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체육대회장에서의 물병 투척 사건

민주주의는 성숙한 시민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등록 2012.10.15 10:52수정 2012.10.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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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하면 내게 얼른 떠오르는 상념(想念)은 두 가지이다. 남해 바다에서 있었던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이 그 하나이고,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이 다른 하나이다. 전자는 지금부터 약 400여 년 전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상대로 싸운 해상전에서의 승전보였다. 그러니까 이것은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사건에 속하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후대에 '성웅'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 싸움에서의 승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 한산도 대첩은 김시민 장군의 진주성 싸움,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일컫는다. 물과 한산도 대첩이 내게 쉽게 연상되는 것을 보면 나도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25년이 되어 간다. 내게 긴 기간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같은 또래 친구들에 비하면 그렇게 긴 기간도 아니다. 결혼 30년이 넘어 손주들까지 두고 있는 친구들에 비하면 늦어도 한참 늦다. 늦장가를 간 때문이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우리의 결혼 생활은 그야말로 '알콩달콩'이란 수식어가 늘 붙어 다녔다. 사소한 것으로 사랑하고, 더 작은 것으로 티격태격하면서 25년을 살아왔다. 부부가 싸우고도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의기투합하는 모습에서 옛 속담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것이 우리 부부를 두고 만들어진 속담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속담은 부분적 진실을 담고 있다. 진실은 만인에게 공통으로 적용될 때 생명력을 갖는다. 그렇다면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속담은 우리 부부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부에게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도회지로 이사 온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물을 사 먹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문화적 삶에 대한 혜택에서 소외된 생활을 해 온 것이 큰 이유가 되겠지만 지천으로 늘려 있는 것이 물인데, 물을 사 먹다니! 하는 물의 상품성에 대해 반대하는 마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물은 공기와 같이 나는 공공재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 내게 어느 중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물을 사먹는 날이 온다는 말에 작은 마음의 파동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그 때에도 나는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나 있을 일이지 우리나라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팻트 병에 담긴 물이 '생수'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처음엔 소수가 지금은 국민 대다수가 물을 사 먹는데 익숙해 있다.

하지만 그런 생수 물병이 자기와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에 투척하는 무기가 될 줄은 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제(10월 14일) 서울의 한 운동장에서 이북출신 사람들의 친목 체육대회가 있었던 모양이다. 때가 때인 만큼 여야 대선 주자들이 그곳을 찾았다고 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딘들 가서 인사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이 선거 출마자들의 속성이다. 그것도 다가오는 선거는 대통령 선거이지 않던가! 나는 평소 이북출신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갖고 있었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인데, 고향을 두고도 남북 분단으로 가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곳 출신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혔던 적도 있다.

그런데 어제 그들의 체육대회 행사장은 그런 순수한 감정의 발산장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보수 우익을 자처하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인사할 때는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던 사람들이 야당이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인사할 때는 반대 피켓을 흔들며 야유를 퍼부었다고 한다. 급기야는 문재인 후보에게 생수 물병을 던져 수행원과 한 언론사 기자가 상처를 입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이북 5도민 전체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격이다. 체육대회는 순수해야 하고 친목을 도모하며 사회와 나아가 국가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행사가 되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한 쪽을 지지하고 다른 쪽을 감정적으로 반대하는 행사가 된다면, 그것은 친목을 도모하는 체육대회란 이름을 빌려 정치적 입장을 발산한 한풀이 행사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때이다.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면 모두 적이란 흑백논리는 지난 냉전시대로 족했다. 민주주의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이다. 진보와 보수가 어우러져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숙된 민주국가 시민의 자세이다. 그렇다면 이북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극우의 눈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이남 출신이라고 해서 그 반대 입장에 설 필요가 없다. 어제 이북 5도민 체육대회 행사장에서의 '물병 투척 사건'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마치 제1 공화국 때의 정치 집회 같기도 하고, 군사독재 정권 하의 동원된 반공 궐기대회를 연상하게도 했다. 개인이 살아가는 데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는데, 이것은 개인이 모인 단체도 마찬가지이다. 행사를 축하해주기 위해서 온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고 대해야 한다. 그들의 물병 투척은 그런 예의를 깡그리 무너뜨린 것밖에 안 된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맑고 깨끗해야 한다. 내용이 그렇다면 깨끗함을 지향하는 곳에 사용되는 것이 좋다. 자신들이 반대하는 대선 후보에게 생수 물병을 던지는 것은 깨끗한 물까지 더럽히는 작태이다. 나는 어제의 그 사건이 행사에 참석한 이북 5도민 전체의 의사 표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일부 참석자들이 감정풀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집행부 임원 등이 앞장서 야권 후보들에게 비난성 질문을 해댄 것을 보면 그 행사가 대선을 앞두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행사로 생각하게 만든다. 군사 독재 시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소수가 다수를 작위적으로 끌고 가도 괜찮다고 착각하기 쉽다. 혹시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작용했다면 이북 5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한 다수의 사람들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대선을 앞두고 크고 작은 행사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민감한 시기에 정치성 행사는 지양하되 꼭 열어야 될 행사라면 여야 후보들이 참석할 때 페어 플레이 하라며 함께 격려해 주기를 바란다. 21세기인 지금도 후진국에서는 깡패를 동원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져나가는 미련한 정치인들이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과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후진국이 아니다.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그렇다면 거기에 걸맞는 생각과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어제 있었던 이북 5도민 체육대회 생수 물병 투척 사건은 이런 점에서 보는 이들의 얼굴을 찡그러지게 만들었다.
#이북 5도민 체육대회 #물병 투척 사건 #문재인 #대선 후보 #보수 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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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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