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봉' 박근혜와 '노이노이' 문재인

[대선특집] 한국인을 위한 필리핀 현대사④

등록 2012.12.19 10:16수정 2012.12.1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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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위한 필리핀 현대사 연재의 마지막 글이다. 이번 글은 '독재자의 아들' 봉봉 마르코스와 '독재자의 딸' 박근혜, 노이노이 아키노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후보에 대해 비교해 보고자 한다. 필리핀도 대한민국도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기자 말> 

연재순서
① '반일투사' 마르코스와 '친일파' 박정희, 대통령이 되다.
② 마르코스의 계엄령과 박정희의 유신체제, 민주투사 아키노와 김대중, 필리핀의 피플파워와 한국의 6·10 민주항쟁
③ 정권교체후 병원연금된 아로요 전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미래
④ '독재자의 아들' 봉봉 마르코스와 '독재자의 딸' 박근혜, 노이노이 아키노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후보  

마르코스 '가문의 귀환'

a 이멜다 마르코스 그녀는 현재 하원의원이다. 참고로 그녀는 미스 마닐라 출신이었다.

이멜다 마르코스 그녀는 현재 하원의원이다. 참고로 그녀는 미스 마닐라 출신이었다. ⓒ 위키피디아

'명품구두 3천 켤레'의 주인공 이멜다 마르코스와 아들 봉봉 마르코스는 필리핀에 돌아왔다.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귀국하지 못하고 1989년에 하와이에서 죽었지만, 그의 부인과 아들은 1991년에 귀국을 허락받았다. 마르코스 유족은 현재 정치적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쫒겨난 독재자 일당도 후진적인 지역감정의 정치구도에서는 고향마을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것이다.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1992년 대선에 이멜다가 출마하였는데 큰 표차로 낙선하였다. 1995년 총선에 출마하여 자신의 고향인 레이테(Leyte)의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0년 선거에서는 남편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Ilocos Norte)에 하원의원으로 출마하였다.

당시 현직 의원은 아들인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였는데, 그는 상원의원으로 출마하였고 이들 모자는 고향지역의 전폭적인 지지로 모두 당선되었다. 이멜다는 2012년 10월, 다음해에 있을 총선거에 현직인 일로코스 노르테 하원의원에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그녀의 나이는 2012년 현재 83세이다.

엄마는 하원의원, '계엄령 공주'는 주지사, 아들 '봉봉'은 상원의원


아이미 마르코스는 페르디난드와 이멜다의 장녀로 1955년 출생이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총 3회 일로코스 노르테의 하원의원으로 재임하였다. 그 후 2010년에는 일로코스 노르테의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그녀는 계엄령과 마르코스 대통령의 행적을 가장 열렬히 변호하는 '계엄령 공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의 계엄령에 대한 비판, 고문과 살인에 대한 고발에 대해 "계엄령 하에 건설된 도로와 교량이 가장 튼튼하고, 심지어 그 때 만들어진 영화도 매우 좋다"는 식으로 계엄령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녀의 행적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예를 들면, 1977년 아이미가 수행했던 '대학 오픈 포럼'에서 그녀에게 곤란한 질문을 제기했던 트라하노는 아이미의 경호원에게 끌려갔고 며칠 후 폭행과 고문을 당한 사체로 발견되었다.


마르코스 일가의 차세대 주자는 장녀 아이미가 아니라 아들 봉봉 마르코스다. 계엄령 하에서부터 부주지사와 주지사로 정치인생을 시작한 그는 귀국 후 1992년에 일로코스 노르테의 하원의원이 되었고 누나인 아이미가 3회 하원의원을 하였던 1998년부터 2007년에는 주지사로 일했다. 그 후 2007년에서 2010년까지 아이미와 자리를 바꾸어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후임으로 어머니 이멜다에게 하원의원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 지역에서 마르코스 집안 사람들이 돌아가며 의원직을 차지했다는 것은 이미 파악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간단히 요약하면 고향지역에서 엄마는 하원의원, 큰딸은 주지사, 아들은 상원의원으로 재임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선거에서는 6년 임기의 상원의원에 출마하여 현재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향후 유력한 대선후보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버지가 밀알이 되자, 아내와 아들은 새 시대를 열었다

니노이 아키노는 죽고 대통령이 못 되었지만 그의 죽음으로 그의 아내와 아들이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사망 직후 코라손 아키노가 당선되었고, 아들 노이노이 아키노는 현재 필리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2009년 코라손 아키노가 죽었다(정치적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몇 주 전에 사망하였다). 그러자 아키노 부부에 대한 향수가 급부상했고, 그들의 상징인 '노란' 리본이 전국을 뒤덮었다.

노이노이 아키노는 상원의원으로 활동하였지만 처음에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었다. 당시 그가 소속되어 있던 자유당(Liberal Party)의 대통령 후보는 초대 대통령인 로하스의 손자인 마 로하스였다. 그런데 위의 언급한 드라마틱한 상황으로 노이노이가 갑자기 주목받게 되었다. 로하스 후보는 아로요의 독재정치의 연장을 막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노이노이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이노이는 깊은 사색에 빠지고 얼마 동안 잠적했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대통령 후보를 수락하겠다는 결심을 발표했다.

당시 노이노이의 선거 슬로건은 "부패가 없으면 가난도 없다(Kung walang corruption, walang mahirap)"였는데 필리핀의 가장 큰 문제점 중에 하나인 부정부패를 건드리며 가난한 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아키노 일가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 전국을 뒤덮었고, 결국 노이노이는 대통령에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현재 노이노이 아키노 대통령은 꽤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부정부패 일소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국비를 지원하지 않은 마르코스 기념관

a 마르코스 기념관 입구에 있는 흉상 .

마르코스 기념관 입구에 있는 흉상 . ⓒ 양두영


이 시점에서 필리핀과 비교·언급해야 할 한국인이 박근혜와 문재인임은 명약관화하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는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일찍이 퍼스트 레이디를 했던 것은 이멜다 마르코스와 비교할 만하다. 유신 체제를 옹호하고, 가끔씩 말을 바꿔도 최소한 '필요악' 정도까지는 인정하는 역사인식을 가진 '유신공주'라는 측면에서는 마르코스의 첫 번째 공주 아이미와 비교할 만하다. 그리고 아버지의 후광을 얻어 승승장구하며 대권을 바라보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봉봉 마르코스에 비교할 만하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는 자신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정보부장에 총에 맞아 죽고 국립묘지에 묻혔다. 그가 한국을 통치한 것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총 18년이다. 봉봉 마르코스의 아버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총 20년을 필리핀을 지배하였다. 그는 하와이로 망명한 후 시체가 되어서야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마르코스 일가는 '전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치를 끊임없이 추진했지만 DEMARCOSIFY(반-마르코스 민주화) 정책을 추진했던 코라손 대통령은 이를 불허했다.

결국 마르코스 일가는 고향지역 일로코스 노르테에 사비를 들여 기념관을 꾸며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시신을 냉동처리하여 보관하고 있다. 언젠가 국립묘지에 마르코스의 시체가 안치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이렇게 보관하고 있지만, 대통령 노이노이 아키노는 감감 무소식이다. 이런 것들을 비교해 보면 아버지를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었던, 그리고 아버지의 기념관을 '국비'로 세울 수 있었던 박근혜는 봉봉 마르코스에 비해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민주화의 '적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민주화 운동의 적자(嫡子)들은 2012년 한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나? 두 명의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지난 10년 동안은 한국현대사에서 민주화세력이 산업화세력을 제치고 최초로 권력을 획득한 시기였다. 필리핀과 마찬가지로 격동의 시대를 거쳐 얻어낸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 뒤를 이을 사람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일 것이다.

박근혜와 달리 문재인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할 때 문재인은 유신 반대운동을 벌이며 제적과 수감을 감수해야 했다. 박근혜가 '살길이 막막해서' 6억 원을 받아 세금도 안 내고 동생들을 거둘 때, 문재인은 '6억 원'을 벌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살길이 막막한 서민들의 편에 서는 인권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1년 전, 아무도 박근혜의 아성에 균열을 낼 만한 야당후보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철수 전 후보의 유력한 대항마로 떠올랐고, 필리핀의 노이노이가 드라마틱하게 대통령 후보가 된 것처럼 문재인이 영화처럼 안철수와 단일화를 이루며 유력 대권 후보로 비상하였다.

필리핀에서는 일단 '민주화의 아들'인 노이노이 아키노가 '독재자의 아들'인 봉봉 마르코스를 제쳤다. 한국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유신공주' 박근혜가 당선되어 산업발전과 안보를 책임질 것인가, 아니면 '민주화의 아들' 문재인이 당선되어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실현시킬 것인가? 정답은 국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
덧붙이는 글 양두영 기자는 국립 필리핀대학 역사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아키노 #마르코스 #문재인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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