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천 무서리가 내린 날 아침에 잡은 남천의 모습. 시골이 아니고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서리를 견디는 남천에서 강한 의지를 본다.
홍광석
그리고 6년. 이제 나는 심장병을 제외하고는 병원에 다니거나 약을 먹지 않는다. 아내도 많이 좋아져 병원 치료는커녕 한 가지 약도 복용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의 건강회복은 전에 먹었던 약의 효과일지 모른다. 또 알 수 없는 우연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체질이나 나이 그리고 병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의 건강 회복은 약물이나 병원 또는 민간 치료보다는 자연스럽게 텃밭에서 노동하고 내가 생산한 깨끗한 채소 위주로 밥상을 조절하면서 끊임없이 자가 치료를 했던 성과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전원생활을 꿈꾸는 의대 교수가 다녀갔다. 내가 귀촌을 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하면서 요즘 건강해졌다는 말을 했더니 내 말을 들은 그 교수는 심적인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적당한 근육운동을 했기에 심장병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텃밭농사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괭이와 삽만으로 밭을 파고 이랑을 만드는 일은 상당한 중노동이다. 고구마와 야콘을 캐는 일도 허리 아픈 일이다. 고추 밭을 만들고 지지대를 꽂는 일도 어깨 근육운동이다. 나무를 옮기는 일도 완전한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유일하게 심장병 약을 복용하는데 그 약의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2009년 봄 이래 심장발작으로 인해 응급실에 간 적이 없었고, 금년에도 발작이 일어난 횟수도 몇 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그 교수의 말대로 적당한 근육운동의 효과라는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육체적인 노동이 정말 심장병을 완화시키는 데 효력이 있는지는 좀 더 관찰해볼 일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일단은 우리의 귀촌이 잘 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어디 간들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들 말한다. 그러면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말도 한다. 전원생활도 마찬가지다. 음식물 쓰레기는 자원으로 활용한다지만 태울 수도 묻을 수도 없는 쓰레기를 버리려면 동네 입구까지 들고 가야만 하는 불편이 있다. 시장이 멀다거나 택배 배달이 늦는 등 대부분 지역적인 여건 때문에 겪는 불편도 있다. 난방은 화목 보일러를 사용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씩 재를 퍼내고 서너 번씩 나무를 넣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그러나 사람으로 인한 갈등과 경쟁이 없는 곳이다. 타인의 간섭도 없고 내가 누구를 감시하고 타박할 일도 없는 곳이다. 복잡한 계산이 필요치 않는 곳이다. 비록 산해진미를 먹지는 못하지만 텃밭에 깨끗한 채소가 자라고 창고에는 거두어 저장한 고구마를 쌓아두었으니 주린 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이 들어 자족하며 건강하게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전원생활의 불편은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농촌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조금은 쓸쓸해진다. 이 시기에는 특수 작물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농촌 남성들이 땀 흘릴 일도 거의 없다. 농한기인 셈이다. 그래서 옛날 농촌에서는 일없는 농민들이 모여 투전을 하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요즘 나도 한심(閒心)하게 보낸다. 오전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볕이 좋은 오후에는 미루어왔던 나무를 옮기기나 내년을 대비하여 운동 삼아 텃밭을 뒤적인다. 괭이로 땅을 파는 일은 근육운동만이 아니라 쉼 없이 온몸을 움직이는 운동이다. 등에 땀이 나면 멈추고 추우면 양지 쪽으로 피하면 된다. 숙지원을 한 바퀴 돌면서 내년에 어디에 무슨 작물을 심을까 하는 구상도 심심찮은 일이다. 금년에 비해 텃밭이 조금 넓어졌기 때문에 고구마와 고추를 좀 더 심을 작정이다.
노후를 건강하게 보내는 계획은 개인이 지향하는 목표, 그리고 가치관과 취향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적당한 육체적인 노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이 높은 탓인지 텔레비전마다 건강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의 결론을 보면 대부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끝맺는다.
은퇴자들이 쉽게 늙는 이유 중의 하나가 운동부족 때문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들었다. 노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운동이 필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수영, 등산, 골프 등 건강 유지를 위한 운동은 많다. 무엇을 선택하건 개인의 형편과 취향에 따른 결정은 존중되어야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난 6년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슬로시티', '웰빙', '힐링' 이 셋을 한꺼번에 모아 누릴 수 있는 일이 텃밭농사임을 말하고 싶다.
귀촌은 전원생활이다. 텃밭농사는 전원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자주 했던 말이지만 텃밭농사는 일과 놀이다. 다른 놀이보다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노동이며 건강을 지키는 운동이다. 도시 생활에 젖은 사람들이 귀촌을 결단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더구나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귀농은 더 어려운 결단일 것이다. 때문에 많은 분들이 당장 결단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우선 전원의 삶 자체가 곧 '슬로시티'요, 약이 되는 음식을 먹는 '웰빙'이요, 몸과 마음의 병을 자연 치유를 경험하는 '힐링'임을 알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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