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학교 청소년 정우현(가명. 18)씨.
난다
나도 고등학교 2학년 때 다니던 학교를 그만뒀다. 작은 계기는 '휴대폰'이었고, 큰 계기는 '학교 생활 전반'이었다. 당시 내가 자퇴를 결심하기까지는 아주 여러 번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해야 했지만, 한 번 결심하고 나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자퇴 이후, 그 사건은 나의 인생을 뒤흔드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일상을 꽉 채워버렸던' 학교를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래서 궁금했다. 우현씨에게는 학교가 어떤 의미였는지, 평범한 그리고 필수적 코스인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경험한 그는 '학교'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궁금했다.
- 자퇴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학교 다닐 때 학교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학교에 공부하러 간 건 아닌 거 같아요. 학교에서 자고 나중에 나와서 드럼 치고. 학교에선 거의 다 그랬던 것 같아요. 자거나, 친구들이랑 쉬는 시간에 얘기하거나. 학교 하면 그냥 떠오르는 게 '가둬져 있다'라는 거예요. 제가 딱 고등학교 가서 운동장에 앉아있는데, 그냥 드는 생각이, 교도소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 공부가 재미없었나요? "공부가 재미없기도 했고, 생각이 좀 그랬던 게 드럼을 치니까 공부를 안 해도 된다, 뭐 그런 식으로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해요."
- 그럼 요즘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거의 매일 음악학원으로 가요. 음악학원이 저한테는 학교 같은 거죠. 내가 배울 것이 있고, 또 나름의 학원 생활도 있으니까요. 주위에도 학교 그만두고, 이거(음악)에 집중하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 학교를 다니지 않는 친구들도 있을 것 같은데 자주 만나나요?"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하죠. 그래도 가끔 만나면 똑같이 놀아요. 얘기도 하고... (학교 이야기 하면) 답답해하죠. 저도 만약 드럼 아니었으면 그냥 계속 다녔을 것 같아요."
당신에게 '공부'는 무엇입니까 우현씨는 현재 본인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그에게서, 또래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유쾌한 여유로움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이 학교를 그만두는 것 자체에 대해 걱정부터 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본인의 의지나 떳떳함과는 상관없이 사회의 편견 때문에 스스로 움츠러들기도 한다. 학업, 기타 학교생활의 문제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학교를 그만둔 한 청소년은 "학교를 안 다니면 죽는 건 줄 알았다" 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정씨에게는 그런 두려움은 없었을까.
- 주위의 시선 때문에 힘든 적이 있었나요? "저도 처음엔 말하기 좀 무서웠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냥 상관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떳떳하게 말할 수도 있고요. 처음 막 그만두고 나서는 그게 말하기가 좀 죄송하다 해야 하나, 쑥스럽다 해야 하나... 그런데 검정고시도 보고, 지금은 아무래도 확신이 있는 편이니까, 친척 분들께도 나중에는 잘 말씀드렸어요."
-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학교 선생님 하고는 생각보다 많이 얘기를 못했어요. 그래서 선생님도 아마 좀 기분이 나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부모님하고만 이야기를 했어요. 음...처음엔 안 된다고 하셨는데, 제가 확고하니까 아버지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해를 해주셨어요. 도움을 많이 받았죠."
- 학교를 그만두고 힘든 적은 없었나요? "학교를 그만둬서 힘들다기보다는 이게 드럼이라는 것도, 치다보면 치기 싫어지는 시기가 있어요. 저도 검정고시 끝나고, 5월 달부터는 좀 치기 싫었어요. 슬럼프 같은 거... 지금은 뭐 그런 건 없지만요."
- 그만두고 나서의 생활에 스스로 만족하세요?
"만족은 하는데 희한한 게 자퇴하고 난 다음 날이 제 일상 같은 느낌이었어요. 정말로. 어, 학교 가야지. 이런 생각도 안 들구요. 딱 제 일상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는 어쩌면 학교 안 다니는 게 딱 체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 대부분 학생들은 학교를 답답해하죠. "너무 공부해라, 공부해라, 이거 같아요, 좀 안 좋은 게 저 같은 경우는 드럼을 쳐요. 만약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는 학생들한테는 그걸 할 수 있게 시간을 줬으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못 나오더라도 말이죠."
학교에, 교실에,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쓰고 문제를 풀고… 하는 것을 '공부'라고 부른다. 학창시절의 추억이라 떠올려지는 것들은 쉬는 시간 몇 분 동안에 이루어진다. 그 외의 수많은 시간에는 '공부'라는 것을 한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다른 것을 더 하고 싶은지는 나중 문제이고, 공부 외에 다른 것을 하려면 알아서 찾아야 한다. 다른 공부를 위해 일반학교를 떠나는 것이 당연해지는 이유다.
뛰어난 성적으로 하버드대에 입학한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 학생들이 진짜 공부하는 시간이 길긴 길더라고요." 기나긴 공부 시간을 통해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이는 많지 않고, 모든 사람이 '한우물'만을 파고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많은 학교는 학생을 긴 시간 동안 자리에 앉혀두지 못해 안달이다. 그렇게 단 하나의 길 밖에 보이지 않을 때, '긴 시간 동안 공부-입시-대학'이 유일한 길이라고 배울 때, 다양한 배움으로 향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막힌다.
그들에게 '시간'을 허하라"학교는 공부하는 학생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따로 다른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좀 더 시간을 준다든지, 학교를 빠질 수 있게 한다든지 하면 좋겠어요."이번에 만난 우현씨는 학교를 그만둔 다음 날부터 '딱 나의 일상' 같았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학교에 가던 시간이 너무 익숙해서 일찍 눈을 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학교에서는 내 '시간표'를 몽땅 만들어주고 그냥 하라는 대로 굴러가기만 하면 끝이었는데, 갑자기 주어진 '자유'는 설사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는 해도 많이 낯설었다. 그렇게 몇 주간은 텅 빈 시간으로 보내다가 조금씩 내 '시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시간도 써본 사람이 쓸 줄 안다고, 나는 시간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리고 얼마 후 수 년 간 내 시간을 학교에 빼앗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에서 못 배워 학교에서 못 배워 학교에서는 딴 걸 배워친구를 밟고 올라서는 방법, 남들과 똑같아 지는 방법적당히 거짓말 하는 방법, 반복 반복 it's a cycle궁금해하지 않는 방법, 폭력에 익숙해지는 방법몰래 숨어서 조는 방법, 반복 반복 it's a cycle" - 일리닛, "학교에서 뭘 배워" (2010)내 시간을 내가 만들고 채워나간다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좋아하는 걸 하려면 가난을 결심해야 하는 게 왜 당연시 되는 걸까"('고등학교 옆 대나무숲(@bamboohigh)' 트위터에서) 라는 말이 툭툭 울음처럼 터져 나오는 교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의 깨달음이 큰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그 때와는 다른 의미로, 나의 시간은, 아직도 학교에 붙들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학교와 교육의 변화가 내 삶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거쳐 간다. 저마다의 기억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아주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는 것은 큰 공통점일 것이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던 사람들이 또다시 이 사회를 만들어나간다. 그렇기에 '학교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 '학교에서 뭘 배울 수 있는지' 혹은 '뭘 배우고 있는 건지' 같은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만들고자 했다. 그 변화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금만 더 학교 안팎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야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이면서 2008년 학교를 떠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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