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책표지
엄지원
"이제 어떻게 될까, 응?"어둠이 내려앉는 저녁이 되면, 알렉스와 그의 친구들은 아지트인 코로바 밀크바에 앉아 그날 밤에 무얼 할지 머리를 굴린다. 우유에다 벨로쳇, 신세메쉬 같은 '칼(마약의 속어)'을 섞어 마시면서 말이다. 약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하날님(God의 속어)과 성스러운 천사와 성자를 만나는 '정말 기분 째지는 15분'을 가지고 나면 비로소 '일'을 벌일 기분이 되곤 했다.
그들은 최신 유행에 따른 옷을 입고, 입가엔 미소를 띠우며 짐짓 신사처럼 길을 나선다. 하지만 이후 그들이 벌이는 행동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쁜 쩐'을 긁어내기 위해 골목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주무르거나', 상점에서 벌벌 떠는 주인에게 '초강력 폭력'을 휘둘러 현금계산대에서 돈을 들고 도망친다. 패거리 싸움에서는 그냥 발차기나 주먹질이 아니라 칼질, 체인질, 면도칼질 대결이 난무한다.
성폭행도 서슴지 않는다. 열 살도 안 된 소녀들을 겁탈하고, 남편 눈앞에서 돌아가며 유부녀를 강간한다. 절도, 마약, 폭력과 강간 등 이렇다 할 강력범죄는 죄다 등장하지만 그들은 유유히 수사망을 빠져나간다. 이쯤에서 예상했겠지만, 알렉스와 친구들은 범죄로 인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아니 취급하지 않는다. 반대로 범죄, 즉 악한 행동을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맘껏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