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장면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에 대한 폭력 범죄에 대한 우리사회의 분노와 사회적 대응의 불일치가 설명되는 지점이다.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폭력 범죄의 경우, 우리사회는 범죄발생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논보다는 여성이 "진짜" 피해자였는지에 관심을 둔다. "진짜"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 여성들은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폭력성을 증명해야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순종적이고 무력함을 입증해야 하는 혼란스러운 위치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성폭력 범죄의 경우 성폭력인지 합의에 따른 성관계인지를 판단하는데 있어 피해 여성이 얼마나 격렬히 저항했는지가 주요기준이 된다. 그렇게 때문에 여성은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폭력을 불사하는 저항이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반면, 가정폭력 범죄의 경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피해자의 최소한의 방어조차 즉각 '상호폭력' 내지는 '부부싸움'으로 명명되기 때문에, 폭력에 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사실을 의심받는다.
성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의 폭력성은 정조를 지키려는 여성다움으로, 가정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의 폭력성은 더 많은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여성답지 못한 행동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범죄에 대한 우리들의 양가감정은 이처럼 해묵어 오래됐지만 공기처럼 익숙한 성차별적 편견을 내면화 한 결과이다.
'여자다운지' '어떤 관계인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한 검열은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법 판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작동한다. 평소 성폭력과 가정폭력을 혐오하지만 애인으로부터의 폭력과 통제를 연애사의 일부로 애써 합리화하며, 주변의 충고대로 그를 화나게 한 원인을 찾는데 몰두한다. 그것(폭력)만 빼고는 평소에는 너무도 좋은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 애쓰면서 말이다.
이웃의 아내학대를 모른척 해야 하는 이유들 역시 모두 그럴듯하다. 사적인 일이기 때문에, 남의 일에 개입하는게 아니어서, 경찰이 신고자의 신분을 쉽게 노출해 버리기 때문에, 나중에 피해자로부터 원망을 듣기 때문에, 가해자가 보복할 것이 두려워서, 신고해도 별 소용이 없기 때문에 등 우리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드러나지 말아야 할 더 많은 이유를 알고 있다.
폭력의 피해자인지에 대한 사법기관의 모욕에 가까운 의심과 심문은 피해 여성으로 하여금 그들의 개입을 스스로 차단하게 한다.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귀찮은 듯 몇 가지 충고를 하고 돌아가는 경찰의 태도는 신고자와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보복을 강화한다. 합의하거나 서로 화해하라는 법원의 판결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사사롭게 대하는 경찰의 태도를 유지시킨다.
여성에 대한 폭력 범죄는 나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가해자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라는 대중들의 이중적 태도에서 정치인들은 왜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이쯤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일까? 누구를 겨냥해야 하는 일일까? 여성에 대한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정치인, 언론, 경찰, 법관들은 다른 곳에서 오지 않았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기에 문제를 방관하는 그들의 태도는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평소 해오던 생각이고, 익히 마주쳤던 광경이지 않은가. 어떻게 이 지루하고도 집요한 익숙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여성이 당한 잔인한 폭력, 그 뒤에 자리잡은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