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씨
윤성근
하지만 20대에 소비지향적인 삶을 살았던 그가 헌책방을 연 것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는 글씨를 모를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읽고 쓰고 이런 것들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그림일기란 걸 쓰는 데 글 쓰는 칸이 세네 줄밖에 없었다. 쓸 말이 많은데 자리가 비좁아 따로 한 권을 마련해 일기를 썼을 정도였다." 보통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일기란 어쩔 수 없이 하는 일과일 뿐인데 이때부터 그는 책을 좋아하는 헌책방 주인의 면모를 보였다.
그는 이미 두 권의 책을 냈고, 잡지 <주간 경향>에 '애서가의 서재' 코너를 담당하고 있으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도 활동 중이다. 다양한 글쓰기를 하는 그에게 글쓰기란 어떤 의미일까. "글쓰기는 내게 삶의 해방구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힘들고 지칠 때 술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폭식하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그러지 않나. 나는 힘들 때 글을 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딱히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도 글은 계속 쓴다."
그렇다면 <주간 경향> '애서가의 서재' 코너의 애서가들은 어떤 경로로 섭외를 하는 건지 궁금하다. "대부분 헌책방 손님들이다. 헌책방에 손님으로 오는 사람 중에 애서가들이 엄청 많다." 인터뷰를 하려면 애서가마다 기사화할 만한 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냐는 걱정을 내비치자 그는 인터뷰이가 아무리 사소한 얘기를 하더라도 글로 엮을 수 있다 자신했다. 그는 "땅에 떨어져 있는 휴짓조각이나 먼지 하나 가지고도 장편 소설 하나 나올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웃었다.
'이상북'에는 철학서, 인문서가 많다. 철학서를 읽고 난 후에 뭔가가 달라졌다고 느낄 때가 있는지 물었다. "많이 느낀다. 폭넓은 사고를 할 소양이 길러지는 것 같다." 도대체 철학서는 언제부터 읽기 시작했을까.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면 작가가 살았던 시절의 역사서를 읽고 이해하려고 했다. 역사서,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당시에 어떤 철학이 유행했는지를 알게 되면 문학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철학을 공부할 마음이었다기보다 문학을 잘 이해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한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앨리스 책들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 이 외에 좋아하는 문학을 묻자 그는 카프카의 <변신>을 꼽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변신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그 전까진 주로 한국 문학을 읽었는데 크게 달랐다. 두 가지 충격을 받았는데 첫 번째는 시작하자마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주인공이 벌레가 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주인공이 죽자 가족들이 좋아하면서 끝나는 것이었다." 비범한 책이란 생각에 그는 원문인 독일어로 읽기 위해 독일어를 독학했다고 한다. 독일어로 <변신>을 읽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다는 그에게서 책에 대한 열의가 느껴졌다.
'이상북'에 흐르는 문화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이상북을 들른 첫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책방에 들어와 그에게 거리낌없이 말을 거는 모습을 보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몇 분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어쩐지 그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이 많은 지금, 손님과 안부를 주고받는 책방 주인의 모습은 더 이상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에 들은 바로 그 여고생은 이곳의 초창기 멤버격이란다. "중학생 때부터 오던 애예요. 근데 벌써 대학 갈 나이가 됐네요." 이런 작은 교류들이 그 마을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북에선 한 달에 두 번씩 '심야책방'을 운영한다. 이날은 밤새 책을 읽고 자정에 열리는 공연을 볼 수 있는 날이다. 평소에는 독서모임과 작은 전시회가 열리며 학교를 마친 아이들에게는 놀이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상북은 주민들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이상북이 공동체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바람은 이미 이루어진 듯했다.
문화는 강제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발걸음이 쌓이고 쌓여야만 생기는 오솔길처럼 문화 또한 하나의 흐름이 되기 위해선 많은 이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 그는 "삶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사람들이 책도 많이 읽을 수 있다"며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말했다. "읽을 만한 여유가 있어야 책도 읽는 거지. 여유가 있으면 읽지 말라 그래도 읽을 거다."
10년 후에도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을 것 같은지 물었다. "마음 같아선 계속 하고 싶지만 솔직히 10년 뒤에도 이곳이 여전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책에 관련된 일을 계속 하고 있을 것 같긴 하다." 또 다른 인생의 목표나 꿈은 없을까. "사실 딱히 없어요. 헌책방을 하면서 정말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동안엔 다른 걸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회사 다닐 때 누렸던 돈의 힘을 알고 있는 그다. 그때보다 지금이 행복에 더 가깝다고 느끼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하다. 백퍼센트."
삶의 궤적은 너무나 다양하다. 어떤 일을 10년 동안 하고 나서야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도 있는 게 우리 인생이다. 인생의 성공은 누가 먼저 행복해지느냐에 달렸다. 오늘 어떻게 하면 뜬구름 같은 행복에 먼저 도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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