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같은 내집' 가슴 벅찼지만... 5년째 짓고 있어요

[귀농에 관한 환상과 진실⑥] 귀촌 7년차가 말하는 적응 노하우

등록 2012.11.29 12:08수정 2012.12.2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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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인구가 매년 최고치를 기록중입니다. 2012년 상반기 귀농귀촌인구는 8706가구 1만7745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왜 도시를 떠나 시골로 향하는 것일까요? 귀농귀촌인 절반 이상은 4050세대이지만 2030 세대의 귀농귀촌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생태적 삶'을 살고자 귀농을 결심하는 이들도 많지만, 상당수는 자영업에 실패하거나 명퇴를 당했거나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귀농귀촌의 리얼스토리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개인의 선택 차원을 떠나 뚜렷한 사회현상이 되어버린 귀농귀촌에 대한 실질적인 사회적 뒷받침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아침마다 잠을 깨우는 지저귐이 귀에서 머리로 전해지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새들은 용케도 자신들이 머무는 곳을 찾는다. 제초제와 살충제로부터 자유로운, 먹이가 풍부한 우리 집 앞의 풀밭은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그 덕택에 아침 동이 틀 무렵부터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새들이 자명종을 대신한다.


"새소리 들었어? 너무 예쁘지 않아?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본 것 같아."

아침 환상곡. 자연속 도시촌놈들이 처음 느끼는 향수랄까.

이곳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지 2~3년 됐을 때 새소리의 전율에 잠을 깼다. 그런데 그 느낌도 점차 무뎌진다. 요즘은 새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작년부터 키우기 시작한 고양이 때문인가(고양이는 때로 새도 잡는다). 아니면 시골생활 7년, 호기심이 무뎌져서일까. 이젠 더이상 '시골'이 특별하지 않다.

학생 때는 방학, 직장생활 때는 휴가를 이용해 바다와 산으로 향하면서 느꼈던 해방감. "공기부터 다르다"는 느낌을 만끽하며 짧은 시간을 아쉬워했던 그 시간이 아련하다. 7년 전부터 오늘까지 매일 휴가가던 곳에서 살았더니, 이젠 '휴가'나 '출장' 등의 이름으로 다른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이미 도시에서 살던 '난' 변했다. 치유되었거나 익숙해졌다.

 귀농운동본부 텃밭(자료사진)
귀농운동본부 텃밭(자료사진) 김병기

나는 이제 도시에서 살 수 없다


나는 이제 도시에서는 살 수 없다. 정체된 차량 속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일이나 푸른 숲도 보기 힘든 콘크리트와 금속, 유리로 둘러싸인 풍경, 신호 아래 길게 줄 선 자동차 사이에 끼어 있는 일도 견디기 어렵다. 출퇴근시간에 사람에 둘러싸여 어두운 터널을 이동하는 지하철, 매일 저녁이면 시커멓게 때가 앉은 소매도 견디기 힘들다.

그때가 그랬다. 7년 전. '한 번 도시를 벗어나 볼까'하고 간절히 생각했다. 그러려면 준비를 해야했다. 인터넷으로 관련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공부를 하고 모임이나 교육 등에도 참석해 정보를 나누었다.


도서관에 붙박이하며 <귀농통문>, <민들레>같은 잡지를 섭렵했다. 부안에서 공동체와 시골 출판사를 운영하는 윤구병씨가 쓴 <잡초는 없다>,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 등을 읽으며 감탄하기도 했다. 지금 그 시절을 떠올리면 쑥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 나이 30대. 급여가 급속히 오른다면 재테크 등을 통해 운 좋게 목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경쟁을 통해 누군가를 누르고 위로 오르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흔히 '사업적 수완'을 발휘하는 것은 내 성격상 불가능했다. 그렇게 나의 삶을 "사는대로 생각하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본래 '한 번 부딪쳐보자' 스타일은 아니다. 신중하게 재고 또 재고 되도록 보수적인 결정을 내려 실천하는 것이 나였다.

생각보다 삶의 전환은 쉽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후배가 자기 어머님 집이 비었다며 가서 그냥 살라고 한 것이다. 오래된 한옥에 벽돌을 덧대고 알루미늄새시를 입혀 보완한 집이었다. 일 년간 살았다. 너른 들에는 때때로 제초제를 뒤집어쓴 붉은 풀밭만 눈에 띄었다. 반경 30킬로미터 내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와 이웃한 냇가는 원래 내가 생각한 '시골 살이'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사는 곳을 옮겨야 했다. 전국을 다니며 찾았다. 산골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착을 위해 땅값이 싼 곳으로 골랐다. 지금 전라북도 산골 진안으로 옮긴 것은 만족할 만한 선택이었다. 대부분 험준한 산지로 이루어진 고원지대로 개발의 영향을 덜 받아 산림이 풍부하고 물도 깨끗했다.

공기의 신선함이 좋았고 공장이나 산업단지도 거의 없는 곳이었다. 정착한 마을의 경우 축사도 없는 곳이었다. 게다가 귀농귀촌 연착륙을 위한 마을간사제도(마을 간사가 귀농귀촌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개발, 적용시키는 것)가 막 시작되어 그곳 마을과 주민과 교류하면서 정착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매일 마을을 어슬렁거리면서 주민을 만나고 어디서 차를 권하거나 술을 권하면 마다않고 받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의적이긴 해도 긴 시간을 할애하여 나와 이야기 나누어줄 이들은 정해져 있었다. 이미 나보다 몇 년 전, 혹은 십년 전에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내려와 터전을 꾸미며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위로가 현실을 가리기도 했다.

그냥 흘러가는 구름마냥 사람 만나 이야기 나누며 느리고 천천히 어슬렁거리는 일이 지속되었다. '저 놈 여기 와서 뭐하는 거여' '마당에 풀 좀 봐' '개는 먹지도 않을 것 같은데 세 마리씩이나 키우고' 등의 말이 돌아 내 귀로 들어올 때 즈음 마을 간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림 같은 집짓기?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귀촌을 결심하고 도시를 떠난 뒤 2년 만에 꿈을 이룰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뭐한 김에 쉬어가자고 '저 푸른 초원'은 아니지만 밭을 농지 전용해 '그림 같은 집'을 짓겠다고 말이다. 물론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부모님께서 결혼하면 도시에 아파트 전세라도 얻어 주려고 모아놓은 돈을 받아다가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집짓기. 5년 만에 고백하건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수없이 공간에 관한 고민을 해야 하고 능률과 조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살면서 후회가 쌓이기 마련이다. 재료를 무엇으로 하느냐부터 시작해 벽 두께며 화장실과 창의 위치, 크기, 전등의 종류와 콘센트 개수 등을 고민하지 않으면 살면서 끊임없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도시생활 당시 꿈의 공간으로 여겼던 한옥을 짓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가 무리였다. 돈이 없어 벽이며 바닥이며 전기, 설비 등을 공부해가며 혼자서 다 했다. 완공을 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내부의 마감은 엉성했고 공간도 나누지 못했다. 외부 벽은 3년 만에 미장을 마쳤지만 기단과 조경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난, 30킬로미터 떨어진 직장을 매일 출퇴근한다. 그러다보니 '그림같은 집'은 어디로 가고 "그냥 바람만 막아주면 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집을 지을 당시, 무려 6개월 동안 건축노동자가 되어 새벽밥 먹고 현장 나와 일하고 저녁 먹으러 들어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터를 다진 지 일년 만에 입주했다.

 계량기 한쪽을 분리하고 상수도가 들어오는 곳으로 증기호스를 삽입한다. 물이 얼지 않았다면 고압의 상수가 흐를 수 있으니 조심.
계량기 한쪽을 분리하고 상수도가 들어오는 곳으로 증기호스를 삽입한다. 물이 얼지 않았다면 고압의 상수가 흐를 수 있으니 조심.임준연

집을 짓고 사는  일은 아파트에서 사는 것과는 달리 불편함이 따른다. 보일러 운영과 기본적인 정비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겨울이면 얼어 터질지 모르는 상수도 관리도 필수적이다. 매번 이웃이나 전문가의 손을 빌리기 힘들고 수리 비용도 만만치 않다. 흙으로 만든 집의 벽과 바닥은 들쥐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매년 겨울이면 정비와 관리, 경계가 필요하다.

집 주변을 가꾸는 것도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보이게 좋은 정원을 가꾸는 일은 사철, 매일 둘러보고 손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움직이는 것이 싫다면 시골살이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겨울이 왔다. 일거리가 늘었다. 높은 천정과 얇은 벽, 나무문은 외기를 그대로 집안으로 들여 훈훈함을 느끼기 어렵다. 기름 값이 올라 보일러로 훈훈함을 주기는 힘들기에 거금을 주고 벽난로를 구입해 설치했다. 귀촌하고 는 것은 도끼질이다. 이웃의 힘과 또 그 이웃의 산의 나무를 트럭에 싣고 와서 전기톱으로 잘라 토막을 내고 타기 좋게 쪼개야 하는 일은 겨울의 주된 일과다.

엊그제도 오랜만에 반나절 도끼질로 몸살이 났다. 나무를 자르고 옮기고, 쌓는 일들은 몸에 익지 않으면 힘이 배로 든다. 팔, 다리, 어깨, 허리 근육을 단련시키고 익숙해져야 좀 나아질 수 있는 것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겨울이 휴가다.

그럼에도 불편함의 기쁨을 기꺼이 즐기는 이들은 늘고 있다. 역시 자연과 가까워져서 얻는 기쁨이 크기 때문이다. 매해 같지만 조금씩 다른 농촌의 풍광은 내가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산과 들에 펼쳐지는 숲의 변화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공감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만들어준다.

지금은 계절의 변화를 따뜻함, 차가움 등의 감각으로만 느끼는 게 아니다. 집 앞의 느티나무가 싹을 틔우고 잎과 가지를 펼치는 매일이 다르다. 그곳에서 같이 사는 벌레들이 변해 나비나 나방으로 날아다니는 모습 속에서 세상의 조화로움을 배운다. 아침 구름과 해의 위치를 파악하고 저녁이면 변화하는 별들의 위치와 매일 변하는 달의 모습도 도시의 삶에선 알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웃집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면 서리가 내리는 가을을 넘어 겨울로 들어서고 있음을 깨닫는다. 도로마다 널어놓은 나락이나 콩, 들깨 등을 타작하는 늙은 농부의 모습에 눈물짓게 된다. 도심의 후미진 곳과 어두운 곳을 바라보는 내모습도 이랬을까. 사람 많고 활기찬 도시를 떠나 차도 인적도 드문 촌에서의 생활은 인간 본연의 감각을 깨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귀농귀촌 #귀농의낭만 #시골생활의 현실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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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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