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인간이 누릴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되지 않았다
김지현
내가 일했던 편의점은 다른 동종·유사업체 점포와 비교해 그 규모가 크고 청결했으며 점주와 동료 알바생 모두 매우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난감하고 괴로웠던' 상황들이 악덕 점주, 동료간 불화 등 개별적 사유가 아닌 해당업계가 고수하고 있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일하는 내내 경험했던 일 중 첫 번째로 난감하고 괴로웠던 상황은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은 말그대로 점심 밥을 먹고, 오후 업무에 돌입하기 전 적당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상시 손님을 맞아야 하는 편의점 특성상 모든 직원이 한번에 자리를 비울 순 없다. 그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문제는 교대로 한 명씩, 매장 내 주로 물품 보관과 발주 업무를 보는 사무실에서(한 사람 겨우 운신할 만한 크기), 오로지 식사만을 위한 단 10분도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 근무할 당시 원래 두 명이던 알바생이 본인 한 명으로 준 탓도 있었지만, 다시 한 명이 충원되고도 손님이 밀려들면 '태평스레' 밥을 먹을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손님이 없는 틈을 타 계산대에 서서 간편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삼각김밥이나 빵류가 주메뉴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손님이 들어오면 식사를 중단해야 했다. 무엇보다 음식을 입 안에 넣고 타인과 눈이 마주치면 그것이 무척 계면쩍었는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자존감마저 상했다.
두 번째 난감·괴로웠던 상황은 화장실을 갈 때였다. 가끔 "화장실 좀 이용해도 되겠냐"라고 묻는 손님들에 "없습니다"라고 답하면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매장 내엔 정말 화장실이 없었다. 그래서 꼭 볼 일을 보고 싶을 땐 바로 옆 건물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내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했다. 하지만 그것도 7시간 근무 내 두 번 가기가 눈치 보였다.
역시 언제 올지 모를 손님이 가장 큰 이유였고, 해당 커피점 직원들 보기가 불편해서였다. 게다가 점주에게 용변을 보러 갈 때마다 허락을 구하는 상황은 어떻게 생각해도 비상식적이었다. 여기에 점주가 밤을 새고 정오 무렵 퇴근하면, 혼자서 편의점을 지켜야하기에 그때부터 두어 시간은 아예 화장실을 갈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힘겨웠던 것은 다리가 아파도 앉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한 명의 근로자가 성실하게 업무하는 가운데 최소한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일, 그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도리 아닐까.
7시간 동안 근무하면서도 점주의 허락으로 손님이 없을 때면 사탕통 두 개를 겹쳐 수시로 앉을 수 있었지만(마음 좋은 점주마저도 의자를 두자는 의견에는 끝내 난색을 표했다), 퇴근 후에 잠을 잘 때면 무릎 앞뒤쪽 근육이 쑤시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본사 직원이 손님으로 위장... 누구를 위한 암행점검? 편의점 '속사정' 중에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알바 시작 후 한달 만에 알게 된 본사의 '암행점검' 시스템이었다. 어느날 한 주에 한 번씩 오는 본사 직원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모니터링"을 했는데 우리 매장이 꼴등했다는 것이었다.
들어보니 최소 한 달에 한 번 꼴로 본사 직원 한 명이 손님으로 가장, 예고없이 매장을 방문해 물품 진열과 위생 상태, 특히 서비스 친절도 등을 평가해서 점수를 알려준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의 경우 멤버십(각종 할인·적립) 카드 소지 여부를 묻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나갈 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게 감점 이유라고 했다.
처음에는 당혹스럽고 점주에게 미안하였지만 곧 억울해졌다. 감점 사유가 된 '서비스 규칙'이라니... 계단대 한 쪽에는 손님을 맞았을 때 해야하는 '6가지 접객용어'라는 것이 있다.
손님이 처음 들어올 때 "어서오세요", 계산대에 섰을 때 "안녕하세요, 할인·적립카드 있으세요?", "계산 금액과 받은 금액, 거스름돈 말하기" 등등에 끝으로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까지가 그것이다. 이 멘트는 손님에 따라서 또 그때그때 상황따라 유용하게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딱 봐도 바쁜 손님에게 이 여섯 가지 멘트를 다 하는 건 되레 당사자를 성가시게 한다. 또 단골이라 현금 영수증은 늘 하거나 하지 않음을 알고 있거나, 경험상 나이 지긋한 특히 남자 손님들은 멤버십 카드를 갖고 있지도, 갖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또 손님이 너무 많으면 일일이 그 말을 다 하기가 힘들 뿐더러 되레 '시끄러울' 정도다.
어쩌다 한 번 와서 앞뒤없이, 평가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 결과에 따라 해외여행이나 도서상품권 등 포상도 주어진다고 했다. 이 사실을 알려준 본사 직원에 "이렇게 하는 건 너무 형식적이지 않느냐" 했더니 "그런 불만들이 많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을'도 사람, '갑'도 사람... 동등한 존중이 필요여기까지가 지난 두 달여간 편의점에서 알바한 내 체험기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조금은 면목이 없었다. '고작 그만한 일을 하고선 무슨 불만이'라고 할 지 모른다. 그것은 내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을 읽을 때 느꼈던 마음과 비슷한 것일 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작가로 성공한 상류층 바버라가 한 달(심지어 한 달!) 간 가정 청소부와 대형 할인마트 알바 등을 경험하며 블루칼라의 현실을 고발한 책을 보며 왕자가 재미로 거지 행세를 해보는 듯한, 어쩔 수 없는 괴리감에 대한 '재수없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책은 미국사회에 꽤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실제 여러 블루칼라 노동자의 응원도 받았다. 내가 이 기사를 쓴 이유도 이 일을 하기 전에 모르거나 무심히 넘겼던 손님으로서의 무례함을 자성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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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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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싸고, 앉을 수도 없다... 누구를 위한 알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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