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게 살려고 귀농했는데...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귀농에 관한 환상과 진실②] '귀농푸어'가 되어버린 김씨 이야기

등록 2012.11.12 15:59수정 2012.11.1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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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인구가 매년 최고치를 기록중입니다. 2012년 상반기 귀농귀촌인구는 8706가구 1만7745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왜 도시를 떠나 시골로 향하는 것일까요? 귀농귀촌인 절반 이상은 4050세대이지만 2030 세대의 귀농귀촌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생태적 삶'을 살고자 귀농을 결심하는 이들도 많지만, 상당수는 자영업에 실패하거나 명퇴를 당했거나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귀농귀촌의 리얼스토리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개인의 선택 차원을 떠나 뚜렷한 사회현상이 되어버린 귀농귀촌에 대한 실질적인 사회적 뒷받침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왜 귀농하려고 합니까?"


얼마 전, 불교귀농학교 회향식에서 도법스님이 한 말이다. 귀농학교가 시작되던 때부터 귀농에 대한 꿈을 가진 이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스님은 30여 명의 귀농교육생들 앞에서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

누구도 선뜻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야 몇 사람이 왜 귀농을 하려는지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지 않아서, 무한 경쟁하는 자본주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라는 즉답들이 나왔다. 그러자 스님의 즉설이 이어졌다.

"도시에서 행복하지 않는데 농촌으로 귀농한다고 저절로 행복해지거나 경쟁하지 않는 삶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여러분들의 착각입니다."

일순간 또 다른 침묵이 흘렀다.


올해 귀농인구가 사상 최대인 1만 가구를 넘었다고 한다. 농촌인구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귀농했다가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 지인 김선일(43, 가명)씨가 바로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이다.

 귀농에 대한 섣부른 기대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귀농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귀농에 대한 섣부른 기대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귀농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오창균

귀농 2년만에 다시 서울로


김선일씨는 16년 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귀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도법스님의 말씀을 품고 귀농학교에 다니면서 착실히 귀농을 준비했다. 정착할 지역을 찾아다닌 지 몇 년, 드디어 강원도 어느 농촌마을에 폐가를 얻어 아내와 갓 돌이 지난 아들을 데리고 서울을 떠났다. 때는 IMF의 검은 망령이 중산층 아래의 삶들을 파괴하던 1999년, 반지하 전세금 2500만 원이 새 삶을 펼칠 종잣돈이었다.

김씨는 품팔이 농사일과 궂은일도 마다않고 나섰다. 동네사람으로 빨리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농촌의 인심도 각박한 시대를 피할 길은 없었던지 굴러온 돌이 알아서 피해가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1년 뒤 옆 동네로 집을 옮겼다. IMF로 인해 평탄한 삶에서 튕겨져 나온 노숙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벌목하는 일을 하면서 살림살이를 꾸려나갔다. 그러면서 농사지을 땅을 알아보았지만, 때마침 펜션 투기바람이 불어닥쳤다. 전세금 2500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을 만큼 땅 값이 치솟았다. 안정적 수입조차 없어 경제적으로 쪼들렸던 김씨는 정착이 불가능하리라 보고, 미련 없이 짐을 싸서 서울로 돌아왔다. 2년만의 리턴이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서울에는 전세대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농할 때 땅 사려고 가져갔던 반지하 전세금 2500만 원을 그대로 가져왔건만 그 돈으로 전셋집을 구하기란 불가능했다. 선택할 것도 없이 처갓집 방 한 칸을 얻어 다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다행히 전에 다니던 직장에 취직이 되었고, 아내도 보험설계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도시로 다시 돌아온 생활이 행복할 리 없었지만 귀농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기에 1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휴일이면 다시 정착할 귀농지를 찾아서 전국을 누볐다. 한창 귀농 열기가 뜨거웠던 시기라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다양한 지원 사업이 쏟아졌고, 지원금 액수를 놓고 정착지를 결정하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로 귀농인구를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경쟁도 뜨거웠다.

 귀농정착대출금은 집을 짓는데 쓰였다.
귀농정착대출금은 집을 짓는데 쓰였다. 오창균

귀농정착금 받아 2차 귀농을 실행했지만

2002년, 김씨는 1년여 만에 서울생활을 다시 청산하고 두 번째 귀농을 실행했다. 첫 귀농의 경험을 떠올려볼 때, 처음부터 내 땅을 가지고 시작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씨는 아껴둔 전세금 2500만 원으로 산중턱의 비탈진 땅 300여 평을 구입하고 4% 이자의 귀농정착금 4500만 원을 10년 뒤에 갚는 조건으로 대출을 받아서 가족의 보금자리가 되어줄 아담한 집과 농사지을 밭을 개간했다.

귀농을 하게 되면 동네 사람이 빨리 되어야 한다는 첫 귀농지에서의 경험 때문에 여기에서도 온갖 궂은일을 마다않고 찾아다녔다. 조금 손해 보는 일이라고 해도 묵묵히 참아내며, 마을일이라면 '내 일'보다도 먼저 거들고 나섰다.

농사가 점차 손에 익을 무렵에는 여러 귀농인들과 함께 협동 작목반을 만들어 농산물과 발효효소 등을 공동 생산했다. 이를 도시 소비자들과 직거래하거나 장터를 통해 판매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나 작목반도 지자체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사업내용이 많아지고, 작목반의 방향을 놓고 이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김씨는 몇몇 귀농인들과 함께 탈퇴를 하게 됐다.

 수세미 농사를 지어서 발효효소를 만들기도 했었다.
수세미 농사를 지어서 발효효소를 만들기도 했었다. 오창균

독립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한 김씨 부부는 인터넷카페를 통해 알게 된 도시민들과 지인들에게 농산물 직거래를 하게 됐다. 많게는 한 달에 40~50가구에 정기적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는 등 순조롭게 출발했다. 부족한 농산물은 지역의 특산물과 농산물을 받아서 보내기도 하고, 두부와 된장 만들기 같은 체험을 진행하기도 하면서 경제적으로 숨통이 트이는가 싶었다.

그러나 호사다마였다.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김씨가 허가 없이 된장을 판매한다며 군청으로 식품위생법 위반 고발장이 접수됐다. 공무원이 집에 다녀가고 법조항의 압박을 받게 되자 김씨 부부는 허탈감을 넘어 분노했지만, 현실은 가난한 귀농인을 변호해 주지 않았다. 이후 경찰 조사를 거쳐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 후로 직거래는 중단되었다. 이후부터 김씨는 산림벌목을 하는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여 일을 하고 있다.

귀농 성공자보다 '귀농푸어'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귀농 방식은 사람들의 생각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규정할 수 없다. 내 귀농은 계속 현재진행형이다."

김씨에게 자신의 귀농을 성공이나 실패로 규정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10년 전, 귀농할 때 받았던 정착지원금 4500만 원은 다 갚았느냐고 다시 물었다.

"농협에서는 원금상환을 못할 처지에 놓인 농민에게 또 다른 대출상품을 권장한다.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7% 이율로 대출을 받아서 4%로 받은 처음의 대출금을 갚았다. 앞으로도 뾰족한 방법이 없는 한 이자만 갚다가 원금상환일에 또다른 대출을 받아서 갚아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렸다. 신용카드 돌려막기와 다름 없다."

 단순 소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그에게 빚은 큰 짐이다.
단순 소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그에게 빚은 큰 짐이다.오창균

귀농한 지 20년이 넘은 어느 농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억대 수익 올렸다고 언론에 소개되는 농민들이 실상은 빚의 덫에 걸려있는 경우가 많다고. 늘어가는 빚 때문에 한탕주의 농사가 아니면 헤어나올 수 없어 도박 같은 농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 농부 또한 현재 가진 것을 모두 털어내야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했다.

충분한 준비 없이 귀농을 한다거나 정착지원금 대출을 받았다가는 '귀농푸어'가 될 수도 있다. 김씨는 자신의 경험과 그동안 겪어본 귀농인들을 보면서 '빚' 없는 귀농을 하라고 충고한다. 도법스님은 "물질에 대한 욕망과 도시적인 소비방식을 버리는 내면의 깨달음이 먼저 선행되어야만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귀농하려고 합니까?"
#귀농 #정착지원금 #농사 #농촌 #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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