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 절감"... 기간제교사 울린 '슬픈' 공문

[카스트 돼버린 교직사회, 못 참아 ①] "똑같이 일하는데 왜 우리만?"

등록 2012.07.26 18:04수정 2012.07.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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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인천 소재 일선 학교들에 도착한 '슬픈' 공문. ⓒ 박은선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기간제교사 A씨는 25일 공문을 확인하다 말고 말문이 막혔다. 인천교육청이 보낸 '계약제교원 인건비 예산 절감 협조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 때문이었다.

'부득이한 사유가 아니면 계약제교원의 초과근무는 자제하도록 협조해달라'는 것이 공문의 핵심. 또 육아휴직했던 정교사가 방학기간 뒤 복직할 땐 그를 대체하는 계약직교원은 방학 전까지만 근무 계약을 체결해 '계약직교원에 대한 방중 월급 지급을 예방'하라는 등의 '자체적 예산 절감 노력' 권고도 있었다.

공문 대상인 일정 기간 수업과 업무를 모두 담당하는 계약직교원을 일선 학교에선 '기간제교사'로 부른다. 기간제교사에게만 특별한 조치를 하도록 한 이 공문, 문제는 없을까?

공문 발송 목적, 정말 기간제교사 보호에 있나

공문에 대해 확인차 전화를 하니, 이 공문을 발송한 인천교육청 교원인사팀 김 아무개 주무관은 "인천시에서 전입금 2천억 원을 주지 않아 인천교육청 인건비가 70억 정도 부족하게 됐다"며 "인건비 절감 방법을 모색하던 중 최근 조사에서 기간제교사 몇 명이 소위 '만땅'을 채운 사실을 알게 돼 여기서 인건비 절감 방법을 고안했다"고 말했다. 김 주무관은 "'만땅'은 매일 밤 11시까지 근무했다는 것"이라며 "정교사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 기간제교사이니 가능한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A씨는 공문의 '계약직교원 초과 근무 자제'와 관련해 "똑같이 일하는데 우리만 초과 수당을 받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분개했다. 공문을 본 또 다른 기간제교사도 격한 반응과 함께 이 공문에 '눈물 나게 만드는 행정서류', '토사구팽 공문' 등의 이름을 붙였다. 상당수 기간제교사가 이 부분을 '기간제교사에 대한 차별'로 인식하는 것.

이에 대해 김 주무관은 "절대 그렇지 않다"며 '차별'을 부정했다. 김 주무관은 "기간제교사들에게 업무가 과중하게 부여되고 있어 웬만하면 정교사가 일하도록 권고하려고 공문을 보냈다"며 "그동안 결원 대체인 기간제교사에게는 초과근무를 지양하도록 지도해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간제교사에 대한 차별이 아닌 보호'가 목적이었다는 김 주무관의 설명에 동의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기간제교사 B씨는 "보호 차원에서 공문을 보냈다면 '과중한 업무를 주지 말 것'이라고 보내야 했다"며 그 취지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무노동 무임금' 권고, '유노동 무임금'으로 악용? 


현장에서 기간제교사에게 초과수당 지급 없이 과중업무를 부여하는 수단으로 공문이 악용될 우려를 제기하자, 김 주무관은 "요즘은 그럴 수가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요즘 기간제교사들은 1호봉이라도 손해보면 교육청에 항의하는데, 야근(추가근로) 하면서 수당 안 받는 사례는 없다"며 "그런 게 있으면 '신문고' 통해 교육청에 항의가 들어오고 그러면 학교에 시정조치를 내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청 신문고에 글을 올려봤다는 기간제교사 C씨는 "그렇게 하면 학교에 다 알려진다"며 "이 공문 덕에 앞으로는 초과근무 수당조차 없이 기간제교사들이 정교사의 기피 업무를 계속하게 될 것"이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방학을 계약기간에 배제하라는 것과 관련해, "실제로는 계약기간이 아닌 방학 중에 기간제교사들에게 업무를 시키는 학교들이 있는데 이런 학교들이 더 늘어나는 게 아니냐"는 의문에도 김 주무관은 "그럴 리 없다"며 부인했다. 공문에 '부여된 업무가 없을 경우'라는 단서 조항이 있으니, 업무가 있으면 월급을 주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또 이 경우에도 악용하려는 학교가 있으면 "예전과 달리 기간제교사들이 가만히 있지 않아서 그럴 수 있는 학교들도 없다"며 '악용' 여지를 강하게 부인했다.

초과근로수당 공문, 법적 효력은? 

한편, 민주노총 법률원 신인수 변호사는 이 공문과 관련해 '법규성' 문제를 제기했다. 신 변호사는 "인천광역시 교육감이 계약제교원의 시간외근무수당의 지급범위를 제한하라거나, 계약기간을 간섭하는 것은 월권행위"라서 이 공문은 "법규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의 근거로 '공무원의 초과근무시간 4시간 제한'과 관련해 법규성이 불인정 된 판례 등을 유사 판례로 제시했다.

'법규성이 없다'는 것은 '행정기관 내부 지침일 뿐 대외적 구속력이 없으므로 재판규범이 될 수 없고 국민에게 효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기간제교사에게만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말라는 공문은 법적 효력을 지닐 수 없다는 것이 신 변호사의 설명이다.

덧붙이는 글 | 교육희망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교육희망에도 송고합니다.
#기간제교사 #계약직교원 #초과 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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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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