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현대미술관 화재에 "임기내완공 원칙 폐기"

빨리빨리 조급증·안전불감증... "인재" 지적

등록 2012.08.14 19:10수정 2012.08.1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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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지하공사장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지하공사장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고 있다.권우성

13일 오전 서울 도심 한 복판을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게 한 서울 경복궁 옆 현대미술관 건설현장 화재는 '임기 내 완공해야 한다'는 조급증과 안전불감증이 불러일으킨 '인재(人災)'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하 3층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불로 인해 현장 근무자 김아무개(50)씨 등 4명이 숨지고 25명의 병원에 실려간 끔찍한 참사였다. 소방당국은 "지하 3층에서 우레탄으로 방수·단열작업을 하다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불이 난 현장은 페인트와 우레탄, 가스 등 인화성 물질을 많이 쓰는 곳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사고 현장의 지하 3개층 면적은 3만 천여 평방제곱미터에 달할 만큼 넓은 반면 소화기 몇 개 말고는 스프링클러 등 소방장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야간 근무 안 한다고 난리쳤다"

유족 유아무개씨는 이날 오전 미술관 건설현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고의 원인이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무리한 공사 진행에 있다"고 일침을 놨다. 그는 "(현장) 소장이 기성(공사 진행률에 따라 받는 공사대금) 380억 원을 받기 위해 하도급 업체를 계속 추궁했고 안전관리를 무시해서 이런 사고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씨는 "공사가 늦어지니까 계속 압박을 준 것"이라며 "야간근무를 안 한다고 난리를 치고 인원 투입을 안 한다고 난리를 쳤다"고 털어놨다.

유씨는 단순한 유족이 아니다. 그 자신이 지난달 말부터 지난 7일까지 친동생 2명과 이번 사고현장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유씨가 잠시 일을 쉬고 지방에 내려간 사이 동생 한 명은 목숨을 잃고 한 명은 부상을 당했다. 그래서 사고 현장 상황에 대한 정보가 많았다. 유씨는 "비상문은 단 2개밖에 없었고 유도등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며 "지하는 미로같아서 (화재가 나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 "지하3층에서 용접 작업을 했는데 바로 위인 지하 2층에는 스티로폼, 우레탄 폼 등 인화성 물질이 있었다"며 "소화기도 흡연장소 몇 군데 외에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공사 측인 GS건설은 이날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주장을 일축했다. 김세종 GS건설 상무는 '짧은 공기를 맞추려고 무리하게 작업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야간작업이 일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우기 등에 대비해 공정을 앞당기려고 한 부분도 있다"면서도 "내부 검토 결과 공기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답했다.

GS건설은 계룡건설, 태영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 공사를 시공하고 있다. 지분은 GS건설이 55%로 가장 많고, 계룡건설과 태영건설이 각각 25%와 20%다.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신관 신축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 출동한 소방대원과 경찰이 부상자를 구조한 뒤 응급조치를 벌이며 이송하고 있다.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신관 신축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 출동한 소방대원과 경찰이 부상자를 구조한 뒤 응급조치를 벌이며 이송하고 있다. 유성호

"공기 단축 유도한 권력 핵심이 책임져야"

이날 오전 황평우 국립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전형적인 인재(人災)"라며 "'에이, 설마 불이 나겠냐'는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화재가 났다"고 주장했다. 황 소장은 "공사기간을 빨리 하려다 보니까 무리하게 우레탄이나 스티로폼 같은 여러 자재들이 들어갔다"며 "보통 4년 정도 공사를 해야 되는 건데 (대통령 임기가) 20개월 정도밖에 안 남은 상태에서 공사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어 황 소장은 "공기 단축에 대해서는 어떤 정권이나 권력, 행정부의 핵심에 있는 분들이 책임을 져야 된다"면서 "현장에 있는 분들만 안전불감증이라는 식으로 몰아간다면 단순한 사고처리밖에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화재가 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2009년 1월 문화예술인 신년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옛 기무사 터에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미술관은 이 대통령의 임기인 내년 2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돼 왔다.

박원순 시장 "MB 임기 중에 끝내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뉴스를 보니 4년 공사를 20개월에 하려다 빚어진 사고라고 한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중에 끝내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서양의 여러 도시를 돌면서 참 신기한 것은 공사를 수백년에 걸쳐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며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중에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것도 있고, 독일 쾰른 대성당의 경우에는 30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시장은 "제가 시장이 된 후 '임기 중에 공사를 끝낸다'는 원칙을 폐기했다"면서 "꼼꼼하게 처리하고 제대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구태여 임기 중에 끝내야 한다는 법이 없다는 선언"이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임기 중에 뭘 한 시장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늘 '아무것도 안 한 시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답한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청과 소방방재청, 산업안전보건공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소격동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화재현장 합동 현장 감식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보다 정확한 발화 시점과 화재원인을 규명하게 된다. 경찰 관계자는 합동 현장 감식에 앞서 "작업자들을 조사한 결과와 함께 현장상황을 재구성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대미술관 화재 #인재 #조급증 #안전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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