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유치하고 시시해... 그런 자를 떠받드나"

[인터뷰] 강연균 화백이 장준하와 박정희를 그리는 까닭

등록 2012.10.28 21:15수정 2012.10.2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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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균 화백이 마무리 작업 중인 <현대사(아스텔, 80F, 2012)>. 두개골이 함몰당한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과 일본군 소위 복장을 한 박정희 대통령이 각각 80호가 넘는 그림으로 재현되고 있다.
강연균 화백이 마무리 작업 중인 <현대사(아스텔, 80F, 2012)>. 두개골이 함몰당한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과 일본군 소위 복장을 한 박정희 대통령이 각각 80호가 넘는 그림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주빈

한국의 대표적인 수채화가인 강연균 화백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 장준하 선생을 그리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일본군 소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창씨개명)와 고 장준하 선생의 함몰된 두개골을 그리고 있다. 강 화백이 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8일 오후 광주 동구 소태동 무등산 자락에 있는 작업실에서 강 화백은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바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림을 찾는 이들이 제법 있는" 한국의 유명한 수채화가다. 또 그는 2회 광주비엔날레를 총관리운영 했고 보관문화훈장을 받은 중견 화가다. 


"지난 8월 중순쯤이었을 거야. 신문에 장준하 선생의 함몰된 두개골이 실렸더라고. 충격적인 사진이었지. 사진을 보자마자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장준하 선생을 그리려면 박정희, 그러니까 다카키 마사오도 함께 그려야 구도가 선명해져. 한 사람은 독립군 장교를 했고 한 사람은 일본군 장교를 했으니까. 그래서 함께 그리게 된 거야."

강 화백이 그리고 있는 작품의 이름은 <현대사(아스텔, 80F, 2012)>. 그는 자신을 "사회의식이 높은 사람도 아니고, 역사의식이 투철한 이도 아닌 그림을 팔아 먹고사는 환쟁이일 뿐"이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림을 통해서 사회적 발언을 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난 보수가 무엇이고 진보가 무엇인지 몰라. 또 좌익인지 우익인지보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옳은가 그른가만 봐. 장준하가 옳은 사람이야, 박정희가 옳은 사람이야? 뻔한 사실이잖아, 독립군 장준하와 일본군 박정희!"

광주에서 나고 자란 강 화백은 여전히 광주와 함께 산다. 4·19 때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강 화백은 그때 잠시나마 사회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 이후로 박정희에 의해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또 그가 유신선포를 통해 종신집권으로 갈 때도 '그런가 보다' 하며 그림만 열심히 그렸다고 한다.

"독립군 장준하와 일본군 박정희... '옳지 않은 것'을 잊지 말자"


 각각 80호가 넘는 대작 <현대사>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강연균 화백. 강 화백은 "자기에 반대한다고 사람을 죽이는 박정희는 시시한 자"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군 소위복을 한 박정희 대통령의 그림에 다카키 마사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을 새겨넣고 있는 강 화백.
각각 80호가 넘는 대작 <현대사>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강연균 화백. 강 화백은 "자기에 반대한다고 사람을 죽이는 박정희는 시시한 자"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군 소위복을 한 박정희 대통령의 그림에 다카키 마사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을 새겨넣고 있는 강 화백. 이주빈

"<겨울공화국>을 쓴 시인 양성우가 친구인데 나보고 '넌 의식이 없는 화가야'라고 그래서 싸웠던 기억이 나. 그런데 광주항쟁을 겪으며 완전히 변했어, 세상을 달리 보게 됐어. 그때 처음으로 정치, 사회, 역사, 사람관계 등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됐지. 우리 전라도 말로 그때 사람이 완전 '배레부렀지'. 그전에는 아주 평범했어."

한번이라도 그의 수채화를 접해본 이라면 고운 사실주의에 절로 탄복하고 만다. 강 화백은 그 부드럽고 연한 색으로 1980년 5월에 학살당한 광주의 피를, 눈물을 그렸다. 그 작품이 바로 1981년 서울 신세계미술관 '구상작가 200호 초대전'에서 발표한 <하늘과 땅 사이1>이다. 미술평론가 윤범모는 이 작품을 일러 "우리시대의 <게르니카>"라 했다.


강 화백은 시인 신경림과 함께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민예총) 공동의장을 4, 5년 동안 역임하기도 하고, 방북했다가 구속된 황석영 작가의 석방운동을 벌이기도 하며 한 시절을 보냈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힘도 없는 환쟁이지만 광주항쟁이 폭도들의 난동으로 몰리고 있을 때 역사의 사실만은 바로 기억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던 시절이었다. 이번에 그린 <현대사> 역시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 잊지 말자"는 염원이 선명하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후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고 민정을 이양하겠다'던 말이 지금도 생생해. 그런데 자기에 반대한다고 사람 죽이고, 고문하고, 감옥 보내고…. 박정희는 시시하고 졸렬하고 유치한 자야.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무슨 영웅처럼 높게 떠받들어, 거 참."

각각 80호가 넘는 강 화백의 <현대사>는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이 작품들은 오는 11월 1일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경남 창원전시회부터 전시된다. 이 전시회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유신선포 40주년을 맞아 주최하고 있는 전국순회 특별전이다. 이 전시회는 <오마이뉴스>가 온라인으로 지상중계하고 있다.

"내 그림은 거기에 걸려 있을 뿐이야. 설명이 없어.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 소설은 작가의 이야기를 강요하지만 그림은 자유야. 나는 다만 보여줄 뿐이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저렇게 극렬한 대비를 이루고 살았구나. 옳은 일을 한 장준하는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독립군의 후손들은 온갖 설움 받으며 살아가고…. 그림을 보라구. 박정희에겐 가슴이 없어. 흰 장갑밖에 없지."
#강연균 #박정희 #박근혜 #장준하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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