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식(張鉉植)선생 고택’80년 된 고옥이다
김수종
인촌 김성수와 친해 서울의 중앙고 설립 당시 거액을 기부했으며, 고려대 설립 당시에도 사재를 기부했다. 이후 <동아일보> 창간 당시에는 인쇄 장비를 구입할 거금을 희사했다. 1919년 비밀결사인 대동단이 창단되자 운영 자금을 제공하고, 대동신문의 재정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해 3000원을 제공하여 옥고를 당했다. 해방 후 제2대 전북도지사로 재임 중이던 1950년, 한국전쟁 개전 직후 납북되어 북에서 사망했다. 사후인 1989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선생의 집은 원래 당신의 고향인 김제시 금구면에 1932년에 지은 가옥으로 아드님이신 장홍씨가 지난 2007년 전주시에 기증하여 전주향교 서쪽에 2009년 이축한 것으로 정면6칸, 측면5칸, L 자형 겹치마 팔작지붕으로 안채, 사랑채 등 4개동으로 이루어졌다.
1930년대 전통방식으로 건축한 한옥으로, 근대 한옥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건축물이다. 특히 미닫이문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고안된 안채의 퇴창문은 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한옥 대목수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보기 드문 문이다.
아울러 목재가공수준이 매우 뛰어나고 정교해 보존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이 집의 사랑채는 임실군의 '진참봉 고택' 사랑채를 옮겨 온 것으로 정확한 건축연도는 알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