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아닌데 왕릉? 왕자도 아닌데 태실?

[경주 여행 7] 김유신 묘

등록 2012.10.18 12:10수정 2012.10.2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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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과 장보고는 중국 서적이 없었다면 후세에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유신은 온 나라 사람들의 칭송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대부가 그를 아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겠지만, 꼴 베고 소 먹이는 아이들까지도 모두 그를 알고 있으니, 이는 김유신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뜻일 것이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쓴 '김유신 열전'의 마지막 대목이다. 어느 누구보다도 신라를 대표하는 인물인 '김유신'을 김부식은 그렇게 평가했다.


 충북 진천 태령산 아래의 김유신 생가(복원). 집 뒤로 그의 태실이 있는 태령산 정상이 보인다.
충북 진천 태령산 아래의 김유신 생가(복원). 집 뒤로 그의 태실이 있는 태령산 정상이 보인다.정만진

김유신은 595년(진평왕 17),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군 만노산 아래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의 아버지 서현은 만노군 태수였다.

김유신의 최초 조상은 금관가야 김수로왕이다. 그러나 금관가야는 532년(법흥왕 19) 멸망했다. 마지막 임금 구형왕의 셋째 아들 무력은 신라의 장군이 되고, 554년(진흥왕 15) 충북 옥천군 관산성 아래 구진베루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전사시키는 큰 공을 세운다. 드디어 당나라로 오가는 관문이자 비옥한 평야를 대거 차지한 신라는 삼국통일의 기반을 얻게 되었다.

진천 출생 김유신, 하지만 그는 서울 사람

무력의 아들인 서현(김유신의 아버지)은 진흥왕의 조카 만명과 연애결혼을 했다. 만명의 부모가 반대했지만 둘은 서울을 탈출하여 만노군(진천)으로 옮겨 살았다. 그들은 유신이 대략 15세가 될 때까지 서울(경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김유신을 '경인(京人)', 즉 서울사람으로 규정했다. 생애의 대부분을 경주에서 보냈기 때문.

 길상사의 여름과 겨울. 김유신을 기리는 본격적인 사당이 경주 아닌 진천에 있다는 것은 진천 태생의 그가 그만큼 진천 연고의 사람이라는 사실의 방증이다.
길상사의 여름과 겨울. 김유신을 기리는 본격적인 사당이 경주 아닌 진천에 있다는 것은 진천 태생의 그가 그만큼 진천 연고의 사람이라는 사실의 방증이다. 정만진

우여곡절과 수많은 전쟁 끝에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주역이 된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그 누구도 김유신의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이가 없다. 그래서 지금도 진천군 태령산 정상에는 그의 태실이 있고, 그 아래에는 생가와 그의 가족이 쓰던 우물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근처에 그를 기리는 사당 길상사도 세워져 있다.


그러므로 김유신을 찾아 답사하는 역사여행이라면 진천의 생가와 태실 등을 먼저 찾아보는 것이 좋다. 그 다음은?

경주에 남아 있는 김유신 유적은 묘지, 집터, 무덤


김유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필수 답사지가 경주에 없을 리 없다. 김유신은 '경인' 아닌가. 그의 묘소, 집터, 서악서원, 천관사 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집터는 반월성 서쪽 남천 강변에 있고, 천관사 터는 그의 집터에서 남천 바로 건너편에 있고, 서악서원은 무열왕릉 동쪽에 있다. 그래도 답사의 꽃은 '흥무왕릉'이다.

 김유신의 묘는, 아름답기만 따진다면 궤릉만은 못하지만, 신라 어느 왕의 무덤보다도 잘 정비되어 있고, 호석, 비석, 십이지신상 등이 튼튼하고 위엄있게 갖춰져 있어 경이감을 준다. 그는 임금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김유신의 묘는, 아름답기만 따진다면 궤릉만은 못하지만, 신라 어느 왕의 무덤보다도 잘 정비되어 있고, 호석, 비석, 십이지신상 등이 튼튼하고 위엄있게 갖춰져 있어 경이감을 준다. 그는 임금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정만진

경주시 충효동 송화산 자락 금산원에 있는 사적 21호 '흥무대왕릉'을 찾아본다. 김유신 묘가 아니라 흥무대왕릉? 비석에 그렇게 새겨져 있다. 흥덕왕 10년(835), 김유신에게 흥무대왕이라는 칭호가 내려졌다.

선도산 북쪽 비탈의 낮은 야산 송화산 기슭에 있는 김유신의 무덤을 보면 '역시 김유신은 왕'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일어난다. 크기와 높이는 무열왕릉과 난형난제이지만 위치가 처음부터 훨씬 높은데다 호석, 돌난간, 십이지신상 등 김춘추의 무덤에는 없는 것들이 웅장하게 위엄을 뽐내고 있어 오히려 더 왕릉답다.

 김유신 묘의 호석은 유례가 없을 만큼 단단하게 세워져 있고, 십이지신상도 흠결없이 뚜렷하다.
김유신 묘의 호석은 유례가 없을 만큼 단단하게 세워져 있고, 십이지신상도 흠결없이 뚜렷하다.정만진
삼국사기에 나오는 그의 사망 부분을 읽어보자. 문무왕이 직접 나서서 김유신의 무덤을 왕릉 못지않게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673년) 가을 7월 1일, 유신이 향년 79세에 자기 집에서 죽었다'는 부음을 들은 문무왕은 '매우 슬퍼하며 채색 비단 1천 필과 벼 2천 석을 부의로 보내 장례에 쓰게 했다. 또 군악의 고취수 1백 명도 보내었다. 금산원에 묘를 만들고 비를 세워서 그의 공명을 기록하게 하였으며 사람을 지정하여 무덤을 지키게 하였다.

김유신 무덤, 문무왕이 직접 만들어

문무왕은 무슨 이유로 김유신의 장례에 이처럼 큰 관심을 보였을까? 역시 삼국사기의 증언이다.

(김유신이 죽기 전에 마지막 문병을 간) 대왕은 울면서 말했다. "과인에게 경이 있음은 마치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만일 피하지 못할 일이 생긴다면 백성들을 어떻게 하며 사직을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본래 태실은 왕자의 앞날을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왕자가 아닌데도 김유신은 충북 진천의 생가 뒤편 태령산 정상부에 태실을 남겼다.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그의 부모들은 예감했던 것일까? 아들이 장차 흥무'대왕'이 될 줄을.

 서악서원. 무열왕릉과 서악고분 사이로 선도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펼쳐진다. 김유신, 최치원, 설총을 모시는 서악서원은 1561년에 사당으로 건립되었지만 왜란 때 불탔고, 지금 건물은 인조 때 다시 지어진 것이다.
서악서원. 무열왕릉과 서악고분 사이로 선도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펼쳐진다. 김유신, 최치원, 설총을 모시는 서악서원은 1561년에 사당으로 건립되었지만 왜란 때 불탔고, 지금 건물은 인조 때 다시 지어진 것이다.정만진

 김유신 묘소로 가는 아름다운 길
김유신 묘소로 가는 아름다운 길정만진
법흥왕릉에서 돌아나와 계속 전진하면 본래의 간선도로가 나오고, 왼쪽으로(경주 시내 방향으로) 가면 무열왕릉이 있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작은 고개를 넘으면 바로 무열왕릉이다. 왕릉 묘역 안으로 들어서면 김춤추의 선조들이 영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서악고분군이 있다. 무열왕릉 입구와 김인문 묘 사이를 도로가 지나간다.

서악고분군 뒤산이 선도산이다. 김유신의 누이 보희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오줌을 누는 꿈을 꾼 산이다. 보희는 흉몽으로 여기고 그 꿈을 동생 문희에게 팔았다. 문희는 길몽으로 해석했고, 결국 그녀는 김춘추와 결혼, 문무왕의 어머니가 된다. 선도산 정상부의 높이 7m짜리 거대 마애불이 정말 볼 만하다. 등산 준비가 되어 있으면 꼭 오를 일이다. 등산에는 30분 남짓 걸린다.

이제 김유신 묘소를 찾는다. 강을 따라 북쪽으로 난 도로를 나아가면 '금산재'라는 김유신 기념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묘소는 물론이고, 그리로 들어가는 길도 아름다워 '역시 김유신!'이라는 찬탄이 저절로 나온다. 교육원 건물도 눈길을 끈다.

- 지금까지 졸고 '경주여행 1-7'을 통해 위의 순서대로 글을 쓰고 사진을 배치했습니다. '경주여행 8'은 부산에서 경주로 들어갈 때 길의 순서대로 답사할 역사여행 여정을 안내할 것입니다.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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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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