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피멍 든 농심 "추석 어떻게 보내나"

[르포] 충남 예산 과수농가 절반 이상 농재해보험 미가입... "재난지역 선포해야"

등록 2012.08.30 10:53수정 2012.08.3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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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기고 뽑힌 농심 태풍 볼라벤의 직격탄을 맞은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택리의 한 과수원에서 이상욱(65)씨가 떨어진 사과를 고르고 있다. ⓒ 이정희


"추석이고 대목이고 이번 태풍에 다 날아갔다고 보면 되는 거지... 보험금 그깟 거 타 봤자 그게 어디 회계나 닿나? 올해는 제값 좀 받아보고 팔아보나 했는데... 당최 무슨 업보인지 참 나..."

태풍 볼라벤이 할퀴고 간 상처는 크고 깊었다. 지난 29일 오전 충남 예산군에서 만난 과수농민들 대부분은 하나같이 탄식을 자아내며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다. 이번 태풍보다 규모가 컸던 3년 전 곤파스 때보다도 피해가 더 컸다며 망연자실했다.

충남 예산군에 따르면 이번 태풍으로 예산군 사과농민들이 입은 피해규모는 후지와 홍로 품종을 중심으로 수확 예정량의 6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확을 10여 일 앞둔 홍로 품종에서 타격이 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농업기술센터 과수기술담당 정기정 계장은 "예산군의 연간 사과 생산량이 3만 톤 정도에 이르는데 이번 태풍으로 인해 후지 품종은 최대 30%, 홍로 품종은 최대 50% 이상이 직접적인 낙과 피해를 보았으며, 상처과(바람에 상처입은 과일)를 포함하면 전체면적의 60% 이상에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객지 나간 아들까지 내려왔다... 애끓는 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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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 10여일을 앞두고 떨어진 홍로 사과 이번 태풍은 3년전 곤파스 보다도 세력은 약했지만 예산군 지역에 돌풍 현상으로 피해가 더 커졌다. ⓒ 이정희


예산군에서 피해농가가 집중된 곳은 신암면과 오가면, 응봉면, 예산읍, 삽교읍, 고덕면을 비롯한 6개 지역이다. 이 중에서 피해가 가장 심한 신암면과 오가면 지역의 농민들을 만나봤다.

이곳의 농장 대부분에서는 바닥에 떨어진 사과들이 즐비했으며, 아직 남아있는 과일도 강풍에 부대끼며 상처를 입었거나 나뭇잎들이 말라비틀어지고 있었다. 또한 도회지로 나간 자녀들까지 내려와 썩기 전에 사과 한 알이라도 더 건져내려는 손길이 분주했으며 공무원들과 농재해보험업체 관련자들이 분주히 오가며 피해규모 실사를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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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팔아주겠다고 연락했으니 썩기전에 작업해서 빨리 보내야 겠다"며 작업을 재촉하는 이상욱씨의 아내 ⓒ 이정희


가장 피해가 심한 신암면으로 향했다. 태풍 볼라벤 때문에 3000여 평의 과수원에서 수십 그루의 나무가 뽑히고 80%의 사과가 떨어져 버렸다는 이상욱씨(65·예산군 신암면 용궁리)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쓰러진 사과나무를 세우고 있었다.


이씨는 "태풍이 오는 내내 뜬눈으로 과수원을 지켰는데 몰아치는 강풍에는 어쩔 수 없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오전에 농협이랑 면사무소에서 나와서 사진 찍고 떨어진 사과를 계산해서 가긴 했는데, 추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이씨의 아내는 "인천에 사는 큰아들이 주변에 팔아주겠다고 하니까 썩기 전에 한 상자라도 더 작업해서 보내야 한다"며 분주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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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까지 내려와 일손을 돕다 충남 예산군 오가면 안병희씨(75)는 "풋사과 떨어져 있는거 보기가 좋지 않아서 퇴비장으로 실어내는 중"이라고 말했다. ⓒ 이정희

예산군 오가면 안병희(75)씨 과수원에서는 객지에서 공장을 하는 아들이 회사 직원들과 함께 내려와 부모님을 돕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푸른색 선명한 풋사과인 채로 과수원 바닥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후지 사과를 경운기로 실어내고 있었다.

그나마 수확기가 가까운 홍로 사과는 그런대로 시장에 내다 팔 수도 있지만 늦가을 수확할 예정인 후지 사과는 상품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안씨는 천재지변에 의한 피해를 보상하는 '농작물재해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순박한 그의 표정 너머로 나지막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거 뭐 나랏돈 공짜로 먹는 거 같아서 보험 같은 거는 아예 생각도 안 했지, 그런데 이렇게 날벼락을 맞을 줄 누가 알았나, 사과농사 수십 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네그려..."

이어 그는 재난지역 선포를 기대하기도 했다.

"오늘(29일) 면사무소 사람들한테 들으니까 30일에 농림부장관이 내려와서 본다고 하더라고, 이 심각한 거 보고 그냥 가기야 하겄어? 다른 데는 보니까 이렇게 심각하면 재난지역으로 해주기도 하드만..."

"농림부 장관 내려온다고 하니까... 무슨 말이 있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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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만 참아줬어도... 예산군 오가면 정찬우씨(65)가 지난 밤 떨어진 홍로사과를 가격도 정하지 못한채 수집상에게 넘기며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다. 홍로사과는 9월초가 수확기라고 한다. 1주일을 못버티고 태풍에 당한 셈이다. ⓒ 이정희


"바람 불기 전에는 금(가격) 좋았어. 15kg  (한)짝 당 10만 원이상은 무조건 받았거든... 그런데 오늘은 얼마 받을지도 모르고 그냥 장사꾼한테 넘겼어... 태풍이 또 온다고 하는데 별수 없지 뭐... 보나 마나 (공판장에) 사과가 잔뜩 나와서 제값 못 받을 게 뻔한데..."

충남 예산군 오가면 정찬우(65)씨도 역시 얕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는 지금, 강풍에 속절없이 떨어진 홍로 사과 백여 상자를 산지 수집상에게 급한 대로 넘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 역시 보험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보험사 실사를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지난 2010년 태풍 곤파스 상륙 때도 왕창 (피해를) 입었는데 이번에도 또 당하니 허탈하다"고 말하며 수집상이 데리고 온 대형 트럭에 실리는 사과 상자를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는 취재를 마치고 떠나는 기자에게 한마디 더 했다.

"기자 양반, 장관 오신다고 하니까 (기사) 잘 좀 부탁 해유..."

재난지역으로 선포되길 바라는 농민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한편, 예산군 과수농가의 농재해보험 가입률은 52%에 머물고 있으며 가입자들은 확인된 피해액의 70% 범위 내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한편, 미가입 농가에게는 약간의 농약대금만 지원이 된다. 재난지역으로 선포될 경우에는 추가 지원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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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8일 태풍 볼라벤에 의해 떨어진 예산의 한 과수원 ⓒ 이정희

#볼라벤 #태풍피해 #예산군 #예산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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