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이 세계 2위? 내용보니 창피하다

[주장] 피어슨 보고서가 말하는 한국교육의 명암

등록 2012.12.05 15:26수정 2012.12.0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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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와 함께 서울교육감 재선거가 동시에 실시돼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조만간 대통령과 함께 수도 서울의 교육 수장이 바뀐다.

교육시스템 경쟁력 세계 2위?

 영국 교육그룹 피어슨(Pearson)사가 발표한 Global League Table의 순위표. 언론들은 모두 "한국교육제도 경쟁력 세계 2위"라고 보도했지만, 실제 내용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졸업률 등이 높다는 의미이다.
영국 교육그룹 피어슨(Pearson)사가 발표한 Global League Table의 순위표. 언론들은 모두 "한국교육제도 경쟁력 세계 2위"라고 보도했지만, 실제 내용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졸업률 등이 높다는 의미이다.피어슨 보고서

지난 11월 27일 영국의 피어슨 그룹(Education Group Pearson)이 세계 40여개국의 교육체계를 비교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피어슨사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 등의 언론, <펭귄북스> 같은 출판사를 소유한 세계 최대의 다국적 교육출판미디어 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이 '한국 교육시스템 경쟁력 세계 2위'라는 타이틀로 '글로벌 리그 테이블'(Global League Table)을 보도했다. 이 보도들에 따르면, OECD 등 40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 교육 비교 평가에서 우리나라가 핀란드에 이어 세계 2위를 했다는 것이다.

핀란드가 1등을 했다는 것은 대체로 이해가 가지만 우리나라의 어떤 교육시스템이 그렇게 훌륭하단 말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을 법하다. 글자 크기 10포인트로 A4용지 50장이 넘는 분량의 이 보고서 원문을 읽어보면 금방 그 답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보고서 원문 내용보다는 교육경쟁력 세계 2위라는 순위 보도에만 주목했다. 그러나 정작 이 보고서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순위가 아니라 순위의 원인이고 그로부터 얻어야 하는 교훈이다.

보고서 진실 외면하고 순위에만 집착하는 언론들


 피어슨 보고서에 대한 언론보도. 조중동을 비롯한 거의 모든 언론이 '한국 교육경쟁력 세계 2위'라는 제목으로 보도를 하고 있다. 정작 이 순위의 의미가 무엇이고, 이 순위가 어떻게 나왔으며, 그로부터 읽어야 하는 교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보도하는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피어슨 보고서에 대한 언론보도. 조중동을 비롯한 거의 모든 언론이 '한국 교육경쟁력 세계 2위'라는 제목으로 보도를 하고 있다. 정작 이 순위의 의미가 무엇이고, 이 순위가 어떻게 나왔으며, 그로부터 읽어야 하는 교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보도하는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터넷캡쳐(김행수)

거의 모든 우리 언론들은 타이틀을 '한국 교육시스템 세계2위'로 잡았다. 1등은 핀란드가 차지했고,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한 순위를 소개했다. 앞 다투어 한국의 2위라는 순위를 보도하면서 정작 교육시스템 경쟁력이 무엇인지,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했는지, 이 보고서가 담고 있는 함의가 무엇인지는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1등 지상주의, 줄세우기라는 우리 교육의 병폐를 우리 언론이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정작 이 보고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순위가 아니라 그 순위가 어떻게 나왔고, 거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에 있지만 이를 주목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피어슨 보고서 원문은 교육의 변인들을 1차로 투입(input)과 산출(output)로 구분하고, 2차로 투입을 학교 선택권과 학교 자율성이라는 질적 변인(Qualitative), 교육예산, 학생-교사 비율, 재학 연수 등을 양적 변인(Quantitative)으로, 산출은 Pisa, Timss, Pirls 등 국제학력비교로 나타난 인지 기능(Cognitive skill)과 졸업률, 문맹률, 고용율 등 교육적 결과물(Educational outcomes)로, 마지막으로 1인당 GDP, 소득격차, 노동생산성, 범죄율 등의 사회경제적 환경(Socio-economic environment)으로 구분했다.


이 보고서는 교육과 관련된 투입과 산출, 양적 변인과 질적 변인, 그리고 사회경제적 환경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과 결과를 비교분석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핀란드가 1위, 우리나라가 2위를 했다는 식으로 보도된 순위가 '교육시스템 경쟁력'이라는 표현은 이 보고서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종합 순위가 나오는 것은 인지적 기능과 교육적 결과물을 종합한 지표의 순위이다. 즉, 핀란드가 1등을 하고 우리가 2등을 한 것은 교육 제도의 경쟁력이 아니라 피사와 팀스 등 국제학력비교에서 학생들의 성취도가 높다는 것이고, 교육적 결과물로 분류되는 졸업률, 문맹률 등의 지표가 우수하다는 뜻이다.

피사, 팀스 등 국제학력비교에서 우리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은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학생들의 졸업률과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 문맹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종합해 보면 우리가 세계 2위를 했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한국 교육시스템(Education system) 경쟁력 세계 2위'라고 하면 좀 민망하다.

피어슨 보고서가 말하는 한국 교육의 명암

 피어슨 보고서에 대해 보도한 영국 BBC 기사. BBC는 피어슨 보고서에 대해서 상세히 보도하면서 참고 사진으로 한국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올해 수능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한국 어머니들이 절에서 자식들이 수능 시험 잘 치기를 기도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한국 교육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피어슨 보고서에 대해 보도한 영국 BBC 기사. BBC는 피어슨 보고서에 대해서 상세히 보도하면서 참고 사진으로 한국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올해 수능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한국 어머니들이 절에서 자식들이 수능 시험 잘 치기를 기도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한국 교육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BBC 화면 캡쳐

피어슨 보고서는 한국 교육이 세계 2위를 기록한 밝은 면만이 아니라 동시에 이를 가져온 어두운 면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런 한국 교육의 양면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영국 BBC 메인 기사에 있는 한 장의 사진이다. BBC는 지난 11월 27일 이 피어슨 보고서를 보도하면서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 학부모들이 수능시험을 앞두고 기도를 하고 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소개했다.

이 보고서는 곳곳에서 한국과 핀란드를 비교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교육과 핀란드 교육은 학생들의 높은 학업성취도를 제외하면 공통점이 거의 없는 양 극단에 위치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두 나라의 비교를 통해 한국 학생들의 높은 성취도라는 밝은 빛에 의해 가려진 한국 교육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핀란드 교육은 빡빡하지 않으며 유연한(relaxed and flexible) 반면, 한국의 교육은 평가 지상주의(test-driven)에 엄격한 교육과정(rigid curriculum), 틀에 박힌 암기식 교육(rote learning)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이 보고서는 평가하고 있다.

이 보고서가 한국 교육의 모습으로 가장 놀랍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은 우리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 시간(the amount of time spent in study)이다. 2009년 기준 15세 중학생의 77%가 수학 학원을 다니는 등 대부분의 학생들이 정규 학교 수업 후 사설학원(영어로 'hagwon'이라고 쓰고 있다.)을 다니며, 갈수록 그 수가 훨씬 늘어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보고서가 한국 정부가 오후10시 이후의 심야학원을 불법으로 단속하고 있는데, 학원들이 정부의 심야 불법학원 단속 순찰을 피하기 위해 셔터문를 내리고 자율학습을 하는 도서관으로 위장하는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것까지 세세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핀란드는 한국에 비하여 학교도 늦게 시작하고, 학교 수업 시간도 짧고, 숙제도 없으며, 학급당 학생수도 적으며, 학원수업 같은 학교 바깥의 사교육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기술했다. 핀란드 교육 시스템은 단순 지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을 도와주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피어슨과 매킨지 보고서 공통 결론은?

피어슨 보고서는 교육성취도가 높은 나라들의 공통점으로 "교육을 중시하는 고유한 문화"와 더불어 "교사들의 높은 지위"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이 이 보고서가 내린 핵심 결론이다. 과연 지금 우리 교사들의 사회적 지위가 정말 높으냐에 대한 반론도 존재하지만 핀란드와 우리나라, 아시아 국가들 상대적으로 교사의 지위가 높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사의 지위란 금전적 인센티브와는 관련이 적다. 보고서는 교사의 금전적인 인센티브가 학생의 학업성취도와도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세계 최고의 교육적 성취도를 나타내는 핀란드에는 교원 성과급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이 보고서가 거의 유일하게 인정한 한국 교육과 핀란드 교육의 유사성은 '우수한 교사', 달리 말하면 '우수한 인재들이 교사가 된다'는 점이다. 이 보고서는 핀란드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생 중 상위 10%가 교사가 되고, 우리나라는 상위 5% 학생들이 교사가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한국, 핀란드, 싱가포르의 교사 인재풀 비교.(2010.9 Mckinsey&Company. 매킨지 보고서) 이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고교 성적 상위 5%가 교사가 된다.이 보고서는 세계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세 나라인 핀란드, 한국, 싱가포르의 우수한 학업성취도가 우수한 교사 인재풀에서 나온다고 밝히고 있어 피어슨 보고서와 매우 유사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국, 핀란드, 싱가포르의 교사 인재풀 비교.(2010.9 Mckinsey&Company. 매킨지 보고서) 이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고교 성적 상위 5%가 교사가 된다.이 보고서는 세계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세 나라인 핀란드, 한국, 싱가포르의 우수한 학업성취도가 우수한 교사 인재풀에서 나온다고 밝히고 있어 피어슨 보고서와 매우 유사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김행수

이런 피어슨 보고서의 결론은 2010년 발표된 미국의 매킨지사(Mckinsey&Company)의 'Closing the Talent Gap'이라는 보고서와 거의 유사하다. 2010년 9월 발표된 이 보고서는 세계에서 제일 학업성취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핀란드, 한국, 싱가포르 세 나라를 비교하면서 이들 나라의 우수한 학업성취도의 요인을 훌륭한 교사에서 찾고 있다.

이에 의하면, 싱가포르는 성적 상위 30%, 핀란드는 상위 20% 학생들이 교사가 되는데 한국은 상위 5% 학생들이 교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성적 상위 학생들이 거의 교사가 되려 하지 않는데, 이것이 미국의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이유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수 학생들로 끌어들일 수 있는 합당한 유인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매킨지 보고서의 결론이다.

대선과 교육감 후보들, 보고서 교훈 제대로 읽어야

피어슨 보고서의 또다른 흥미로운 점은, MB정부가 자율형사립고, 특목고 등을 통해 금과옥조처럼 강조하는 학교 선택권(school choice)과 교원성과급 등을 통한 금전적 경쟁 체제가 학생들의 성취도 향상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학교선택권이 없는 거의 완전한 평준화 체제이고 교원성과급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세계 1위 핀란드가 단적으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신자유주의 교육의 종주국으로 불리는 두 나라이다. 그런데, 이 두 나라에서, 그것도 민간 기업 컨설팅업체(매킨지사)와 출판사를 모체로 하는 사기업(피어슨사)이 교사성과급과 학교선택제 등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두 보고서의 가장 중요한 함의는 한국과 핀란드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교육에 만병통치약은 없다. 좋은 교육은 훌륭한 교사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교사를 존중하는 문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공부를 많이하고, 잘하면서도,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는 학생들, 세계 최고의 인재풀에서 뽑혔으면서 세계 최장 수준 수업일수에, 세계 어디에도 찾기 없는 야간자습, 보충수업에 행정업무까지 시달리면서도, "놀고 먹는 부도덕한 집단" 정도로 취급당하고 있는 교사들, 그리고 세계 최고의 공교육비 부담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교육비에 허리가 휠 지경인 학부모들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지금 한창 대통령 선거와 서울교육감 선거 운동이 진행 중이다.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 등 모든 대선 후보가 교육대통령이 되겠다고 하고, 문용린, 이수호, 남승희 등 모든 서울교육감 후보가 서울교육을 살리겠다고 말한다.

진정으로 우리 교육을 살리겠다는 이들 대통령 후보와 서울교육감 후보들은 학교선택권 강화니 교원성과급, 교원평가 강화와 같은 엉뚱한 대책을 공약이라고 쏟아내기 전에 꼭 이 피어슨 보고서와 매킨지 보고서의 함의를 검토하길 바란다. 후보가 너무 바빠 못 읽으면 제발 보좌하는 사람들이라고 꼭 읽어보고 요약된 내용을 브리핑이라도 해주면 어떨까.
#피어슨 보고서 #교육경쟁력 #핀란드 #한국 #매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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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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