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2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을 밝힌 뒤 질의응답을 위해 기자를 지목하고 있다.
권우성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역사적 사실에 가장 근접한 보고서는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 결과일 것이다. 그 보고서에는 ▲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의 지시에 의해 (김지태씨) 수사가 시작됐음이 중앙정보부 지부장 진술에 의해 확인됐고 ▲ 1962년 6월 20일 김지태씨가 구속 상태서 강압에 의해 작성된 기부승낙서에 서명을 했으나 이마저도 기부의 의혹을 지우기 위해 석방 이후인 6월 30일로 변조됐음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에 의해 확인됐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살고 싶으면 재산을 모두 '헌납'하라는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구체적으로 죄다 나와 있다.
국정원 보고서뿐만 아니라 김지태씨의 차남 김영우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1심 재판부도 5·16 장학회의 '헌납' 과정에 강압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다만 김영우씨가 패소한 것은 공소시효가 소멸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과 법원 판단을 놓고도, 재산을 되찾겠다고 소송을 제기한 유족이 패소했으니 "재산 헌납에 강압이 없었다, 법원이 인정한 셈"이라고 우기는 것은 박근혜 후보가 오만과 독선을 넘어 무지와 편견이 얼마나 가득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인물이 지금 다음 대통령 자리에 가장 가까이 가 있다.
정수장학회와 관련된 김지태씨 가족의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은 동아투위(동아일보사 해직 언론인들 모임) 위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판결 내용과 똑같다.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인정하면서도 공소시효가 소멸했다며 패소 판결을 한 것이다. 국가권력의 범죄행위에 공소시효를 인정한다는 것은 '시간만 끌면 국가권력의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야 어찌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겠는가.
특별법 제정이 절실한 이유
제대로 된 세상이 온다면 당연히 특별법을 제정해 국가권력의 범죄행위에 공소시효를 없애고, 마땅히 그 책임을 묻는 것이 후대를 위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될 터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공소시효' 따위에 갇힌 세상에 살고 있다.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38돌을 맞는 날 아침,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매체에는 38년 전 보였던 '격려광고'가 가득 실렸다.
'언론자유 빼앗아 간 도둑놈을 잡아라' '언론의 자유는 시민의 생명입니다' '유신, 그 야만의 시대를 거부합니다'다시 '격려광고'가 실리고, 이렇듯 유신의 야만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올해 10·24를 맞는 마음은 그만큼 절박하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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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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