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 가야 평화로워지는 건 아니다

지리산 인문학 여행에서 강의한 이계삼 선생님

등록 2012.11.01 20:36수정 2012.11.0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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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인문학 여행에서 강의하는 이계삼 선생님 지리산 인문학 여행에서 이계삼 선생님은 우리 시대의 평화와 교육을 바라보는 두가지 키워드로 '동시대성'과 '지금 이대로의 평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동시대성은 지금 학생들이 느끼는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수 있다는 개념, 지금 이대로의 평화는 밀양 송전탑 투쟁 과정에서 보이는 할머니들의 바램이었다. ⓒ 김재형


지리산 인문학 여행의 세 번째 강사로 전 밀양 밀성고등학교 교사였던 이계삼 선생님이 초대되었다. 올해 초 학교에서 사직한 이후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하시는 것을 여러 언론 기사를 통해 보고 난 뒤라, 이번 강의 주제인 '교육'을 평화로운 삶과 어떻게 이어서 생각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관심이었다. 이 강의는 지난달 25일 있었다.


이계삼 선생님은 교사로서 살았던 삶에 대한 자기 반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다. 8년 전 일인데도 그 이야기를 하니까 바로 한두 해 전의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에 떠오르는 사건이 '밀양 성폭행 사건'이었다.

2004년 밀양에서 44명의 중고등 연합 폭력 서클 학생들이 두 여학생을 성폭행한 이 사건은 사건 당시에도 충격이었지만 그 여파가 지금도 이어지는 사건이다. 당시 구속된 5명의 학생 중 한 명의 학생을 가르쳤던 담임 교사로서 그가 느끼는 반성은, 학생의 교사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폭력을 대응하는 방식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 생활을 하면서 강자의 폭력에 비굴하게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걸 벗어날려면 무슨 고통을 겪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참는 것이다. 그러다 강자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될 경우,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을 비난받는 강자에게 과거의 경험까지 더해서 보복하는 것이다. 흔히 이 과정에서 괴물이 만들어진다.

밀양 성폭행 사건은 사건의 내용보다 더 확대되어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고, 가해 학생들은 가혹하게 다루어졌다. 사회 여론에 의해 뭇매를 맞고 사실상 매장당해서 폭력 조직에서 활동하는 것 외에는 다른 삶이 불가능할 정도였던 학생이 선생님께 사죄하러 학교에 왔다. 그 이후에도 폭력 조직이 아닌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사는 걸 보며 '우리 교육은 이 아이에게 해 준 게 없다. 오히려 사회적 여론에 의해 뭇매를 맞고 있을 때 교사들은 피하기만 했고, 오히려 가혹하게 다루는 데 협조하기 까지 한 일'에 대해 반성한다.

교육과 종교는 내면에 비슷한 속성을 가져야 한다. 둘 다 바른 삶을 살도록 권면하되, 혹시라도 잘못을 저지를 경우 그의 죄는 미워할 지라도 인간을 미워하지는 않아야 하고 그의 개선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교는 종교적 성품을 가진 역할을 사실상 포기했고, 상처입은 아이들 대할 때 경찰의 기능과 심리치료의 상담 기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학교는 자본주의 사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자본주의가 성장할 때 학교는 자본주의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공급하는 효율적인 역할을 맡았고, 학교 교육은 물질적 이익을 보장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주의가 사실상 끝난 시대, 자본주의 최전선에서 신자유주의 가치를 외치던 사람들도 자본주의 모순을 더 이상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대이다.

지금은 Capitalism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Debtism의 자본주의 즉, 빚으로 빚을 메우는 사회이고 이것은 폭탄 돌리기처럼 언젠가는 터진다. 그리고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당연히 학교 교육의 몰락도 눈 앞에 있고, 학교에서 상위 2-3% 안에 들어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졸업하고 밀양에서 만나는 학생 중에 직업을 가진 청년이 거의 없고, 직업이 있으면 비정규직이다.


이계삼 선생님은 이런 상황에서 급진적인 관점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일단 몸을 교육에 도입하자. 학생들에게 컴퓨터 대신 학교에 작은 트랙터를 사주고 논밭을 관리하게 하는 것. 현재 학생들은 너무 오랜 시간 학교 책상에 앉아 있고, 이 고통을 견디기 위한 놀이로서 친구를 괴롭히고 있다. 왕따, 청소년 자살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단 학교에 있는 절대 시간을 줄이자. 오후 3시 이후에는 수업없이 자유롭게 시간을 쓰게 해야 한다.

좋은 교육을 할 때 흔히 예산을 먼저 생각하는데,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역 사회 교육 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학교에 가능한 예산을 적게 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학교 교사들은 보충 수업 더해서 초과 수당 가져가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교사들 급여가 보통 많은 게 아닌데 거기에 돈을 더 주고 학생들을 더 괴롭히는 게 가능한 이유는 돈이 있기 때문이다.

보충 수업 예산이 없으면 누구 하나 공부 못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도 남아서 지도해 줄 교사는 없다. 교육적 열정이 아니라 돈 때문에 하는 수업을 정규 수업 시간 지나서 학생들이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지금 학교는 예산이 없어서 좋은 교육을 못하는게 아니라 수업할 예산이 너무 많아서 학생들이 고통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평화 교육은 오랜 나의 관심이었다. 평화 교육의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분쟁 현장에서 사람들이 바라는 평화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밀양 송전탑 투쟁 현장에도 여러 단체에서 학생들과 함께 오는 일이 많다. 그 학생들은 할머니들의 꿋꿋하게 버티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평화를 바라보는 눈, 교육을 바라보는 눈에는 공통된 것이 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평화,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지금 이대로' 살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지금 이대로 이웃과 살아가고, 지금 이대로 친구들과 우정을 나눌 수 있으면 평화이다. '더 편리해져야, 더 좋은 대학을 가야' 평화로워지거나 우수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시대는 국가가 할 수 있는 교육적 역할이 없다. 이계삼 선생님은 그래도 오래 학교 현장에 남아서 최선을 다했던 분이다. 몇몇 현직 교사 선생님들이 이계삼 선생님이 학교에서 사직한 것에 대해 못내 아쉬워하셨지만, 이제는 더 하는 게 부끄러운 일인 것 같다. 학교에는 경찰과 치유 상담사 정도가 필요하지 교사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교육 불가능의 시대'이다.
#이계삼 #지리산 인문학 여행 #평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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