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심리학> 표지
추수밭
살다보면 누군가의 말을 의심해야 할 순간이 꼭 있다. 가볍게는 숙제를 다 했다는 어린 아들의 말부터, 신뢰를 부르짖는 정치가의 말까지. 그런데 누군가를 의심한다는 건 보통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남을 의심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으며, 심지어 의심하는 것은 죄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설마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야'라는 믿음이 거짓말 탐지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순수한 마음을 악용한다. 대개 사람들은 '선의의 거짓말'을 포함해 하루 평균 열 번 이상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통해 난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더 쉽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의심받는 순간 일단 발뺌부터 하고 본다. 자신의 입으로 직접 '내 회사다'라고 말하는 동영상이 있어도, '내가 대표이사다'라며 직접 건네준 명함이 있어도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떼기만 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고, 무고한 시민을 갈취해 뺏은 장물이 있어도 잡아떼기만 하면 신뢰를 중시하는 정치인으로 대통령을 꿈꿀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설마 대통령 하려는 사람이 거짓말 하겠어?'라는 어리석은 믿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눈과 귀를 막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도 아니라고 발뺌만 하면 그냥 믿어줄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은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거짓말 탐지기를 쓰면 어떨까. 흔히들 생각하듯이 거짓말 탐지기가 족집게처럼 거짓말을 잡아내주지 않을까. 그런데 아니란다. 저자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거짓말을 단번에 척척 알아낼 수 있는 기계 같은 건 없다고 한다.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말을 탐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에 따른 인체의 생리적 변화를 측정하는 기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거짓말 탐지기를 통해 조사관의 질문을 받았을 때 피의자에게 나타나는 생리적 변화를 보고서 조사관이 분석 능력과 대인 관계 기술을 동원해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를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짓말 탐지기가 거짓말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 탐지는 어디까지나 조사관의 탐지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상대의 거짓말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조사관이 질문을 던지고 상대가 답을 하기까지 최초의 5초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 5초인가? 사람은 말하는 것보다 열 배는 빠른 속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5초가 지나면 이미 거짓말을 생각해서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들의 경험으로 볼 때 처음 5초 이내에 나타나는 행동이 자극(조사관의 질문)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질문을 받은 5초 이내에 고정점이 이동한다거나 차림새를 정돈하거나, 혹은 상대의 질문을 반복하는 등의 행동이 포착되었다면 그것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증거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무의식적인 행동... 이것이 거짓말의 신호다또한 거짓말을 할 때는 한 가지의 징후만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말이든, 행동이든 둘 이상의 징후가 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들은 '클러스터'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대답을 하면서 옷매무새를 고친다거나, 머리칼을 만진다거나 하면 이는 거짓말의 징후라는 것이다.
이처럼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거짓의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거짓의 신호는 매우 여러 가지인데 몇 가지만 보면, 첫째는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정말로 몰라서 대답을 바로 못할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5초의 원칙이 적용되고 클러스터가 작동하는 것이다.
둘째는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해 분명하게 부정하지 않는 점이다. 간단히 아니라고 대답하면 될 것을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 '왜 이런 질문을 하느냐'는 등의 관련 없는 다른 말을 하거나, 혹은 애매모호하게 대답한다면 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 외에도 질문에 대답하기를 꺼리거나, 대답을 거부하는 행동도 거짓의 신호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또한 상대의 질문을 반복해서 하거나 일관되지 않은 진술 역시 거짓의 신호로 볼 수 있다. 특히 질문에 대해 화를 내며 공격하는 것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명백한 신호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질문과 관련 없는 부적절한 질문을 하거나, 지나치게 짧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상세하게 대답하거나 혹은 과도하게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거짓의 신호에 속한다. 그리고 예전 청문회에서 많이 보았던 것처럼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혹은 '신에게 맹세하건데', '성경에 대고 맹세하건데' 등의 종교를 앞세우는 진술도 대표적인 거짓의 신호 중 하나이다.
이쯤 되면 문득 대선후보 토론회의 동영상을 다시 돌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세금 냈냐는 질문에 동문서답을 하고, 질문에 지나치게 화를 내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나는 약속을 잘 지킨다'거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라고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니까.
남에게 신뢰를 받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내 입으로 '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해서 말할 필요가 없다. 못 믿을 구석이 많을수록,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일수록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하는 법이다. 자신에게 신뢰가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신뢰를 강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이라도 해야 스스로 안심이 되니까.
이처럼 <거짓말의 심리학>은 스파이를 잡거나 사건의 범인을 잡는 데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적용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예전에 심문했던 모든 용의자를 하나하나 다시 심문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한 빌 브래튼 전 뉴욕 경찰청장의 추천사처럼 <거짓말의 심리학>에 나오는 거짓말 탐지 기술은 잘 익히고 있으면 꽤나 유용할 듯하다.
자, 그럼 이제 눈과 귀를 크게 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건 어떨까.
거짓말의 심리학 - CIA 거짓말 수사 베테랑이 전수하는 거짓말 간파하는 법
필립 휴스턴 외 지음, 박인균 옮김,
추수밭(청림출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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