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민씨는 누구?미디어 오늘에 실린 당시 신문기사
<미디어 오늘>
책 <태자마마와 유신공주>을 다룬 <미디어 오늘> 기사("박정희 집무실 금고, 박근혜에게 털렸다")에는 유신정권 말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박근혜를 등에 없은 최태민 목사 파문을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기사에는 전 <월간조선> 편집장이 쓴 <한국 현대사>의 인용문이 나온다.
"박근혜는 육영수의 사망 이후 최태민에게 의존했다. 박근혜에게 최태민과의 관계를 끊도록 건의한 비서 3명이 모두 잘렸고 최태민이 추천한 사람이 박근혜의 비서가 됐다. 박근혜는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서 자주 만났다고 한다. 최태민은 자신을 '태자마마'라고 불렀다. 최태민이 뇌물을 받고 이권에 개입한다는 보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박정희는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이러한 최태민의 전횡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하게된 동기 중의 하나로 재판정에서 거론하기도 했으니 당시 대통령 박정희와 영애 박근혜가 의사결정 시스템을 무시하고 정실에 의한 결정이 <대통령 시해사건>이라는 미증유의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원인의 하나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위험천만한 불통의 리더십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공천헌금 수수사건'은 이른바 '박근혜의 분신'으로 불려지던 현기환 전 의원이 핵심 용의자로 거론되고 있다. 그럼에도 7인 연석회의에서 박 후보는 "공천은 독립적인 공천위에서 한 것으로 책임질 일 없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사건의 핵심이 현기환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의당 당시 비대위원장이었으며 계파의 수장인 박 후보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입각한 국민 다수의 여론인데도 박 후보는 이런 점을 완전 무시하고 일방통행하고 있다.
최태민 논란과 관련해 훗날 동생 박근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나 박지만의 인터뷰에서도 최태민과의 관계를 우려하는 발언이 나왔었지만, 최태민 논란에 대한 박근혜의 반응은 언제나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라면 상대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일축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사건건 박 후보는 자신이나 최 측근이 관련된 문제에서는 이른바 '불통(不通)'으로 대변되는 박근혜식 소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주요 안위가 걸린 문제에서 만약 이런 식의 정실정치가 반복된다고 가정해보자. '왜의 침입설'이나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무시하고 임진왜란을 겪었던 일이나, 북한군의 일요일 남침 같은 끔찍한 비극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안이한 정실에 의한 판단 오류가 빚은 역사의 비극이며, 지금 이 상태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시대에 그런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세종의 리더십얼마 전 큰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이야기를 해보자. 드라마에서 세종은 한글 반포의 옳고 그름을 놓고 정기준과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논쟁이 마무리 된 후 거처로 돌아온 세종은 정기준의 반포 반대론을 곱씹으며 혹시 자신의 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장면이 나온다.
세종이 역사에 성군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소통이나 토론을 단지 요식행위로서 한 것이 아니라 의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반대 논리를 충분히 검토하고 때론 수용하는 훌륭한 소통의 리더십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원칙의 잣대는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이 마땅하며, 소통은 단지 거쳐 가는 요식행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숙고해보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갖춰야만 비로소 한 나라를 경영한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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