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생 주제에..." 교수님 말, 거역했으나

[지방대생의 비애②] 서울 집회 갔다가 텐트에 홀로 남은 사연

등록 2012.10.20 10:58수정 2012.10.2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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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당시 대학은 등록금 폭등, 청년실업 심화 등으로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심각했다. 심지어 첫 강의 교양 수업 시간에 교수는 지금은 짱돌과 낭만 대신에 토익책과 자격증 책을 들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놀 생각 하지 말고 토익, 자격증 공부나 한 자 더 해야 한다. 왜냐하면 너희는 지방대 학생들이니깐!"

유명강사 섭외하기도 쉽지 않네 

수업시간에 교수의 충고를 들었지만, 내 삶은 교수의 충고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누구 하나 취직이 잘 된다고 말한 적 없는 철학과를 공부하고 싶다는 이유로 지원했고, 대학 다니면서도 철학 이외 자격증 공부는 생각하지 않았다. 진보적인 학생정치단체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 지방대생의 차별은커녕 서러움 또한 느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보적인 학생 단체 활동을 하면서도 지방 학생의 서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인문학 동아리를 운영하며 책을 읽다보니 저자 강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내로라하는 연사들을 섭외해 강연회를 여는 것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섭외를 하다 보니 강사들이 강사비를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뒤풀이비로 돌려주는 모습도 자주 목격했다.

그러나 지방대에 유명한 연사를 모셔오기란 하늘에서 별따기였다. 일단 유명한 강사의 경우 수도권 대학, 모임, 단체 등의 강의로 일정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지방 강연은 한두 달 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성사 자체가 불가능했다. 만약 성사가 되어도 돈이 문제였다. 보통 서울에서는 학생들의 열악한 경제사정을 고려해 최소의 비용만으로도 강의가 어렵지 않게 성사됐지만, 지방에서는 기차 비용 10만원(부산 기준)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지방에 있는 유명한 연사를 부르면 되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 구조의 특징상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알만한 지방 연사를 발굴하기가 쉽지가 않다. 설령 지방 연사를 섭외했다고 하더라도 인지도가 떨어져 강사에게 죄송할 정도로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형사가 서울지역 대학생만 집중 조사한 이유

2009년 1월 용산참사 사건 이후 서울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집회가 끝난 이후 함께 같은 단체에서 활동했던 친구들 4명과 경찰에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2박 3일 동안 구치소에 갇혀 생활하며 하루에 한 번 조사를 받았는데 이런 와중에도 지방대생의 서러움을 느꼈다.


정보과 형사의 조사가 시작되자 나는 지방에서 상경했다가 집회에 우연히 참석했다고 말했다. 형사가 "지방에서 왜 올라 왔느냐"라는 질문에 나는 "가족 경사가 있어서 왔다"는 답변을 했다. 형사는 내 말을 믿고 대충 넘어갔다. 하지만 서울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의 조사는 달랐다. 형사는 그 친구들이 서울지역 대학에 다닌다는 것이 밝혀지자 그 친구들에게 어떤 대학에서 무슨 동아리 활동을 하고 어떤 단체 소속이냐고 추궁했다. 그리고 단체에서 그 친구가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는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형사가 검색까지 했다.

형사 또한 지방대 학생보다 서울지역 대학 활동가들이 수사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어찌보면 개인적으로는 지방대생이라 얼렁뚱땅 넘어가 좋은 일이었지만, 지방대 학생은 학생운동의 핵심 구성원이 아니라는 형사의 대우가 섭섭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점령하라(Occupy) 서울 시청, 사라진 서울 대학생들 

 지난 3월 30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등록금 인하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광장으로 달려 3.30 무한점령 프로젝트' 대회가 열렸다.
지난 3월 30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등록금 인하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광장으로 달려 3.30 무한점령 프로젝트' 대회가 열렸다.김지수

2011년 가을 미국에서 금융위기에 맞서 시민이 자발적으로 월가에 텐트를 치고 점령을 하는 시위가 있었다. 한국에서 또한 2011년 연말부터 시작해서 2012년 상반기까지 점령하라(Occupy) 여의도·서울 시청 운동을 했다.

2월까지 소수의 사람들이 서울시청 점령 운동을 진행하다가 3월 30일에 맞추어 전국 대학생들이 모이는 '무한 점령 캠프'를 꾸리기로 했다. 3월 30일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들이 등록금, 청년실업, 주거, 아르바이트 등의 문제를 놓고 서울시청에서 1박2일 텐트를 치고 떠들어 보자고 약속했다.

일정은 이랬다. 3월 30일 서울 시청에서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내는 문화제와 집회를 마친 후 서울 각지로 행진을 한 후 다시 시청에 돌아와 텐트를 치고 점령하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해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3월 말이었지만 하루 텐트에서 잘 생각으로 두꺼운 겨울옷과 담요를 챙겨갔다. 그러다보니 가방이 두툼해서 이동할 때 아주 불편했다.그러나 서울 참가자들의 복장과 가방은 근처 나들이 나온 것처럼 가벼웠다. 옷도 춥지 않을 정도로 봄에 맞는 정당한 것이었고, 가방 또한 책 한 권 들어 있을 정도로 가벼워 보였다. 처음에는 '서울 학생들은 이런 활동을 많이 하니 하루 밤 거리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텐트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그 많던 사람들이 대부분 보이지 않았다. 행사를 기획했던 기획팀을 제외한 수도권 사람들은 모두 집에 간 상태였다. 이 때 정말 서럽고 난감했다. 함께 올라온 후배들에게 뭐라 논리적으로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획팀 책임자에게 항의를 하니 "30일 하루에 일정을 다 해버려 다음날 일정을 취소했다. 그래서 다들 집에 가기로 사전에 합의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행사가 밤 11-12시에 끝나면서 집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텐트에서 잠을 자야 했고, 서울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귀가했던 것이다.

기획단 책임자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에게 미안한지 재미난 일화를 하나 들려줬다.

"2011년 희망버스가 잘 된 이유가 뭔지 알아요?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 조합원들이 열심히 싸운 덕이겠죠. 하지만 희망버스가 부산 끝자락 영도의 한진중공업에서 진행되다보니 서울 참가자들이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니 1박2일 동안 한진중공업에 들어가기 위해 부산 이곳저곳에서 시끄럽게 하고 밤새도록 노래하고 집회했던 겁니다. 희망버스의 일등 공신은 서울 사람들이 집에 가지 못하게 부산 영도에서 집회가 열린 것입니다. (일동 하하하)"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지난 2011년 7월 30일 저녁 부산 영도구 봉래삼거리에서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206일째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고공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행진을 벌이며 '해고=살인'라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지난 2011년 7월 30일 저녁 부산 영도구 봉래삼거리에서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206일째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고공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행진을 벌이며 '해고=살인'라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유성호

후배들에게 문제점을 이야기해 보지만 

학생정치단체에서 활동을 하면서 이것뿐 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서러운 것이 많다. 지방에서는 서울과 같이 다양한 문제에 대한 집회와 행사가 매우 드물다. 아무리 후배들에게 세상은 무엇 무엇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도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은 그들에겐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특히 언론에 잘 비쳐지지 않는 사회적 약자의 투쟁은 더더욱 그러하다.

전국 학생정치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서러움은 단지 우리 단체만의 문제도 그리고 내가 느낀 서러움만도 아니다. 한국 사회의 서울 중심적인 구조와 사고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개선이 어려운 문제들이다. 끊임없이 지방은 소외되고,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이 흐름, 다시 한 번 성찰하고 뭔가 변화를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지방대 #대학생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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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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