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대회에서 한참 뒤처져 혼자 달리고 있는 선수. 살다 보면 이렇게 뒤처지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한다.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격려를 할 수 있을까.
김대홍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체력장 시험을 치렀다. 턱걸이, 100m 달리기, 넓이뛰기와 함께 오래달리기가 있었다. 기억으론 4분 40초 이내에 들어와야 만점을 받았는데, 아슬아슬한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나였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모두가 오래달리기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는 묘안을 짜냈다. 전체가 줄을 맞춰서 달리는 것이었다. 제일 잘 달리는 아이가 앞장을 서고, 못달리는 아이를 가운데 뒀다.
이 방식은 두 가지를 노린 묘수였다. 우선 가운데 있는 느린 아이들은 전체와 보조를 맞추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시간상 이점이었다. 선두에 선 아이들만 4분 40초에 통과하면 나머지는 뭉쳐서 들어가기 때문에 몇 초쯤 늦더라도 괜찮았다. 몇몇 선생님들이 꼼수라며 눈총을 줬지만 담임선생님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운동장을 아마 다섯 바퀴 정도 돌았을 것이다. 세 바퀴 정도는 따라갔을 게다. 가운데에서 뒤로 밀려나다 네 바퀴째쯤부터는 무리에서 떨어져나갔던 것 같다. 결국 마지막 바퀴에선 나 혼자 외로이 달려야만 했다. 한 명도 낙오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선생님이 고민끝에 묘수를 만들었지만, 결국 나는 그 속에 들지 못했다. 무리와 함께 달린다는 게 버겁기만 했던 순간이었다. 그 때 그 순간은 운동장 밖에서 구경한 친구가 몇 번이나 들려줘서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때로부터 대략 10년이 지나 체력을 기른 뒤 5km 달리기에 나섰다. 상위 10% 이내에 드는 성적을 기록했다. 대회에 참가하기 전부터 왠지 좋은 기록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몸이 가벼웠다. 10여년 전 그 때와는 다른 상태였다.
5km 달리기를 한 때로부터 또 대략 10년 정도가 지났다.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중학교 시절 1km를 4분 40초에 완주하기엔 내 체력이 너무 약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아무리 꼼수를 쓰고, 채찍질을 해도 탈락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올 수밖엔 없는 게 아닐까. 탈락하는 사람이 안 나오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탈락해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골목을 누비면서 중학교 3학년 시절 나를 보게 된다. 도도한 흐름에서 탈락한 사람들, 어쩌면 애초부터 그 흐름에서 무관하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 살펴 보면 그런 이들도 꽤 많은 것 같다. 애초부터 출발선이 달라 한참 뒤에서 달려 이제서야 무리 가까이 따라붙은 사람들. 어쨌든 골목은 그런 사람들을 품었고, 골목에선 도도한 흐름에서 한 발짝 벗어난 이들의 마음을 읽게 된다.
시대 따라 달라지는 이름들, 사라지는 이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