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걸어도 좋은 길, 바로 여깁니다

영남알프스 최고봉 가지산 숲길 걸으며

등록 2012.11.14 17:10수정 2012.11.1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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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 낙엽 까린 숲길 걸으며...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이명화


10일(토) 언양 가지산의 늦가을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아침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언양 석남터널 앞에서 가지산으로 가는 오름길로 들어섰다. 10명의 정예회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긴 종대로 처음부터 차고 오르는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불과 한 주 전에 남편과 둘이서 가지산의 가을을 만나러 왔었지만, 석남사 앞에서 길을 오르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 힘만 뺐고 초행길이라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쌀바위까지만 갔다가 가지산 정상을 멀리서 바라만 보고 돌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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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 잎을 내려놓은 나무들... ⓒ 이명화


이번엔 일행들과 함께 간 가지산은 조금 수월한 길인 석남터널 앞에서 올라갔다. 석남터널 앞에서 가지산을 만나러 가는 길은 오랜 만이지만 그래도 익숙한 길이다. 어디쯤 가면 무엇이 나오는지 알고 길을 가늠하면서 갈 수 있는 길이라 수월하다. 지난 주에 너무 힘든 산행을 해서인지 오늘은 몸도 마음도 가뿐하고 가벼웠다. 높은 오름길도 산책길인양 가뿐하다.

영남알프스 산의 맏형인 가지산(1240m)은 신불산, 영축산, 재약산, 천황산 등 영남알프스군 가운데 가장 우뚝하다. 언제 만나도 좋고 또한 돌아서면 다시 보고 싶은 산들 가운데 영남알프스가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와 울산시 경북 청도군 도계에 걸쳐 있는 가지산은 울산쪽인 석남사에서 올라가는 길과 밀양 산내면에서 올라가는 길 등이 있다.

겨울 채비하고 있는 가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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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 중봉 지나 가지산 정상 가던 길에... ⓒ 이명화


가지산은 어느새 겨울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산 허리까지는 단풍빛이 절정을 이루고 있지만 그 위로는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드러낸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발밑에는 낙엽이 수북수북 쌓여 깔려 있고, 헐벗은 먼 산빛은 옅은 안개처럼 아련했다. 눈이라도 내린다면 나뭇가지들에 눈꽃이 하얗게 피고 아름답겠다.

가을 단풍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타고 내려간다. 불꽃으로 타오르는 단풍이 활활 불 지피며 산등성이를 타고 밑으로 번져 내려가면 높은 꼭대기에는 또 불꽃이 타고 난 뒤에 재를 남기듯 잎은 다 떨어지고 앙상한 나목들로 선다. 아래로 타내려 온 단풍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며 단풍 빛이 절정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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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 ⓒ 이명화


날은 잔뜩 흐리고 바람은 거칠게 분다. 한참동안 오르막 길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나무들은 앙상하게 벗은 몸이다. 어느덧 나무들은 잎을 내려놓고, 겨울을 나기 위해 몸을 스스로 닫고 있었다. 전과 달라진 점도 눈에 많이 띄었다. 능선길 중간쯤에 있던 가지산 석남대피소는 조금 더 떨어진 숲 속에 아늑히 자리 잡고 있고 그 앞에 공터에 나무의자와 탁자를 내놓아 쉬어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런가하면 전에 없던 나무계단 길도 바로 앞에 있는 가파른 길에 만들어져 있다.

높고 먼 산길이지만, 일행들은 어느 누구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고 오늘 여기 오지 않았다면 어쩔뻔 했나 하는 얼굴이다. 가을은 깊도록 깊어 그 끝에 서 있다. 산길은 온통 마른 낙엽이 깔려 있어 우리 걸음을 사색으로 이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올랐는지 밟히고 밟힌 낙엽은 바스락거리는 그 스산한 소리마저 나지 않는다. 가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오늘 이 산에 가득하다.

구름 속에 숨어있던 햇살, 온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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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내려와 서북 능선길을 가며... ⓒ 이명화


낙엽 깔린 숲길 걷다가 중봉에 당도했다. 중봉에서는 가지산 정상이 까마득히 높아 보이지만 이젠 가지산 정상을 마주 보며 걷는다. 중봉에서 다시 차고 오르는 오름길이 진행된다. 이 길 끝에 가지산 정상이 우뚝하다. 어찌된 일인지 제법 높은 경사진 오름길도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고 땀도 없이 가지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온 몸의 세포들이 즐거워하는 것 같다. 온 몸과 마음에 남아있던 노폐물들도 다 빠져나간 것처럼 몸과 마음이 가볍고 상쾌했다.

가지산 정상에 당도하자 온 산이 두루 조망되었다. 가지산 정상은 바람이 심하게 불고 하늘도 흐려서 더 춥게 느껴져 오래 서 있을 수가 없다. 인증샷을 날리고 우리는 가지산 정상 바로 아래 있는 대피소 쪽으로 내려가 바람이 들지 않는 숲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구름 속에 숨어 있던 햇살이 잠시 나올 때면 온기가 느껴졌다. 가져온 자리를 깔고 동그랗게 모여앉아 점심을 먹었다. 꿀보다 더 단 점심이다. 하지만 이젠 뜨거운 국물이 절실한 때임을 실감했다. 다음 산행에는 사발면이라도 하나 있어야 할 것 같다. 오래 앉아 있고 싶지만 차가운 바람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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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 능선길에서 일행들과 함께...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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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 능선길에서... ⓒ 이명화


이제 우리가 온 길은 등 뒤에 두고, 앞에 내다뵈는 서북 능선 길 따라 걷는다. 이 길은 언제 걸어도 좋다. 가지산에 올라와서 이 길을 걸어보지 않으면 어쩐지 허전해서 꼭 이 길을 걷곤했기에 일행들에게도 이 길로 하산하자고 제안했다. 능선 길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듯 우리 일행들만 내내 걸어서 좋았다. 마른 풀잎을 흔드는 바람의 표정을 읽으며 걷는 능선 길, 메마른 풀들이 스산한 소리를 내며 바람에 응답하고 있다. 우리는 바람의 풍경, 바람의 표정을 나부끼는 메마른 풀들에서 읽으며 걸었다.

꽤 긴 능선길이지만 열린 하늘 아래 주변 산새가 두루 조망되는 탁 트인 길이라 경쾌한 걸음으로 걸었다. 낙엽 깔린 작은 오솔길을 걸을 땐 보폭을 작게하며 한 걸음씩 걸음을 아끼듯 걸었다. 대자연의 품안에 안겨 걸으며 마음도 몸도 맑아지고, 순해지는 것을 느꼈다. 능선 길 끝에서 아랫재와 백운산 갈림길을 만났다. 밑으로 곧장 꺾어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 중간쯤에서 다시 갈림길이 나왔다. 백운산으로 가는 오른쪽 길과 삼양교가 나오는 갈림길이다. 우리는 삼양교 쪽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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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한 때...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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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타오르다... ⓒ 이명화


계곡 쪽으로 내려갈수록 위쪽에서 보지 못했던 고운 단풍에 모두들 탄성을 내질렀다. 단풍은 자기가 버려야 할 것과 가야할 때를 알고 저렇게 서러운 핏빛으로 타오르는 걸까. 제 생의 끝을 알고 불꽃으로 짧은 목숨을 다해 저토록 황홀하게 타오르는 걸까. 나무 가지 끝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단풍을 보며 일행들은 그 황홀한 빛에 황홀해 했다.

한편으로는 발밑에 깔린 메마른 낙엽을 밟으며 숙연해졌다. 가을의 절정은 겨울을 예고하고 겨울이면 한해의 끝을 내다보게 된다. 이렇게 소복소복 쌓인 낙엽 깔린 숲길 걸으면 누구라도 시인이 된다. 낙엽 밟고 걷는 숲에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가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밟으며 조용히 소리 내어 읊어 보며 걷는다.

낙엽 밟는 소리, 당신은 좋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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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길 걸으며...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이명화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구르몽의 시)

삼양교 앞에 도착했다. 마주 보는 얼음골 쪽 산빛은 단풍들어 온 산이 환했다. 높은 곳은 불꽃이 다 타고 남긴 재처럼 나무들은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나무들이 모여 안개처럼 자욱한 빛을 띠고 있는데 산허리 아래에는 아직 타오르다 만 듯, 아직 못다 한 듯 불꽃처럼 노랗게 빨갛게 한껏 단풍불 지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온종일 걸었지만 몸도 마음도 상쾌하고 가벼웠다.
덧붙이는 글 산행수첩

1. 일시: 2012. 11. 10(토) 흐리고 바람
2. 산행: 부산 포도원교회 등산선교회 번개산행, 10명
3. 산행시간: 6시간 10분
4. 산행기점: 석남터널 앞
5. 진행: 석남터널(10;20)-능선길(10;40)-사거리(살티마을.밀양/10;50)-삼거리(11;00)
-가지산 석남재 대피소(11;20)-가지산 중봉(12;10)-삼거리;호박소계곡.안부/ 12:25)
-가지산 정상(12;45)-점심식사 후 하산(1;45)-서북 능선길 전망바위(2;35)-아랫재.백운산 갈림길(2;45)
-사거리(3;25)-묘향암터(3;45)-구룡소폭포(4;00)-삼거리(화장실)(4;15)-삼양교(4;30)

※ 부산 포도원교회(9;05)-석남터널(10:10)
#가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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