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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
"저 음대 편입할래요."
2006년 여름,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 그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셨던 부모님 앞에 자식이 또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날벼락이었을까? 스물일곱에 전공을 바꾼다는 아들의 결심 앞에 부모님 멍하니 바라만 보셨다.
"미...쳤니?"
"제가 벌어서 다닐게요."
그렇게 말은 씨가 되었다. 편입을 하고 한 해가 지났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볼 생각에 집을 나와 학교 동생 둘과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작은 옥탑방을 월세로 얻었다. 낮에는 학교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데 실용음악 보컬 전공이 밤에 잠을 못자니 목이 좋을 턱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목 관리 못한다고 교수님께 깨지고 밤에는 술 취한 손님들에게 깨지고 뒤늦게 집에 들어오면 같이 사는 동생들이 잠에서 깨지고….
하지만 보다 힘든 시간은 11월 말부터 찾아오기 시작했다. 옥탑 마당에 나서면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더욱 잘 체감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2주 정도는 더 먼저 호빵을 찾을 정도의 추위다. 12월에 들어서면 이제 완연한 겨울이다. 지구온난화, 엘니뇨의 축복(?)을 옥탑방 자취생은 느낄 수 없다. 하루하루 체온과 멀어지는 보일러 계기판에 온도계를 마지막 잎새를 세는 심정으로 바라본다.
"16,15,14... 7..."
12월 중순, 7°C에 도착한 온도계가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교체한 지 얼마 안 되는 보일러는 위아래 두 번씩이나 타는 신형이다. 샤워기에서는 뜨거운 물이 잘 나오고 방바닥은 절절 끓는다. 다만 바닥에서 15cm만 지나면 온기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방학이라 동생들은 모두 집으로 가고 혼자서 자취방을 지켰다. 기댈 곳도 없이 온기의 경계 위에 있는 피부가 살얼음 얼어가기를 며칠...
추위는 기억까지 얼어붙게 하는가?
문득 처음 이사를 올 때 주인아줌마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겨울에 좀 추울 거야. 너무 추우면 이야기 해. 문 앞에 칸막이를 하나 쳐줄게.'
보통의 옥탑방들은 옥상에 올라서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건물이 있고 가건물의 문을 열면 아주 짧은 미로를 거쳐 방에 들어서는 구조다. 생각해보니 내가 사는 옥탑은 문을 열면 그냥 옥상이었다. 옥상과 방을 가로 막는 것은 단지 얇고 언발란스한 철재 '방문'이었다. 추위에 생각이 멎기 전에 주인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삑."
전화가 단숨에 끊어졌다. 연이어 세 번을 걸어도 통화가 안 됐다. 문자를 남겼다.
'아주머니, 옥탑학생인데요. 너무 추워서요. 지난번에 말씀하신 그 칸막이 좀 설치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다음날 문자의 답장이 왔다.
'우리 건물 관리 해 주시는 분 보낼게요.'
그리고 한 달 동안 난 건물관리인을 만날 수 없었다. "바쁘다", "외부에 있다", "다음 주에 간다"는 핑계가 익숙해진 구정을 앞 둔 어느 날, 낡은 공구 가방을 들고 구세주가 찾아왔다. 내 뜨거운 기다림과 기대와는 달리 공사는 한 시간도 안 되어 끝나고 말았다. 공사의 잔해를 간단히 정리하고 칸막이에 달린 문을 닫고 철재 '방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 보일러 계기판을 바라보았다.
조금씩 꿈틀 때는 온도계는 두 시간 후 13°C에 정점을 찍고 멈췄다. 그리고 꽃피는 봄이 올 때 까지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바닥에서 시작한 온기는 약 30-40cm까지 성장했다. 기상이변의 선물로 3월에 내리는 눈까지 모두 그친 후에 보일러 온도계는 13°C를 넘어 상승하기 시작했고 4월에 들어서는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전원을 껐다.
따뜻함이 익숙해진 5월의 일요일 오후,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방 한 켠에 딸린 낡은 가스레인지에 라면물을 올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기적을 보았다. 5월의 햇살이 가스 배관 뒤 벽 모서리에 너머로 비치는 것이다. 길이는 약 50cm, 직경은 약 3cm의 세상으로 통하는 "균열"은 지구와 태양의 각도가 맞아 떨어진 어느 날 수줍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몸을 틀어 관 뒤에 "균열"을 살펴보는데 따뜻한 봄바람이 얼굴에 닿고 있었다. 그날 난 지난 겨울 나에게 시련과 인내를 가르쳐 준 7°C의 진정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칸막이에만 눈이 멀어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했다.
6년이 지난, 2012년 난 여전히 내 집을 갖겠다는 큰 꿈에 도전하며 월세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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