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의 반값등록금, 못 믿겠습니다

[게릴라칼럼] 등록금 부담 반으로? 진심이라면 정기국회에서 법 통과시켜야

등록 2012.09.12 16:50수정 2012.09.1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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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부담의 반', 애매하다. 반값 등록금 요구에, 액수를 반으로 낮추겠다가 아니라 부담을 반으로 낮추겠다고 이야기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분명하게' '확실하게' '반드시' 등 동의어를 반복했지만 어법만 어색할 뿐 호소는 믿음으로 와 닿지 않는다. 차라리 '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말했더라면, 세 번이나 강조 조사를 넣어가며 진정성을 호소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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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8월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 39개 대학교 총학생회장들과 펼치는 반값등록금 토론회'에 참석해 "반값등록금 실현은 새누리당의 당론"이라고 밝히고 있다. ⓒ 남소연


지난달 23일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실현 방안 마련 토론회에 참석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학생들에게 반값 등록금에 대한 자기 공약을 피력했고, 지난 2일 이명박 대통령과 오찬회동에서도 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낮춰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대학생들이나 시민단체, 야당에서는 여전히 꼼수라는 비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왜일까? 분명하게, 확실하게, 반드시 약속을 하겠다는데 왜 믿지 못하는 것일까?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07년 초부터 당시 한나라당 전재희 정책위원장이나 강재섭 대표 등은 치솟는 대학 등록금에 분노한 민심을 대변하겠다고 나섰고, 대선을 앞둔 10월 이명박 대선 후보를 확정한 한나라당은 등록금절반인하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대선에서 승리한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는 돌변했다.

"나는 반값 등록금공약을 내세웠던 적이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 반값등록금을 약속한 적은 있는데, 언제까지 해낸다고 말한 적은 없다는 2009년 당시 이한구 정책위원장. 반값등록금은 액수의 반값이 아니라 심리적인 부담을 반으로 줄여주겠다는 뜻이라는 이주호 당시 교과부 차관의 발언 등은 국민들에게 속았다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속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1년 5월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최소한 반값으로 (인하)했으면 한다'는 취임일성을 한 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반값 등록금이라는 말은 언론에서 퍼트린 것이라며 반값 등록금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 국민을 우롱한 반값 등록금 두 번의 논란. 그러나 책임은커녕 변변한 사과조차 없었다. 잘못은 심리적 부담의 반과 반값 등록금을 구분하지 못한 국민들에게 있었고, 주어 생략 어법으로 대통령은 가볍게 책임 공방에서 벗어났다. 반값 등록금 공약으로 민심을 표로 바꾸어 갔던 정당은 간판을 바꾸어 달았다.

양치기에게 두 번이나 속은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분명하게, 확실하게, 반드시 하는 약속이라지만 냉담한 반응을 가져오게 만든 건 자업자득의 행보가 아닐까? 특히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공약을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였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아닌가? 서울시립대의 액수를 반값으로 줄인 반값 등록금 공약을 포퓰리즘이라고 했던 그가 대선을 앞두고 부담을 반으로 줄이겠다니, 액수의 절반은 포퓰리즘이고 부담의 절반은 신심을 담은 공약이란 말인가? 액수의 절반 없는 부담의 절반.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사립학교법 개정 저지한 박근혜 후보의 진심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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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대학교육연구소


그러나 박근혜 후보의 발언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데에는 비단 '부담의 반' 용어 때문만은 아니다.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이명박 대통령. 그는 임기 내내 비리재단들을 복귀시키고 사학의 자율성을 대폭 늘리는 등 친사학 정책으로 일관했다, 반값 등록금 공약의 좌초는 이러한 정권하에서 필연의 결과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투쟁에서 당대표로서 투쟁을 진두지휘했던 박근혜 대선후보, 사립학교법 개정이 아이들에게 반미 친북의 이념을 주입시킬 것이라며 온몸으로 막아내던 그 소신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번에 대학생들 앞에서 내놓은 반값 등록금 공약 또한 이명박 정권의 공약처럼 거짓말이 되거나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5년 개정 발의된 사립학교법은 개방이사제 도입과 족벌사학 규제를 통한 비리척결과 학내 민주화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2007년 등원거부의 배수진을 친 당시 한나라당은 어렵게 통과된 개정안을 또다시 개악했다. 그리고 2008년 집권을 시작한 이명박 정권은 1980년대 이후 비리 때문에 임시이사가 파견된 대부분 대학들에 구 비리재단의 복귀를 허용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부정비리나 회계부정이 드러나 임시이사가 파견되었던 대학 중 구재단이 복귀한 대학이 20여 개나 된다고 한다. 특히 과거 수억에서 수백억의 회계부정을 저질렀던 경기대·대구대·동덕여대·서일대학·경북과학대학은 물론 영남대·조선대 등 수년 동안 비리재단 척결 싸움을 거쳐 임시이사가 파견된 대학들도 포함되어 있다. 사학의 부정비리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며 퇴출도 불사하겠다던 이명박 정부. 정상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지난 20년 동안 대학 민주화의 최소한의 토대조차 허물어 버리고 만 셈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들 대학에서 구 재단측 인사들이 이사 구성에서 과반을 점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자료에 따르면 구 재단 복귀가 이뤄진 20개 대학 중 구재단측 추천인사가 과반을 점한 대학이 15개 대학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남대의 경우도 2009년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이사 7명 중 4명이 박근혜 대선 후보가 추천한 인물들로 채워졌다.(<한겨레> 2012.03.07)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이 명문화되어 있는 사립의 결정 구조에서 과반이 구재단 이사로 채워졌다는 것은 구재단 뜻대로 대학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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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6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사학법 강행처리 무효 대규모 장외집회에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강재섭 원내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촛불을 들고 나란히 서 있다. ⓒ 이종호


고삐 풀린 재단, 통제되지 않는 대학의 자율은 반값 등록금 요구를 무참히 짓밟았다. 등록금을 낮추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는 협박도 이어졌다. 적립금 쌓기의 관행은 여전했고, 적립금을 이용해 주식에 투자해 수십억을 날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일어났다. 2011년, 적립금을 주식에 투자한 대학들이 144억 원의 손실을 입었고 부산대에서는 학생들이 낸 기성회비가 은행담보로 잡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대학들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할 정권은 채찍을 들기보다 자율이라는 당근을 던졌고, 비리재단의 봉인은 대안도 없이 풀려졌다.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투쟁에서 촛불을 나란히 들었던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비리 재단의 복귀는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에 당운을 걸고 싸웠던 보수 정권의 예견된 수순이었고, 반값 등록금과 비리재단 복귀라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은 당연히 공존이 불가능했다.  그들의 반값 등록금 약속이 지금도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투쟁 이후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교육과 대학의 문제에서 다른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던가? 그 많은 비리재단을 복귀시킬 때 침묵으로 동조해 온 것이 구 한나라당이었고 박근혜 대선 후보였다.

'반값 등록금' 국회에서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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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0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경환, 유정복 의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반값 등록금 이후 학생들의 변화는 놀라왔다. <연합뉴스>가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고 있는 서울시립대 학생 3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던 학생들의 62%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거나 줄여 학업이나 자기계발에 시간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이나 보수쪽 일각에서 제기하던 교육의 질 저하 문제에 대해 응답자의 85.6%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또 수혜 받은 대학생의 4명 중 3명은 반값등록금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공헌의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한다. 반값 등록금이 대학 교육의 선순환의 가능성을 보여 준 셈이다.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낮추겠다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분명하게, 확실하게, 반드시'를 남발한다고 진정성이 전달되지는 않는다. 진정 반값 등록금 실현 의지가 있다면 부담의 반이 아니라 액수의 반이라고 고쳐 말해야 한다. 또 이명박 정권과 같이 거짓 공약이 되지 않으려면 사립학교법은 재개정되어야 한다고, 반성 없는 비리재단의 복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공언하여야 한다. 총선을 앞둔 3월 22일 새누리당 조윤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회계가 투명하지 않는 부실대학에까지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부을 수 없다고 했다. 맞는 이야기다. 반값 등록금은 반드시 비리사학 척결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민주당 모두 반값 등록금을 공약했었다. 서울시립대 설문조사가 보여 주듯 반값 등록금으로 교육의 선순환이 정착될 수 있음이 충분히 검증되었다. 논의는 충분히 무르익었고 조율과 결단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후보의 진정성을 검증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다시 내거는 것이 아니라 이번 정기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하고 통과시키면 될 일이다, 지난 총선에서 하겠다던 반값등록금 공약. 대선에서 재탕은 포퓰리즘이라는 오해를 키울 뿐이다.
#반값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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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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