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부모 세대가 자식세대의 희망을 저버린 것일까

부정하고 싶지만, 아직은 쓰리다. 생채기가 날 정도로

등록 2012.12.22 14:55수정 2012.12.2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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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오셨어요?"
"가느라 고생하고, 안 돼서 허탈하고, 왜 1번 안 찍었냐고 욕먹고.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투표를 위해 시골 고향에 다녀오신 동료분의 넋두리에 왠지 힘이 없다. 모든 넋두리가 그러하겠지만, 상실을 넘어선 패배의 목소리가 나또한 허탈감에 빠져들게 만든다. 경제적 이유로 투잡 생활을 하시며 정말 성실하게 살아가시는 분인데 듣고 온 건 욕뿐이라니.

그 억울한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 그분에 비하면 우리 집은 그나마 양반이구나 하는 안도감마저 들기도 한다. 우리 집이야 서로 싫은 소리를 하기가 두려워 가급적이면 말을 삼가고 그저 냉기가 도는 분위기 속에서 어색한 덕담만이 오갈 뿐이었으니까.

가끔 집에 들르게 되면 지난 밤 TV에 누가 나왔다하시며 2번이 당선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시는 부모님들에게 내말 좀 들어 보시라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게 잘 되질 않는다. 주로 집안에서 TV와 친구를 삼으시니 듣고 보는 기사가 온통 조중동의 종편 방송 뿐일 텐데, 그분들에게 다른 논리도 있다며 함께 공유하려 애쓰지 않은 나의 잘못이 하나의 원죄로 남아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의 가정이 비단 우리 집이나 그 동료분의 가정뿐이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양에서 몇 백년간 이루어진 민주주의의 과정을 아주 짧은 시간에 소화하려다보니 출렁임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세대 간 의식의 차이가 큰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일 테니까.

솔직히 유신을 겪은 분들이 다시 그 때로 돌아가도 좋다, 라는 의식의 연장선에 있는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조선시대 왕권 계승의 모델이 아직도 당연하다 여기시는 분들이 생각보다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세습은 당연하다 여기시며 자식들에게 기득권을 넘기고자 애쓰시는 많은 종교인들도 계시고, 어떡해서든 상속세를 피해가며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많은 경제인들 이야기도 언론 매체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큰 도둑, 작은 도둑만이 있을 뿐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심보와 잣대가 여기에도 적용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선거 후 여러 패배 분석의 글들이 올라온다. 민주당의 무능력함에 대한 이야기, 조중동 언론 장악에 대한 이야기, 50대의 안정적 변화 욕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부모세대가 자식세대의 희망을 좌절시켰다 라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정말 부모 세대가 자식세대의 희망을 좌절시킨 것일까?
그런 심정에 동감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우울해지기가 두려워서인지 그건 아니다 라는 위안 또한 일어나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우선 동감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왜 우리 부모님은 자식의 논리와 의견보다 TV에 나온 생전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의 말에 더 많은 신뢰를 보내시는지 항상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분의 감투가 좋아서, 그 분의 말재주가 좋기 때문에, 아니면 살아온 나날이 많은 당신이 자식보다는 더 나은 판단력을 갖고 있다, 라는 또 다른 형태의 기득의식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생각에 빠져들다 보면 패배감에 젖어 있는 나의 모습에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나도 돈벌기 힘들다며 성질을 부리고 싶어지기도 하고, 용돈을 확 줄여버릴까 하는 옹졸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한다.

반대 입장에서 드는 생각은 내가 그동안 부모님과 무언가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많이 부족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IT의 기득권을 누린 자식 세대들이 부모세대와 공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이에 소외받은 부모님들이 반대 방향으로 돌아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들도 일종의 소외감을 느끼고 계시는 부분들이 있을 텐데, 나이 드셔서 뭐하라 이런 걸 알려 드세요, 하며 그 소외감을 더 크게 만든 건 나의 잘못일 테니 말이다. 과거로 돌아갔으면 하는 선택을 하셨다는 것은 그만큼 빠르게 바뀌어 가는 세상 속에서 위로 받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일 텐데 TV에서 듣고 싶어 하는 말만 전해주는 방송이 얼마나 즐거우셨겠는가. 결국은 세상을 바꾸기에 앞서 부모님 생각을 바꾸지 못한, 아니 나의 행동과 태도를 바꾸지 못해 그 분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나의 문제인 것이다.

난 오늘도 부모님과 식사를 함께 했다. 하지만 선거 얘기는 하지 않았다. 자식의 도리이니 공경하며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정치적 이슈로 인해 서로 간에 상처 주는 말은 삼가고 싶었다. 토론 문화가 자리 잡히지 않은 우리 가정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아직은 부모님과 얼굴 붉히며 다툼하기에는 패배의 아픔이 너무 쓰리다. 희망을 보자 하면서도 막상 부모님을 뵈니 싸워서 진 것 같은, 생채기가 날 정도로 씁쓸하다.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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