단 바로옆에 세워진 '高麗壯節申公殉節之地'(고려장절신공순절지지) 비석, 그리고 사당과 동상 등을 두루 갖춘 역사유적으로, 왕산자락에 설치되어 있다. 왕산은 왕건이 넘어서 도망을 쳤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묘동 입구는 동화사와 파계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 고개다. 고개의 이름은 파군재. 왕건의 군대가 견훤군에게 크게 부서진 고개라는 뜻이다. 이곳에도 신숭겸 동상이 있다. 

 유적지 안의 동상
유적지 안의 동상정만진
신숭겸과 김락 두 장수는 시호가 같다. 장절(壯節)이다. 같은 일을 했으므로 그렇게 시호도 같다. 그래서 고려 시대 때에는 탈놀이에 함께 모셔져 많은 이들로부터 섬김을 받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신숭겸 장군은 2004년 10월 대구, 춘천, 곡성에 동상이 한꺼번에 세워지는 등 예나 다름없는 숭상을 받고 있는데 비해 김락 장군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점이다. 도이장가에도 같이 등장하고 탈놀이에도 함께 모셔졌는데, 왜 지금에 이르러서는 신숭겸 장군만 크게 추앙을 받고 김락 장군은 잊혀지고 있는 것일까?

살아서나 죽어서나 사람은 같은 일을 하면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서 벌어지는 비극이 얼마나 많은가? 도이장가를 낳은 팔공산 자락 신숭겸 장군 유적지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동체'에 있다고.

덧붙이는 글 | TNT뉴스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TNT뉴스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도이장가 #신숭겸 #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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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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