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말고 '통 큰' 것으로 부탁합니다

[주장] 우리 정부의 대북수해지원 제의

등록 2012.09.12 17:03수정 2012.09.1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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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로 열린 '북한 긴급 수해 지원 및 북한 어린이돕기 범국민 캠페인'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행입니다. 한 달 넘게 수해지원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정부가 지난 3일 북한에 수해지원 의사를 전달했고, 정부가 제의한 지 7일 만인 지난 10일 북한이 수용의사를 밝혔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남북이 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니 참 다행입니다. 수해지원 이야기가 나오니 벌써부터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간 후속대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초코파이' 고집하다 무산된 지난해 수해지원

하지만 안심하긴 이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5년간 더없이 악화되기만 한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과연 단초라도 마련할 수 있겠는지 걱정스런 마음이 앞섭니다. 남한이 북한을 '돕겠다'는 건데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MB정부가 50억 원 상당의 초코파이를 보내려다 무산된 일을 생각하면 이번 일도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7일 만에 답변을 보내오면서 북한은 특히 "지난해와 같은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북한이 지난해처럼 쌀, 시멘트와 같은 지원품목을 구체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초코파이나 라면 등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지난해에도 받지 않은 것을 올해는 받겠다 할 리도 만무합니다.

남한 정부와는 상종하지 않겠다던 북한이 남측의 제의를 수용한데는 그만큼 수해사정이 급한 까닭도 있겠으나 공을 우리 정부에 넘겼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정부가 지원이 어려운 처지에 있어 초코파이나 라면이라도 보내겠다는 것이라면야 다른 문제겠지만 수해복구에 꼭 필요한 쌀이나 시멘트 등의 물품이 '군사적으로 전용'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지원할 수 없다니 참 옹색한 노릇입니다. 신뢰하지 못하겠으니 주는 대로 받으라는 것은 수혜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일일 뿐 아니라 남북이 한 민족이며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임을 생각할 때 현명한 처사라 할 수 없습니다.

기왕 지원하기로 했다면 '통 큰' 결단을


정부가 한 달 넘게 '검토'만을 거듭했던 데는 나름의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지원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 떠밀려 나왔을 수도 있고, 현 정부의 남북관계 성적표가 신경쓰였을 지도 모릅니다. 또 거기에는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했다가는 아니 함만 못하다는 예상도 있었을 겁니다.

기왕에 수해지원을 결정한 바에야 통 크게 결단하기를 바랍니다. 생색나게 지원하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도 스스로 인도주의 원칙을 훼손하면서 결국 신뢰가 바닥난 남북관계를 확인하는 데 그친다면 안팎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아니 함만 못한 일로 한층 악화될 남북관계와 긴장의 후과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수해지원 제의가 빈말인지 아닌지 지켜보겠습니다. 지난 5년, 위태롭기만 한 한반도 긴장과 높아질 대로 높아진 국민들의 평화피로감을 극복하는 길은 남북간 신뢰를 회복하는 것뿐입니다. 정녕 MB정부의 남북관계 해법과 신념이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제대로 된 인도주의 원칙에 입각한 결단이라도 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연희 기자는 겨레하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연희 기자는 겨레하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북수해지원 #쌀지원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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