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통을 산 이유... 어느 산골아이 때문입니다

따뜻한 세상 만들기, 세상에는 아직 산타할아버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등록 2012.09.09 20:44수정 2012.09.0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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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저금통을 한개 샀습니다. ⓒ 신광태


저금통을 한 개 샀습니다. 아마 내가 저금통을 샀던 때는 초등학교 4학년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무언가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가 아닌 '동전모아 목돈 만들기' 라는 숙제 때문에 플라스틱으로 된 붉은색 돼지 저금통을 하나 샀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저금통 밑바닥에 동전이 채 깔리기도 전에 숙제고 뭐고 과자 사 먹고 싶다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만 그 돼지의 배를 갈랐던 생각이 납니다.


그 이후로 저금통을 샀던 기억은 없습니다. 그런데 늙은 이 나이에 느닷없이 저금통 하나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름철에 겨울 점퍼를 입고 있던 아이

지난 6월, 40도를 육박하던 무덥던 날씨. 화천의 어느 산골마을 출장을 나간 나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어린이 놀이터 옆 나무그늘을 찾았습니다. 그 무더운 날에도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나고 즐거운지 땀을 뻘뻘 흘리며 미끄럼틀도 타고, 시소도 이용하고 떠들며 뛰어 다니는 모습들이 천진난만하기 이를 데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놀이터 한구석에 혼자 앉아 땅에 그림을 그리는 5살 남짓 보이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만도 한데 혼자 고개를 푹 숙이고 나뭇가지로 그림인지 문자인지 모를 문양을 땅에 깊게 새깁니다.

옷차림 또한 다른 아이들은 계절에 맞게 반바지에 반소매 옷차림들인데 이 아이는 남루한 겨울점퍼를 입고 있습니다. 이 찌는 듯한 무더위에 추워서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아마 입을 옷이 없기 때문에 때가 꼬질꼬질한 겨울 점퍼를 입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혼자 놀이터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혼자 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다가가 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원치 않은 낯선 사람의 접근에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이 아이에 대한 나의 관심은 다른 아이들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상상을 했습니다. 이 아이의 부모님이 이별하자 할머니(아니면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할머니 또한 정신이 온전치 못합니다.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겨우 끼니를 연명하다 보니 아이를 위한 옷을 사 입힌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을지 모를일 입니다.

이 나이에 저금통을 하나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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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사면 늘 주머니를 불편하게 만들던 동전이 어느 한 아이에게 희망을 줄지 모를 일입니다. ⓒ 신광태


"허긴 이 더운 날씨에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면 불편하시죠?"

그날 저녁 문구점을 들러 저금통을 찾는 내게 주인은 (저금통을)사는 이유를 알겠다는 듯이 다양한 저금통이 놓인 코너를 나를 안내 했습니다. 그중에서 유독 깡통에 자물쇠가 달린 저금통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시골가게에는 돼지저금통 한 종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모인 동전을 꺼내려면 돼지의 배를 갈라야 했기에 재활용은 불가능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물쇠까지 달려 있으니 열쇠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평생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내 주머니에는 동전이 늘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주머니에 있는 동전만 세어서 아이들을 위한 간식을 산 적도 있을 정도로 주머니에 늘 동전이 수북했습니다. 그나마 겨울철에는 주머니가 많기 때문에 불편함이 덜하지만 여름에는 그야말로 주머니가 축 늘어져 보기에도 영 좋지 않습니다.

그럼 왜 그렇게 동전이 모이는 걸까요? 원인은 담배 때문입니다. 2500원짜리 담배를 사면 꼭 500원의 동전이 생깁니다. 그 동전을 500원짜리 주화로 받으면 좋을 텐데, 100원짜리 동전으로 거슬러주는 집도 있고, 특히 할머니가 운영하는 구멍가게에서 100원짜리와 50원짜리, 10원 짜리를 섞어서 받는 날이면 감당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3000천 원짜리 담배를 피우면 될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흡연자들 다수는 본인이 선호하는 담배만 찾습니다.

그 아이는 산타할아버지로부터 저금통을 한 개 받을 것입니다

어제 동전을 넣으며 저금통을 들어보니 제법 묵직하게 느껴집니다. 이 저금통에 오는 12월24일까지만 동전을 넣을 생각입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날, 꽉 차든지 약간 덜 차든지 그때까지 모여진 저금통을 통째로 들고 가서 (남루한 겨울점퍼를 입었던) 그 아이 집 앞에 놓아두려고 합니다. 물론 열쇠도 함께 말입니다.

누가 전달했는지에 대한 쪽지가 없다면 '이것을 써야할지, 그대로 놓아두어야 할지 고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산타할아버지가 주는 걸로 메모를 해둘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세상에는 자신을 늘 지켜보고 있는 산타할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산타할아버지가 옆에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늘 씩씩하게 자신감을 갖고 생활할 수 있기를 기원해줄까 합니다.
#저금통 #산타할아버지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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