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권 선언>(이부록·조효제·안지미 저, 프롬나드 펴냄)
프롬나드
"전쟁은 그렇게 무서운 것일까. 겨우 8살이나 11살쯤 된 어린애들이 남의 집 차 문을 부수고 들어가 닥치는 대로 훔쳐간다." (1944년 3월 29일)책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랑크가 남긴 기록 중 한 대목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당시, 유대인이던 그는 가족과 함께 은신처에서 생활했다. 독일 나치군의 유대인 학살을 피하기 위해서다.
대학살, 종군 위안부, 핵전쟁 등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은 그야말로 '인권'이 무시되고 경멸이 팽배하던 시대였다. 1945년, 전쟁이 종료된 후 살아남은 대다수 사람은 야만적으로 변해버린 세상에 자괴감을 가졌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무의미한 살육과 증오의 시대를 거쳐야 하는 거지?'라면서 말이다.
이때 탄생한 것이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다. 국제연합총회(UN)가 선포한 이 선언에는 태어나면 누구나 얻는 천부인권부터 생존에 필수적인 양식과 표현의 자유를 동등하게 누릴 권리가 명시돼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총 30개(전문 및 본문)의 조항이 1748개의 단어로 이뤄졌을 만큼 상당히 함축적이다.
내전 중인 아프리카 수단의 아이들은 한참 뛰어놀 나이에 총을 잡고 피 튀기는 전쟁에 나선다. 먹은 것이 없어 동공마저 풀려버린 아이들은 무심코 땅바닥에 핀 독버섯을 따 먹는다. '5초에 1명', 인류는 기아로 숨져가고 있다. 이처럼 인권의 현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고, 세계인권선언은 갈피를 잃어 버렸다. 특히 우리네의 일상에선 그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다.
인권으로 똘똘 뭉친 <세계 인권 선언>이때 국내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새롭게 태어났다. 이부록 작가·조효제 인권학자·안지미 북 디자이너가 공동제작한 <세계 인권 선언>이 바로 그것. 이 책은 '세계인권선언 읽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인권을 찾아서> <인권의 풍경> 등의 저서와 국제앰네스티 및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해 온 조효제 인권학자가 책 서문을 썼다. 그는 다가오는 새 시대의 해답을 세계인권선언에서 찾는다.
"맹위를 떨치던 신자유주의가 최근 한풀 꺾이면서 그러한 조류를 맹신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좀 더 인간화된 사회체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해답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이미 오래 전에 만들어진, 그러나 아주 신선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세계인권선언을 펼쳐보면 된다."
책 표지와 본문 디자인은 안지미 북 디자이너가, 30개 조항의 이미지화는 이부록 작가가 맡았다. 특히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이 작가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시각이미지를 생산했다.
이들은 전쟁관련 픽토그램(사건과 관련한 물건 장소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상징적인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법) 비평 책 <기억의 반대편 세계에서 워바타>를 함께 만든 적이 있다. 해설을 맡은 김종길 미술 평론가는 선언 읽기에 앞서 그림을 보며 충분히 상상할 것을 권한다.
"선언의 문장이 떠오르지 않거든 이 책에 실린 그림을 연상해보라! 사실 구석기시대의 동굴 벽화나 암각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림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오래된 언어인 것이다."팔 벌린 두 남자... 평등할 권리를 의미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