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어 터지는 '돈 공천' 의혹... 통합진보당은 억울하다

[주장] 새누리-민주 비례대표 금품거래로 몸살...당원에게 투표권 준 통진당은?

등록 2012.09.03 10:05수정 2012.09.0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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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공천헌금 의혹과 관련해 돈의 최종 종착지로 지목되고 있는 현기환 전 의원이 8월 21일 오전 9시50분께 부산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 정민규


현기환 전 새누리당 의원과 현영희 의원 사이의 3억 공천뇌물 의혹 사건에 이어 양경숙이라는 원외 인사가 4·11 총선 출마 예정자들로부터 공천을 미끼로 거액을 받은 사건으로 민주통합당도 공천 뇌물 사건에 휘말렸다.

애초 최종 종착지로 알려진 박지원 원내대표와 민주통합당은 펄쩍 뛰며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결정적인 문자가 발송된 시간에 박지원 의원이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는 점 등 석연치 않은 점이 많으나 민주당 공천을 미끼로 수억이 오고간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측근으로 알려진 현기환 전 의원과 현영희 의원 사이의 공천 뇌물 의혹으로 당혹스러웠던 새누리당은 민주당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양경숙 사건의 결론을 예측하기 힘들지만 검찰이 민주당 전당 대회나 선거 자금까지 수사하고 있어 그 결과에 따라 정치권이 다시 한번 소용돌이 칠 가능성이 높다.

최근의 사건에서 알 수 있듯 국회의원 공천을 둘러싼 부정한 금품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놓고 국회의원 비례대표들이 수억, 수십억의 돈을 내고 국회의원 배지를 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된 관행쯤으로 치부하기에는 여전히 그 뿌리가 깊이 남아 있는 듯하다. 18대와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기점으로 벌어진 공천 관련 금품 사건을 살펴보자.

공천뇌물 압권 새누리당, 계속되는 구설수

새누리당은 공심위원이었던 현기환 전 의원이 현영희 의원으로부터 공천 청탁과 함께 3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당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는 개점 휴업상태고, 현영희 의원은 구속영장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고 현기환 전 의원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새누리당에 위안이 되는 것은 현기환 전 의원이나 새누리당에 돈이 흘러들어갔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나오면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 관련 공천 뇌물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난 8월 17일 서울동부지법은 4·11총선에 출마하려고 했던 건설회사 대표에게 공천을 미끼로 5억 원을 받아 챙겨 구속된 허태열 전 의원의 동생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과 함께 추징금 5억 원을 선고했다.

웃기는 것은 공천을 받겠다며 5억 원을 주었음에도 공천을 받지 못한 형제가 허태열 의원과 동생에게 검찰에 알리겠다고 협박을 해 선거법 위반과 공갈미수죄로 각각 징역 3년과 10월을 선고받은 것이다. 돈을 주고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사람이나 돈을 받고 국회의원을 시켜주겠다는 사람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었던 셈이다.

비슷한 사건은 18대 총선에도 있었다. 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의 사촌언니 김옥희씨(대통령의 처사촌)가 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게 해주겠다면서 30억대의 금품을 받은 사건이다.

김씨는 총선 공천 직전 비례대표 공천을 받게 해주겠다며 서울버스운송사업조합 김아무개 이사장에게 금품을 받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3년과 추징금 31억8000만 원이 확정되었고, 돈을 준 김 이사장도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공천뇌물 사건은 비단 국회의원 선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 소속의 이아무개 여주군수는 재공천을 받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2억원을 준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년, 2억원 몰수형을 선고 받았다.

2006년 5·31 지방선거 때도 있었다. 김덕룡 전 의원 부인은 서울 서초구청장 출마 희망자로부터 4억3000여만 원을 받아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박성범 전 의원도 서울 중구청장 공천 신청자로부터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고 700만 원 벌금형이 확정된 바 있다.

현재의 새누리당은 이회창 대통령 후보 시절 차떼기 사건에 대한 반성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한나라당의 후신이다. 그런데도 선거 때만 되면 터져나오는 공천 관련 금품 수수 사건으로 차떼기당의 후예라는 정치적 비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공천뇌물의 무풍지대일까?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역시 새누리당만큼은 아닐지라도 공천 뇌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듯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 양경숙 사건을 민주당 차원의 공천 뇌물 사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에 아무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민주통합당 심아무개 전 사무부총장이 4·11 총선 공천을 대가로 1억 원의 뇌물을 받아 구속기소되어 지난 7월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추징금 1억 원을 선고받았다.

경기도 용인의 우제창 전 의원은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의원 출마예정자 2명으로부터 억대의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 6월 구속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희선 전 의원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명목으로 구의원 출마자로부터 금품을 받아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추징금 1억759만 원이 확정된 바 있다.

뇌물로 공천을 받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구조라면 수억의 돈을 들여서 시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사건 또는 시도가 반복되는 것은 뇌물 또는 헌금을 통하여 공천을 받는 것이 가능했거나, 적어도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양경숙 사건, 사무부총장 구속사건, 우제창 구속사건, 김희선 공천 뇌물 사건 등을 통해서 보듯 민주당 역시 공천 뇌물의 무풍지대라고 말할 수 없다.

친박연대에서 공화당까지... 군소정당에도 만연한 금품 공천

어쩌면 생존의 문제 때문인지 군소정당들에는 이 공천헌금이 더 만연한 듯 보인다. 이번 19대 총선에서도 여러 군소 정당들이 공천 헌금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 4·11 총선으로 군소정당으로 전락했고 최근 아산의 이명수 의원과 유한식 세종시장의 탈당으로 위기에 봉착한 선진통일당(옛 자유선진당)도 김영주 비례대표가 공천 대가로 50억 원을 당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의혹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선자를 내지 못한 군소정당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정통민주당은 제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출마자가 당에 5억 원, 당 간부에게 5억 등 10억을 제공한 사건이 적발되었다. 정통민주당은 민주통합당의 공천에 불만을 품은 탈당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정당이다.

또 다른 군소정당인 미래연합도 비례대표 후보자 공천을 대가로 10억 8000만 원을 받은 혐의가 적발되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고발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 18대 총선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친박연대(미래희망연대 개명)는 거액 공천헌금 사건으로 당대표 등 3명이 당선무효로 망신을 당한 바 있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양정례, 김노식 의원이 각각 10억 원이 넘는 공천헌금을 제공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서청원 대표 징역 1년6월, 김 의원 징역 1년, 양 의원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어 당선 무효가 되었다.

대선에도 출마한 바 있는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도 당 비례대표였던 이한정 전 의원에게서 공천 대가로 6억원의 당채를 판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하였고, 돈을 준 이한정 의원도 징역 2년이 확정되어 당선이 무효로 된 바 있다.

당선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한 때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던 경제공화당의 허경영씨 역시 18대 총선을 앞두고 "당에 10억 원을 내면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거다, 내가 경제공화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을 하다가 돈 낸 사람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말하는 등 공천장사를 하고 있던 것이 MBC PD수첩 방송에서 밝혀져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통합진보당의 '공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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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이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안 부결 이후 분당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8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강기갑 대표가 당 진로에 대한 토론을 하기 위해 회의 개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유성호


거대 새누리당(한나라당)에서부터 이름 없이 사라져간 군소정당에 이르는 정당들이 공천 헌금 또는 뇌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전 의원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돈 한 푼 안 내고 비례대표가 됐다고 화살을 퍼부었다… 공천 뇌물은 정당 역사상 계속돼 왔고, 저도 거기에 맞서 싸우는 것이 힘들었다"라며 공천헌금의 만연을 질타한 바 있다.

공천뇌물로 구설수에 오르지 않은 정당이 민주노동당(현 통합진보당)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지금 그 통합진보당이 비례 경선과 관련하여 가장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몇 달째 진행 중인 내홍으로 분당의 기로에 처해 있으며, 100여 명의 당원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있다.

'돈공천, 밀실공천'으로 대표되는 기존 정당들의 잘못된 관행을 없애고 당원들에게 공천권을 주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진성당원 직접 투표에 의한 국회의원 공천이 역설적으로 경선부정 시비를 낳은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몰라도 적어도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기성 정당들은 통합진보당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일각의 주장이 일리가 있는 이유이다.

이런 면에서 최근 통합진보당이 당 혁신 과제라며 진성당원제를 폐지하고 비례대표 공천은 전원 전략공천으로 한다는 새로나기특위 박원석 위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지난 30일 통합진보당 강기갑 대표는 기자회견문에서 "통합진보당은 보수정치의 제왕적 내리먹임식 공천권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진일보한 제도를 도입하여 당의 중요 당직, 공직자를 아래로부터 당원들의 직접 선출로 선출하고 있는 정당… 공천헌금까지 헌납해서 국회의원 자리를 획득하는 그런 낡은 보수정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당원 참여의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정당"이라며 기성정당들의 제왕적 공천과 공천헌금을 비판했다.

거액의 공천헌금을 통한 돈공천, 제왕적 밀실공천이 없다는 바로 그 통합진보당이 현재 공천 때문에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현재 민주당이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면서 도입한 모바일 경선 역시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어 논란 중이다. 그렇다고 공천에서 당원과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일련의 사건을 국민과 당원의 의사가 정치에 제대로 반영되는 실질적 정당민주주의에서 국회의원 등 공직자 공천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지혜를 모으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공천헌금 #새누리당 #밀실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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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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