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김재범? 문대성 망친 걸로도 부족한가

[取중眞담] '영입 날치기'로 스타 죽이는 새누리당

등록 2012.10.02 18:10수정 2012.10.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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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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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남자 유도 -81kg급에서 우승한 김재범 선수. 최근 '가벼운 자리인 줄 알고 갔다가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 위촉장을 덜컥 받아' 구설수에 올랐다. ⓒ 런던올림픽조직위


'김연아는 누구 캠프로? 박지성은? 박태환은? 손연재는?'

지난 9월 28일 런던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범 선수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경북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자연스레 든 생각이다. 김재범 선수를 시작으로 스포츠 스타를 대선 후보 캠프로 영입하는 데 경쟁이 붙을 것이고, 현재의 인기로 봐서는 위에 언급한 선수들이 최우선 대상이 될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런데 김재범 선수는 지난 1일 공동선대위원장직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김 선수는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이제 그만 제가 잘못했으니깐, 모르고 그냥 식사자린 줄 알고 갔다가 이렇게 된 일이니깐"이라며 "이제 운동선수의 본분을 지키면서 더 좋은 선수가 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부터 직접 공동선대위원장 위촉장을 받은 지 사흘 만에 사퇴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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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선수는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심경을 털어놨다 ⓒ 김재범 미니홈피 갈무리

그러나 김재범 선수의 박근혜 캠프행은 '무리한 영입'임이 드러났다. 일부 언론은 마치 김 선수가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직후 쏟아지는 비난과 악플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이번 소동의 원인은 명확하다. 김 선수가 밝혔듯 '그 자리가 그런 자리인 줄 몰랐던' 상태에서 새누리당이 김 선수를 데려다가 위촉장을 안겨버린 것이다.

그런데, 비난은 '가벼운 자리인 줄 알고 갔다가 위촉장을 덜컥 받아버린' 김 선수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 사안을 다룬 기사에는 김 선수가 정치활동을 하면서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게 가능하냐는 논란부터 정치활동 자체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김 선수 개인의 미니홈피에도 김 선수에게 실망을 표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물론 박근혜 후보에 반대하는 이들의 악플도 있다.

여기서 대한체육회의 역할에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김재범 선수가 경북 공동선대위원장 위촉장을 받은 날 공식 트위터에 "박근혜 캠프에 합류한 런던 금메달리스트 누구?"라고 쓴 뒤 관련 기사 링크를 걸었다.

민주당 신재민 의원은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는 대한체육회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고 특정 대선 후보 관련 내용으로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서 공직선거법 9조와 87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대한체육회를 중앙선관위에 신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박근혜 홍보'뿐만 아니라 김 선수가 경북선대위 출범식 행사장에 참석하게 된 것부터 대한체육회의 역할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도 제기되는 대목이다.

새누리당에 '뒤돌려차기' 당한 문대성을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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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표절 의혹으로 새누리당을 탈당한 문대성 의원이 무소속으로 지난 7월 9일 열린 7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 참석해 스마트폰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 남소연


새누리당에게 '김재범 영입'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카드였을 것으로 보인다. 20·30대 지지율이 현저히 낮아 고민인 상황에서 패기 넘치는 20대 유도 스타가 박근혜 캠프에 몸담는다는 것 자체로 캠프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또 체급 변경과 부상이라는 도전을 이겨내고 세계 최정상에 우뚝 선 김 선수가 앞장서서 '박근혜 후보에게 한 표를'이라고 호소한다면, 젊은 세대에게는 어떤 정치인의 유세보다 잘 먹혀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의 정치활동이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법적으로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가지는 이들을 제외하면 누구든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는 연예인들이 많아 '소셜테이너'라는 말이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고, 연예활동의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번 김재범 선수의 박근혜 캠프행 소동은 선수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공동선대위원장 위촉을 '날치기'해버렸고, 이 과정에서 한 스포츠 스타를 논란의 중심에 세워버렸다. 온당한 비판이든 그렇지 않은 비난이든 모두 김재범 선수에게로 쏟아졌다.

새누리당은 인기 많은 스포츠 스타를 하루아침에 비난의 대상으로 바꿔버린 전력이 이미 있다. 겨우 5개월 전, 새누리당은 총선 판에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 선수를 내세웠다가 총선이 끝나고 난 뒤 '식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버렸다.

19대 총선에서 문대성 후보를 영입한 쪽은 새누리당이었다. 민주당이 '낙동강 전선'을 운운하며 부산에서 공세를 펼 때, 문대성 후보는 전선 사수의 대항마로 발탁됐다. 선거결과, 새누리당도 문 후보도 목적을 달성했다. 그런데 당선 뒤 문대성 의원의 논문 표절 의혹이 논란이 되자 새누리당은 곧바로 문 의원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문 의원으로서는 자신을 세계적 스타로 만든 뒤돌려차기를 새누리당에 당한 꼴이다. 자기들이 급할 때는 출마해달라고 했다가 선거에서 승리하고도 당이 비난에 직면할 상황이 되자 '당을 나가라'는 식이었다. 문 후보를 공천한 것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김재범 #새누리당 #문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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