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 (자료사진)
유성호
대법원의 선고는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물론 이 사건이 2008년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만 본다면 다급하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 힘든 면도 있다. 그러나, 2심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선고를 미뤘던 대법원이 대통령 선거와 서울교육감 선거를 불과 20일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선고일을 잡고 유죄를 확정해 버린 것에 대해서 선거 개입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의 주심판사가 촛불시위로 기소된 국민들에게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 하급심재판에 개입한 의혹으로 퇴진 요구에 직면했던 신영철 대법관이라는 점에서 의심은 더 커지고 있다.
현재 이 사건과 연관된 위헌법률 헌법소원 또는 위헌법률 재청이 헌법재판소에 제기되어 있는 상태이다. 교원의 정당 가입과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정당법과 국가공무원법, 그리고 교원의 정치자금 후원과 후원회 가입을 금지한 정치자금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대해서는 위헌법률 헌법소원이 청구되어 있으며, 또한 교원노조의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교원노조법에 대해서는 법원이 직접 위헌법률 재청을 헌법재판소에 신청하여 심리가 진행 중이다.
이번 주경복 사건은 위에서 제기된 관련 법률들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법원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도 전에 또 다시 전격적으로 선고를 해버렸다. 이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도 전에 대법원이 먼저 선고를 해버렸다는 점에서 얼마 전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사후매수죄 판결과 비슷하다.
문제가 되는 결정은 또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6월 공포한 '서울특별시 교권보호와 교육활동 지원에 관한 조례안(교권조례)'에 대해 대법원이 지난 15일 집행정지 결정을 내렸다. 해당 교권조례는 교원에게 노조·교원단체 활동권과 학생평가권 등을 보장해야 하고 교육감과 학교장은 교권침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권조례에 대해 진보교육단체들은 환영했으나 교과부와 보수 교육단체들은 조례에 반대했고, 교과부는 지난 7월 '교권조례를 만든 것은 부당하다'며 대법원에 무효확인 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대법원이 교과부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더욱이 이 결정 역시 신영철 대법관이 주심으로 있는 대법원2부에서 결정됐다.
현재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서울교육청의 교사특별채용 직권 취소, 경기교육청의 교사 징계 직권 취소, 전북교육청의 자체 교원평가시행계획 직권 취소 등의 사건에 대한 대법원 소송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것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어떤 결정도 하지 않은 대법원이 갑자기 이후에 제기된 사건에 대해 먼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전북의 교원평가 시행계획 직권취소는 2011년 6월, 경기도의 교사징계 직권 취소 건은 2011년 7월에 대법원에 소가 제기되었고,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2012년 1월, 교사특별임용 취소 건이 3월이라는 점에서 왜 대법원이 나중 사건에 대해 먼저 선고를 한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판결을 미루고 있는 대법원이 왜 갑자기 교권조례 건만 효력정지 결정을 내리고, 주경복 사건만 선고 기일을 잡은 것인지 사법부가 서울교육감 선거와 대선에 개입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다.
대법 한명숙 재판은 미루고·헌재 민감한 사건 뭉개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의 행태는 사법부의 생명과도 같은 정치적 중립에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곽노현 전 교육감 사후매수죄 사건에서 현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사건에 대해서 선고를 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통령선거와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20일 남겨 둔 시점에서 갑자기 주경복 교육감 선거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해버렸다.
반면에, 하급심에서 두 차례나 무죄 선고를 받은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 수수 의혹 사건과 같이 정권에 부담이 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 결정과 같은 변수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1년 가까이 선고를 미루고 있다. 이러고도 대법원이 정치적 중립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