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질서 강조한 MB, 왜 특검 재논의 요구했나

등록 2012.10.04 13:41수정 2012.10.0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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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협의해 특검을 추천하기로 합의해 놓고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특검을 추천한 것을 두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특검 재추천 요구, 대통령 권위 스스로 저버려

청와대가 3일 여야 정치권에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을 수사할 특별검사 추천 문제를 재논의해 줄 것을 촉구하면서 최금락 홍보수석이 밝힌 이유다. '합의'냐, '협의'냐라는 국어 실력 문제를 떠나 대통령이 직접 사인한 특검법을 이제 와서 재추천해 달라는 것은 충격 그 자체다.

청와대는 고발 당사자인 민주당이 특검 추천권을 가졌다는 이유로 '위헌'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내부 토론까지 했지만 결국 이 대통령은 지난 달 21일 특검법에 사인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여야 합의 운운하면서 특검을 재추천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이 사인한 법안을 불과 보름만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대통령 권위를 스스로 내팽개친 꼴이다.

특히 특검법은 '민주통합당이 특검 후보자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은 3일 이내에 이 가운데 한명을 임명해야 한다'로 되어 있다. 한 마디로 청와대가 특검을 재추천해 달라는 것 자체가 초법적 발상이고, 웃기는 일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4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명박 대통령이 시한인 내일까지 임명하지 않으면 실정법 위반"이라고 반박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그 동안 '법질서'를 강조했었다


"도덕적으로 어떤 약점도 없이 출범한 정권인 만큼 공직자들이 법을 공정하고 엄정하게 집행해 주기를 바란다. 국민의 법질서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면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대전환이 있어야 되는데, 그 선결 과제가 힘 있는 사람, 가진 사람, 공직자들이 먼저 법을 지키고 공정하게 한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주어야 한다."-2008.12.29 법무부, 법제처, 국민권익위원회 2009 업무보고

"법질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사회간접자본이자 선진화의 핵심 인프라다. 법질서를 지켜지지 않으면 경기회복, 일자리 창출, 사회통합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를 찾아오는 외국의 손님들에게 우리의 유구한 문화와 전통, 경제적 발전상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이 법과 질서가 잘 지켜지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겠다"-2009.11.27일 중앙경찰학교(학교장 치안감 김수정) 졸업 및 임용식 연설


자신의 입으로 법질서를 강조했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특검 재추천을 요구했다. 법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지난 21일 이 대통령이 특검법에 사인하자 이철우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법무부 등 실무자들에게서 위헌 소지가 있어 (국회) 재의결을 요구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음에도 이 대통령이 국회에서 여야 협상으로 결정된 뜻을 존중했다"면서 "이 대통령이 사실 특검을 수용하긴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관련 의혹에 떳떳하단 조치로 과감한 결단을 해줬다. 의혹이 없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환영했다.

까마귀 고기 먹은 새누리당, 보름 전 논평 잊었나...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청와대가 특검 재추천을 요구해도, 민주당처럼 반박은 못해도 특검법안대로 특검을 임명해야 한다고 해야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청와대를 두둔하면서 오히려 민주당을 비판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4일 최고위원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쏟아냈다.

"이번 특검 요청은 협의가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성향을 봐도 공정성에 대해 일말의 의심도 없다고 담보하기 어렵다. 여야가 다시 이 부분에 대해 협의를 해서 '원만한 협의'의 취지에 맞는 결과를 내야 한다"(황우여 원내대표)
"민주통합당의 일방적 특검 후보자 추천 소동은 여야 합의대로 이행하지 않은 탓으로 전적으로 민주통합당의 책임이다. 민주당은 역시 믿을 수 없는 정당임을 확인시켜줬다. 같이 정치를 해야 할지 회의가 들고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이다."(이한구 원내대표)

어처구니가 없다. 그럼 이철우 원내대변인과 당대표 발언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분명 내곡동 특검은 여야 합의였다. 더구나 황우여 대표는 서울대 법대 출신이고 법학박사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소장까지 지낸 사람이다. 그렇다면 특검법에 대통령 사인이 어떤 효력을 갖는지 잘 알 것이다. .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이 대통령 아들 이시형씨가 포토라인에 서는 것이 두렵기 때문인가. 이시형씨가 혹여 사법처리되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불똥이 튈까봐 이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함인가.

진중권 "이시형 기소될 경우 박근혜 여파 피할 수 없어 '대형악재'"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새누리당이 두려워 하는 것은.... 이시형이 기소 될 경우 박근혜가 그 여파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죠.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떠들 테니까요. 현직 대통령 아들 기소... 이건 기소의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대형 악재죠."라고 말했다. 

내곡동 특검이 새누리당에 불리한 것은 맞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면돌파하는 것이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만약 특검이 검찰 수사와 차이가 없을 때 유기준 최고위원이 "정치적으로 악용해 대선정국에서 이득을 보려고 하고 정치색으로 특검을 도배하겠다는 망상에서 벗어나길 촉구한다"고 비판한 것처럼 특검을 밀어붙인 민주당이 역풍을 당할 수도 있다.

사실 특검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특검이 10번 있었다. 내곡동 특검이 11번째다. ▲ 19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와 옷 로비 ▲ 2001년 이용호 게이트 ▲ 2003년 대북 송금 ▲ 2004년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 2005년 철도공사 유전개발 ▲ 2008년 삼성 비자금 ▲ BBK 의혹 ▲ 2010년 스폰스 검사 특검 등이다. 이들 특검 중 검찰 수사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내놓은 것은 거의 없다. 대부분 용두사미로 끝났다.

'특검 2관왕' MB, 특검으로 시작해 특검으로 끝나는 첫 대통령...

하지만 특검법은 여야합의로 통과됐고, 대통령은 사인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애먼 민주당 잡지 말고, 떳떳하고 당당하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 그게 국민 앞에서 사는 길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역사상은 특검으로 시작해 특검으로 끝나는 첫 대통령이다. 그것도 자신이 당사자였다. BBK와 내곡동 특검이다. '특검 2관왕'이다. 올림픽에서 2관왕이면 온 국민이 환영할 일이지만, 대통령이 특검 2관왕이라면 나라 수치다. 국격을 높이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던 이 대통령이 국격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대통령은 당당하게 특검 임명하시라.
#내곡동특검 #이명박 #청와대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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