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의 여름과 겨울. 김유신을 기리는 본격적인 사당이 경주 아닌 진천에 있다는 것은 진천 태생의 그가 그만큼 진천 연고의 사람이라는 사실의 방증이다.
정만진
우여곡절과 수많은 전쟁 끝에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주역이 된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그 누구도 김유신의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이가 없다. 그래서 지금도 진천군 태령산 정상에는 그의 태실이 있고, 그 아래에는 생가와 그의 가족이 쓰던 우물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근처에 그를 기리는 사당 길상사도 세워져 있다.
그러므로 김유신을 찾아 답사하는 역사여행이라면 진천의 생가와 태실 등을 먼저 찾아보는 것이 좋다. 그 다음은?
경주에 남아 있는 김유신 유적은 묘지, 집터, 무덤
김유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필수 답사지가 경주에 없을 리 없다. 김유신은 '경인' 아닌가. 그의 묘소, 집터, 서악서원, 천관사 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집터는 반월성 서쪽 남천 강변에 있고, 천관사 터는 그의 집터에서 남천 바로 건너편에 있고, 서악서원은 무열왕릉 동쪽에 있다. 그래도 답사의 꽃은 '흥무왕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