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최전방 병사들은 어떻게 생활할까

화천 중동부 최전방 스케치

등록 2012.07.08 17:43수정 2012.07.0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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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에서는 티격태격 싸움의 연속이지만, 이곳 중동부 전선인 최전방은 평화롭습니다. ⓒ 신광태


지난 7일 무더위가 한껏 기승을 부리던 토요일, 중동부전선 최전방 OP를 찾았습니다. 강원도와 칠성부대에서 추진 중인 안보체험 관광지에 대한 사전 답사를 위해서였습니다. 동행하신 분들은 통일연구원에 종사하시는 박사님을 비롯한 연구진들. 안보관광지 개발에 있어 이 분들의 의견을 참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꾸불꾸불한 산길을 돌아 가파른 언덕을 오르길 수차례, 출발지인 화천에서 1시간 정도 걸렸다 생각될 즈음 도착한 중동부 OP.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네 번째 만나는 이승준 대대장님이 친근한 미소로 우리 일행을 반깁니다.

"저쪽에 보이는 것이 금강산댐으로 알려진 임남댐이고, 반대방향인 남쪽에 보이는 것이 평화의 댐입니다. 또 여러분들 바로 앞에 보이는 저곳이 남쪽 GP이고 건너편에 허름하게 보이는 곳이 북쪽 GP입니다..."

전방 최고의 관광해설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해박한 지식과 말솜씨를 겸비한 대대장은 한곳이라도 설명을 놓칠세라 30여 분에 걸쳐 전방의 상황을 비롯해 장병들의 생활상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습니다.

안보를 위한 최고의 경쟁력은 정서와 감성을 잃지 않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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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할때마다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는 이승준 대대장. ⓒ 신광태


"우리 부대에서는 병사들의 경쟁심을 유발하기 위해 행군, 구보 마일리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색다른 것은 독서 마일리지제도도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행군과 구보에 특출 나더라도 독서량이 낮으면 평균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는데, 이 같은 제도를 운영하게 된 동기는 병사들의 독서량 함양을 통해 군 생활 중 매마르기 쉬운 감성과 정서를 키워 나가기 위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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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의 행군,구보, 독서 마일리지 현황판 ⓒ 신광태


그래서인지 OP 내무반 입구 벽면에는 마일리지 현황표를 비롯해 장병들의 갤러리 공간, 문학작품 코너 등이 설치돼 있습니다.

"이곳으로 배속을 받아 들어오는 이등병들 면담 시 빼 놓지 않고 묻는 말 중의 하나가 '군 생활 중 네 목표가 무엇이냐?'입니다. 다수의 병사들이 입대할 때 뚜렷한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없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군 입대라는 부담감에 막말로 아무 생각 없이 입대를 했다는 안타까움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나와 같이 군 생활 하면서 제대 후 목표를 정해라'라고 말했더니, 다수의 병사들이 일병을 달면서 뚜렷한 계획을 세우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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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들을 위한 GOP문학 작품관 ⓒ 신광태


그래서인지 이곳 병사들은 책을 1달에 두 권 이상 1년째 읽고 있다는 병사에서부터 제대 후 빵가게 운영을 위한 연구를 하는 병사들, 사법시험에 도전하겠다는 병사들의 정보 습득 때문에 4대의 컴퓨터가 설치된 정보 이용실은 언제나 만원 사례를 이룬답니다.

불현 듯 돌아본 내 군 생활

27년 전. 내가 군 생활 하던 시절과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대대장급 간부와 면담을 하는 예는 있을 수도 없었고, 선임하사나 인사계에게 어떤 고민을 이야기 할라치면 '이 자식이 배부른 소리 한다'며 무시하곤 했습니다. 그들과 상담을 했다는 것이 또 고참병 귀에 들어가는 날이면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일명 타작이라고 하는 구타와 기합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나 혼자 잘못했는데 왜 아무 죄도 없는 10여 명의 우리 동기들까지 얻어 터져야 했는지' 지금도 모를 일입니다.

입대할 때, '군 생활하면서 틈틈이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자'라는 생각은 억압된 분위기 때문에 순식각에 포기됐습니다. '역시 TV에서 보아오던 멋진 병영생활은 연출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목표를 포기하자 순간이나마 편해지자는 자포자기 상태가 됐습니다.

"저 장기복무 신청하겠습니다."
"그래? 너 생각 잘했다. 요즘 사회 나가봐라. 취직하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아냐? 사회에 나가 날고 긴다는 놈들 속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하느니 말뚝을 박는 것이 훨씬 낫지. 공짜로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봉급 나오지, 여기 신청서 작성해라"

장기복무를 신청하면 일단 신분이 병에서 하사관으로 바뀌면서 병 고참으로부터 얼차려나 집합은 없겠다는 생각으로 행정반에 들어섰을 때 호랑이 같던 인사계와 선임하사가 온갖 친절을 다 동원해 나를 반겼습니다.

그들이 그랬던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장기복무 신청 병사들이 없기 때문에 병사 한 명이 장기 신청을 하면 그들(인사계나 선임하사)이 진급하는데 있어 가산점이 주어졌던 모양입니다.

밖으로 나오자 평소 내게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병장 한 분이 조용한 곳으로 나를 부르더니 다짜고짜 "엎어"라고 말합니다(엎어는 엎드려라는 군대 용어임). 그러고는 열대 정도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패더니 "군대가 그렇게 좋으면 말뚝 박아 인마!"라고 말하면서 다섯 대를 더 때립니다.

"담배 피워라."

다 때렸는지 내게 담배를 한대 권하면서 그는 "니가 분명한 목표가 있어서 말뚝 박는 건 말리지 않겠지만, 넌 현실도피를 위해 선택했다. 그러면 넌 후에 분명히 후회한다. 남들 다하는 군 생활이 힘들다는 도피하려는 나약한 사고방식으로는 어딜 가나 실패자가 된다. 결정은 니가 알아서 해라"라고 말하고는 들고 있던 몽둥이를 내려놓고 내무반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과연 내가 군 생활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 장기복무를 신청 했나!'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 병장의 말처럼 현실도피입니다.

"인사계님! 죄송합니다만, 저 장기복무 신청한거 취소하겠습니다."
"이 새끼! 군대가 뭐 장난인줄 아나!"

행정반에 들어가서 장기복무 취소를 말하자, 그렇게 친절했던 인사계와 선임하사는 느닷없이 표정을 바꾸어 군화 발과 주먹 가리지 않고 나를 가격했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하는 간부들과 무슨 상담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찾은 OP의 분위기는 그때와는 달라도 너무 크게 다른 분위기입니다.

티격태격 싸움판인 후방보다 평화로운 곳, D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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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라니 병사들이 보온을 위해 담요를 깔아 놓았다. ⓒ 신광태


"이쪽을 보세요."

대대장이 우리에게 가리킨 곳의 작은 박스 안을 들여다보니 작은 고라니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병사들이 순찰 도중 다쳐서 어미로부터 버림받는 고라니 새끼를 데려왔습니다. 탈진해 있기에 응급처치를 위해 우유를 줬더니 원기를 회복해 지금은 똘똘해 보이죠? 여기서 기르면 병사들의 손을 타서 애완이 될지 몰라 동물보호센터에 연락을 하거나 어미를 만날 수 있는 장소에 놓아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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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도 한가로운 DMZ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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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소리도 싱그러운 초여름날의 DMZ ⓒ 신광태


"이곳에 사는 멧돼지와 고라니, 산양은 병사들이 옆으로 접근을 해도 도망을 가지 않아요" 라는 대대장의 말처럼 형님과 같은 선임 병들과 대대장 이하 간부들의 소통과 배려 탓인지, 아니면 사방으로 펼쳐진 GOP의 평화로운 풍경 때문인지, 병사들과 야생동물 사이에도 이런 따뜻한 정서와 교감이 공존하는 곳은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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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웰빙 채소밭 상추와 가지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 신광태


"요즘 웰빙이 대세잖아요. 우리 군부대도 장병들의 건강을 위해 철저하게 웰빙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대대장이 자랑스레 우리 일행을 안내한 곳은 부대 옆 상추밭. 이런 최전방에 무슨 농약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파릇하고 싱싱하게 키운 전방의 상추밭은 누가 봐도 유기농입니다. 이처럼 병사들이 당번을 정해 가꾸어 나가는 상추의 자람을 보며, 그들의 꿈과 포부도 싱싱하게 자라는 듯 보였던 하루였습니다.
#이승준 대대장 #DMZ #화천 #병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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