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5년, '오세훈'으로 돌아갈 것인가

[오마이공약] '선별 복지' 체감 어려워... '보편 복지' 후퇴하면 역풍

등록 2012.12.21 11:06수정 2012.12.2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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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라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세' 신화를 만들겠다."

'국민행복시대'를 내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진짜 검증은 이제부터다. 그동안 내놓은 숱한 약속과 정책 공약을 지키고 실천해야 할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지난 10일 발표한 정책공약집 '세상을 바꾸는 약속, 책임있는 변화'에는 중산층 70% 재건을 앞세운 장밋빛 청사진들이 담겨있다. 개혁성과 강도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 미치지는 못 하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총선을 통해 드러난 시민 사회의 '복지 민심'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 

'복지 민심' 잡기는 성공... '선별 복지' 중산층 체감 어려워

소득 계층에 따른 '반값 등록금'을 비롯해 0~5세 무상보육·고등학교 무상교육·의료비 부담 경감 등은 큰 틀에선 문 후보와 차이가 없다. 무상의료 시발점인 '연간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는 빠졌지만 암·심혈관·뇌혈관·희소난치성 등 4대 중증질환 진료비를 국가가 100% 책임지기로 했고 노인 임플란트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문재인 후보의 '보편 복지'에 맞서 박 당선인이 내세운 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다. 생애 주기에 맞춰 시기별로 꼭 필요한 혜택을 주겠다는 취지지만 저소득층이나 서민·3자녀 이상 가구·독거노인 등으로 수급 대상을 제한하는 '선별 복지'에 가깝다.

그나마 보편복지에 가까운 것은 고교 무상교육이다. 박 당선인은 2014년부터 매년 25%씩 확대해 2017년 수업료·입학금·학교운영지원비·교과서 대금 등을 전면 무상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연간 수업료가 수백만 원에 이르는 사립 자율고와 특목고는 추후 검토하겠다고 밝혀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다.


대학 등록금 역시 2014년부터 부모 소득 수준에 맞춰 국가 장학금 형태로 지원하기로 했다. 소득 하위 20%(1~2분위)는 등록금 100%를 지원하고 40%(3~4분위)까지는 75%, 70%(5~7분위)까지는 '반값'을 지원한다. 80%(8분위)까지는 25%를 지원하지만 상위 20%는 '든든학자금(ICL)'이라 불리는 학자금 대출 자격을 준다. 저소득층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구조이긴 하지만 '무상급식' 논란처럼 부모 소득 수준에 따라 대학생 자녀 줄 세우기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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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17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반대하는 초등학생과 학부모가 주민투표 불참을 호소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결국 투표율 부족으로 무상급식 찬반 투표가 무산되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퇴했고 그해 10월 보궐선거에서 무상 급식에 찬성하는 박원순 시장이 당선했다. ⓒ 유성호


박 당선인의 강력한 지지 기반인 노인층을 위 공약도 눈에 띈다. 기초노령연금을 2배로 올리고 장기요양보험 적용 대상도 확대하기로 했다.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하는 '기초연금'을 도입해 2012년 기준 9만4600원 수준인 기초노령연금을 2배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전체 노인의 5.6% 수준인 33만 명에 불과한 장기요양보험 적용 대상 노인도 4~5등급 경증 치매노인과 차상위계층·독거노인 등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의료비 부담 경감 대책 역시 '선별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지금도 최하위계층은 연간 200만 원·중위계층은 300만 원·상위계층은 400만 원이 넘는 의료비 본인부담금을 국가에서 대신 납부해준다. 박 당선인은 이를 소득수준에 따라 50만 원에서 500만 원까지 10단계로 세분화해 최하위 계층 혜택을 더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기존 본인부담금 상한제는 비급여 의료비가 제외돼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이에 대한 보완책은 없다.

그나마 암·심장 뇌혈관·희소난치성질환 등 4대 중증질환 진료비에 대해서는 모두 건강보험 급여로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진료비 못지않게 부담이 큰 간병비·상급병실료·선택진료비 지원 등은 빠져 있어 실질적 혜택을 기대하긴 어렵다. 

0~5세 무상보육의 경우 "0~2세 영아 보육료 국가 전액 지원 및 양육수당 증액"하고 "3~5세 누리과정 지원비용 증액"이라고 밝혔지만 현 정부 지원 수준에서 얼마나 늘어날지는 불확실하다. 현재 정부지원단가는 월 18만 원에서 39만 원 수준이지만 표준보육비용을 적용하면 월 28만~71만 원을 지원해야 한다.

다만 박근혜 정부 5년동안 국공립 보육시설 부족 해소는 어려울 전망이다. 국공립시설은 취약지역에 매년 150개 정도 늘리는 게 고작이고 '서울형 어린이집'과 같은 공공형 민간 어린이집 확대에 무게를 실었다.

임신 출산 정책 역시 '선별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출산 장려를 위한 '새아기 장려금'은 연소득 4000만 원 이하 저소득층 가구에 한해 환급형 세액공제 형태로 1인당 50만 원까지 지원하고, 첫돌까지 조제 분유·기저귀 지원도 저소득층 가구로 제한한다.

무상급식 후퇴?... '보편 복지' 후퇴했다간 역풍 맞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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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임식에서 잠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생각에 잠겨 있다. ⓒ 유성호


더 큰 문제는 복지 재원 마련이다. 박 당선인이 내건 공약을 실천하려면 매년 26조3000억 원씩 5년간 131조4000억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재원 조달 방안은 추상적이다. 큰 틀에서 예산 절감과 세출 구조조정·세제 개편 등으로 증세 없이도 134조5000억 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당장 내년부터 0~5세 무상보육에 16조8187억 원, 기초연금 도입에 14조6672억 원이 들어가고 2014년부터 고등학교 무상교육에 4조7200억 원, 소득 연계 반값 등록금 지원에 7조 원이 들어가지만 그때까지 재원을 마련하리란 보장은 없다.

박근혜 당선인의 '선별 복지' 정책도 부족한 복지 재원 마련에는 부정적 요소다. '선별 복지'는 복지 재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저소득층에 혜택을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선 바람직하다. 하지만 대다수 계층을 복지 혜택에서 배제시키기 때문에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보편적 증세를 추진할 경우 강한 저항감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오히려 박 당선인 공약에는 '친환경 무상급식'이 빠진 데다 보수적인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 당선으로 '보편 복지'가 더 후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재정 부족 등을 내세워 '무상 급식' '보상 보육' 등 보편 복지를 섣불리 거둬들였다가는 역풍을 자초할 수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 16일 3차 TV 토론에서 일본 민주당이 아동수당 공약을 내걸었다 재정부담 때문에 포기했다며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다. 이는 박 당선인에게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일본 민주당은 증세 없이 모든 계층에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보편 복지'를 시도했지만 재정 부담과 야당 반대에 부딪혀 소득 수준에 따라 지급하는 '선별 복지'로 후퇴했고, 결국 최근 총선에서도 야당에 참패했다. 이는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미 '보편 복지'를 맛본 유권자들 마음을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당장 지난해 8월 주민투표까지 동원해 '무상 급식'을 막으려다 결국 물러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박근혜 #무상급식 #보편복지 #선별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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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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