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먹는 주먹밥이 '그들을' 살립니다

26일 정리해고-장기투쟁사업장 돕기 위한 '희망 밥 콘서트' 개최

등록 2012.10.25 14:40수정 2012.10.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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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식당 하루 응원노트에 적힌 글. ⓒ 희망식당


"저희 회사도 요즘 구조조정 중이라 참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희망을 놓지 말아요. 우리."

"멀리 포항에서 왔습니다. 희망 든든히 먹고 힘내서 가야지!"
"Re :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친구의 생파(생일파티)를 이곳에서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쌍용차해고자와 가족들, 속히 원하는 소망이 이뤄져서 더불어 웃고 함께 잘사는 세상이 오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노트 네 권이 쌓였다. 하도 뒤적거려 네 모퉁이가 너덜해진 동아리방 '날적이' 같이 낡았다. 7개월 동안 '희망식당 하루'(이하 희망식당)를 찾아온 사람들은 멀리서 온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고 자신의 아픔도 털어놓았다. 친구를 따라서, 남편을 따라서, 또는 혼자, 어떤 날은 퇴근길에, 학교 수업을 마치고, 주말 나들이를 갔다가, 어떤 때는 노동자가, 학생이, 부녀가, 연인이 희망식당을 찾아왔다.

희망식당 벌써 5호점... 수익금 4400여만 원 전액 투쟁노동자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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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식당 하루 응원노트에 적힌 글. ⓒ 희망식당


해고노동자와 투쟁사업장에  수입금 전부를 지원하는 희망식당에는 그동안 5000여 명이 방문했다. 모인 돈만해도 4400여만 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비롯해 총 38곳에 투쟁하는 노동자들 지원했다. 그 사이 지난 3월 11일 서울 상도역에 처음 문은 연 1호점을 시작해 5월 상수역에 2호점, 6월 청주에 3호점, 9월 대전에 4호점이 차례로 생겼다. 다음달 4일에는 대구에 5호점이 문을 열 예정이다.

희망식당 운영원칙 가운데 첫 번째는 해고노동자가 직접 음식을 만든다는 거다. '희망식당 셰프'라고 이름 붙여진 이 자리에서 쌍용차, 콜트콜텍, 유성기업의 해고노동자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대부분 공장 기름밥을 먹던 이들이 이제는 따뜻한 밥을 만든다(관련기사 : 2년반 기다린 판결 10분 만에... "당해보니 그 마음 알겠더라", 다 죽이고 싶었던 1년 "밤엔 아내에게 전화 못한다")


음식을 만드는 일뿐 아니라 서빙과 설거지까지 모두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됐다. 일주일에 하루 문을 여는 희망식당의 일일주인(호스트)를 맡은 사람만 해도 벌써 50여 명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공지영 작가, 김남훈 프로레슬러 등 유명인사들부터 삼성노동조합, 성소수자단체 등 단체들도 일일호스트로 나섰다. 하지만 누구보다 빛났던 호스트는 직장인과 학생, 주부 등 시민들이다.

이들이 만들어낸 감동 스토리가 노트 네 권에 고스란히 담겼다. 희망식당을 찾아온 손님들은 방명록에 응원의 글을 쓰고 트위터 같은 SNS에 '해고는 나쁘다'라는 말을 남기는 게 숙제다. 그 짧은 숙제 하나. '남양주 덕소 닭살부부'는 지난 7월 1일 희망식당에 와서 "저와 우리 아이들, 그리고 미래의 우리 아이들을 위해 당신들의 투쟁이 꼭 승리하길 바랍니다. 당신의 고통은 나의 고통입니다"라고 썼다.

'희망 밥 콘서트', 주먹밥도 먹고 콘서트도 즐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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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식당 하루 응원노트에 적힌 글. ⓒ 희망식당


희망식당은 SNS를 제외하고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개업 7개월이 지난 최근까지도 손님들이 붐빈다. 일일호스트도 몇 주 전에 신청해야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리해고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이다.

보통 희망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해고노동자들을 비롯해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는 뿌듯함,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하는 동질감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식당은 빚진 마음, 원인을 알 수 없는 부채감을 덜어놓고 갈 수 있는 좋은 곳이다. 비록 밥 한 끼지만 해고노동자가 지은 밥을 먹으면서 그들과 연대할 수 있다.

아직까지 희망식당을 방문하지 못하고 '빚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오는 26일 오후 4시 희망식당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개최하는 '희망 밥 콘서트'를 찾아가면 된다. '밥을 구하다 밥이 되어버린 우리 삶에 희망을...밥 한 번 먹자'란 주제로 참가자들이 함께 주먹밥을 나눠 먹는다. 바자회를 시작으로 오후 6시부터는 록밴드 네바다51, 게이트플라워즈, 옐로우몬스터즈, 가수 한동준씨의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행사가 치러지는 대한문 앞에는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이 7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행사 당일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은 단식 17일째를 맞이한다. 곡기를 끊은 사람 앞에서 밥을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 게 조금은 망설여지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김 지부장은 "먹는 사람은 먹어야지, 먹는 것도 싸움"이라며 "우리는 다 같은 길에 있다"고 말했다.(관련기사 : "올해도 희망 안 오면 또 죽을 수 있다")

밥 콘서트에 참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바자회에 물건을 내놓아도 좋고, 그냥 와서 일정액의 밥값을 지불하고 밥만 먹고 가도 된다. 가장 좋은 참여는 사람들과 나눠먹을 주먹밥을 직접 만들어오는 것이다. 재료가 없다면 희망식당(@hopeharu)에 요청하면 지원받을 수 있다. 콘서트가 열리는 날, 록밴드들의 연주에 맞춰 격렬한 헤드뱅잉을 하기 전에 여러 가지 종류의 주먹밥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래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동민씨가 희망식당 노트에 쓴 글이다.

"해고는 배고프다. 해고는 목마르다. 해고는 어둡다. 해고는 비참하다. 그런데 그 해고를 경험하고 세상을 다르게 본다. 연대를 하기 위해 수줍게 내민 손이 얼마나 무거운지, 연대를 위해 어렵게 해준 발걸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연대를 위해 굳게 뭉친 어께들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게 되었다. 해고가 인생을 파괴하고 관계를 단절했지만 연대가 한길로 가는 뚝심과 희망이라는 오솔길을 안내했다. 한두 번의 연대로 실망하지 말자. 그 기나긴 시간동안 고통과 아픔 속에서 버티고 견뎌온 이들이 있으니. 어깨를 마주대고 두 손 꼭 맞잡으며 함께 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해 걸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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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개최되는 '희망 밥 콘서트' ⓒ 최지용


#희망식당 #밥콘서트 #게이트플라워즈 #쌍용차 #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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